“청년의 마음으로 청년과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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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20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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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독자들의 ‘내가 <시사저널>을 읽는 이유’ / “독특한 색깔과 소신 지키고, 따뜻한 사람 냄새도 느낄 수 있어”

ⓒ시사저널 이종현


창간 20주년을 맞아 <시사저널>을 읽는 20~30대 젊은 독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때로는 깊이 있는 기사 때문에, 때로는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는 논조 때문에 <시사저널>을 읽는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앞으로도 좀 더 젊은 매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좌우의 날개로 나는 새처럼…"
내가 생각하는 좋은 언론은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구석진 곳을 애써 찾아가는 것이다. 또, 우리가 사태의 표면을 보고 쉽게 믿어버리고 쉽게 잊어버리는 문제들에 애써 집착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기에 연연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시사저널>은 그런 의미에서 나름으로 인고의 세월을 견뎌온 셈이다. 세상에서 주목하는 중심 언론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자기 갈 길을 견고한 표정으로 걸어왔다고 할까. 그래서 <시사저널>에는 우리가 해석하고 이해해야 하는 사태의 사실성 그 자체에 집중하게 해주는 놀라운 힘이 있다. 구독률에 연연해서 선정적인 표제를 띄우기에 급급하지 않았던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한 매력이 되었던 것이다. 때로 양극단의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언론에 넌더리가 날 때, <시사저널>을 읽으며 비판의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시사저널>은 이 말을 자기 정체성으로 삼아왔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시사저널> 표지가 앞으로도 ‘무뚝뚝하고 담담한’ 표정이기를 바랄 뿐이다.
- 신혜정(34) | 연세대 철학과 대학원생



"예전의 모습 되찾아 반갑다"
지난해부터 지인의 권유로 <시사저널>을 다시 정기 구독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2007년 초 파업 사태로 인해 다소 안 좋게 인상지어진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약간의 선입견도 있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시사저널>이 점점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듯해서 반가웠다. 그래서 지난주 구독을 다시 1년 연장했다.

최근의 시사 주간지들이 모두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는 듯한 상황에서 그나마 <시사저널>은 정통 시사지로서의 위치를 꿋꿋이 지켜주는 듯해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국내 정국과 한반도 상황 및 국제 정세의 흐름을 잘 짚어주는 분석 기사들도 많은 도움이 된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하드웨어에 너무 치중하다 보니 소프트웨어가 다소 취약하다는 점이다. 잔잔하게 읽힐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훈훈한 미담들도 많이 발굴해주기를 바란다.
- 장태길(36) | ㈜사이버로지텍 수석프로그래머   



"‘학생 자율’ 저해하는 학교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줬으면…"

퇴근 후 우편함에 꽂혀 있는, 형식과 내용이 세련된 <시사저널>을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특히 최근 들어 형식과 내용이 좀 더 세련된 느낌이어서 더욱 반갑다. 바쁜 업무로 미처 그날그날 뉴스를 챙기지 못하는 내게 <시사저널>은 많은 도움이 된다. 특히 정치와 국제 뉴스를 통해 시사 감각을 잃지 않고 있고, 수업 강의에도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정기 독자로서의 바람이 있다면, 학교와 학생들에 대해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보면, 현재 학교라는 공간의 문제는 ‘학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어른들’ 잘못이 크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 들어 성적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주는 고교 비평준화 지역 문제 등 ‘학생 자율’을 저해하는 우리 어른들의 욕심이라는 장애물이 굳건히 버티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 조상욱(39) | 수원 수일고 교사



"심층 보도 최초 주간지로서 제 역할 해나가기를 기대한다"

ⓒ시사저널 이종현
대학 신문 기자였던 1991년 <시사저널>을 처음 접했다. <시사저널>은 심층 보도를 하는 최초의 전문 주간지로서 대학 신문 기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 이후 <시사저널>은 많은 고정 독자를 확보한 영향력 있는 매체가 되었다.

<시사저널>에는 진보인가, 보수인가로 구분될 수 없는 자신만의 색깔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20년 세월 동안 쌓아온 기자들의 취재와 편집에 대한 자율권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2년 전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예전의 이미지가 다소 퇴색된 느낌이어서 애독자의 한 사람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이를 계기로 더 <시사저널>이 내용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세상의 진실을 밝히는, 진정한 심층 보도 주간지로서 제 역할을 해나가기를 기대하며 앞으로도 관심 깊게 지켜보겠다.
- 김일형(37) | 펀드매니저



"시사 문외한을 시통으로 만들다"

대학 1학년 때 대전에서 부산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려 처음으로 <시사저널>을  접했던 것 같다. 사실 그때만 해도 현실 정치나 경제 그리고 사회 문제에 특별한 관심이 없었을 때였는데도 장거리 여행이 짧게 느껴질 만큼 책에 열중했다. 이런 매력 때문이었을까. 그때부터 지금까지 15년이라는 세월 동안 열독자가 된 것 같다.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게 만들어주는 기획 기사들, 왜곡된 사회 문제를 짚어주는 특집 기사들로 현실 문제에 대해 문외한이었던 나를 어느새 ‘시사통’으로 만들어준 매체가 바로 <시사저널>이다. <시사저널>이 벌써 20년 동안 현실과 호흡해왔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롭다. 앞으로도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분석해낼 수 있는 기사들로 가득 채워지기를 기대해본다.
- 주영래(33) | 회사원



"적확한 필자 발굴에 무한 신뢰감"

<시사저널>의 모든 기사는 미리 결과의 방향을 설정해두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이슈의 중심에 놓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려는 태도가 좋다. 특히 문화 분야의 경우, 조금만 깊이 들어가도 아주 전문적인 내용이 드러나게 되고 이에 대한 기초 없이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해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많다.

그래서 아예 논의의 본질이 호도되는 경우가 많은데 <시사저널>은 늘 확실한 정보를 제공하고, 또 적확한 필자를 찾아내는 것 같다. 독자들의 자발적 판단을 가장 든든하게 지원하는 객관적 정보력, 그것이 <시사저널>의 가장 큰 매력이다.
- 황록주(34) |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학예연구사



"옥석 가르는 명쾌함이 좋다"

요즘 신문 사설이나 칼럼을 보고 있자면 왜 이럴까 싶은 생각이 든다. 논리는 없고 주장만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시사저널>은 기사를 쓰는 데 사적인 감정이 덜 들어가는 주간지인 것 같고, 옥석을 명확히 가르는 명쾌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다른 주간지나 신문과는 다르게 어깨에 힘을 빼고 확실하게 독자의 수준에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 그리고 자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군더더기 하나 없이 확실하게 전한다. 또, 비판의 칼날과 함께 사람 냄새가 나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시사저널>을 보는 이유이다.
- 이원석(32) | 논노드 대표이사



"선정적·편향적 기사 없어 믿음 간다"

내가 <시사저널>을 읽는 이유는, 다양한 사업군의 고객을 접해야 하는 홍보대행사 직원으로서 지식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최근의 트렌드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다. <시사저널>은 선정적이거나 편향된 기사가 없으며 이슈들을 심도 있게 다루어서 믿음이 가기 때문에 다른 주간지에 비해 자주 읽게 된다. 논조는 대체로 ‘온건한 진보’ 성향으로 이해되며, 대학생과 직장인을 비롯한 지식인들이 많이 읽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목차에서 커버스토리와 특집 기사가 다른 기사들과 확연히 구별되도록 하고, 나머지 콘텐츠들도 한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편집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
- 승미르(31) | 인사이트커뮤니케이션즈 차장



"주장보다는 판단에 맡길 줄 아는 언론"

일간지들의 편견에 질려 <시사저널>을 찾게 되었다. 정치나 시사적 이슈일수록 <시사저널>의 힘이 더 강해진다. 표제부터 기사 내용까지 ‘나는 이쪽이오, 너는 저쪽이지’를 외치는 다른 매체들과 달리,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중도를 지키는 강함을 보여준다. 나에게 진정한 언론이란, ‘자신’을 주장(강요?)하기보다, ‘현실’을 제시하고, ‘독자’에게 판단을 맡길 줄(도?) 아는 언론이다. 그러기에, 나는 <시사저널>을 읽는다.
- 이범규(28) | 커피전문점 운영



"온몸을 던져 우는 대나무의 외침"

<시사저널>은 그 소리가 온몸을 던져 울던 대나무의 외침 같다. 몇 년 전 <조선왕조실록>을 환수하는 데 큰 울림통이 되었다. 그 이후에도 <시사저널>은 ‘문화재 제자리 찾기’라는 운동에 주목해주고, 현재까지도 일본 천황궁이 소장한 <조선왕실의궤>의 반환 운동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유추해본다면 그것이 어디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이겠는가? <시사저널>을 구독하면서 세상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중요한 사건을 파헤친 기사를 많이 접한다. 그때마다 ‘와와’ 소리지르며 울어대던 대숲의 잠들지 않는 소리를 만나는 듯하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앞으로도 시대의 고민을 함께하고, 세상을 맑게 하는 창이 되기를 바란다. 
- 혜문 스님(36) |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세상사 깊이 성찰하게 하는 ‘창’"

<시사저널> 20주년을 축하한다. <시사저널>을 받아 볼 때면 신선한 감동을 느낀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국내외 정세를 가장 정확하고 알기 쉽게 보도하고 있다.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날카로운 비수를 심장에 꽂듯이 부정부패에 정면으로 맞섰다. 이것이 <시사저널>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시사저널>의 강점은 ‘힘’이다. 우리 같은 젊은 세대들이 자칫 간과하기 쉬운 세상사를 <시사저널>을 통해서 깊이 성찰할 수 있다. 앞으로도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시사저널>이 되었으면 좋겠다.
- 김지수(27) | 서울대 경영학과 대학원생



"시사 문제에 눈 뜨게 해준 매체"

공직자이셨던 아버지 덕택에 <시사저널>을 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매주 배달되는 <시사저널>을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워낙 꼼꼼하게 챙기시고 열심히 정독하셔서 ‘도대체 뭐가 실렸기에 저러실까’ 하며 한 장 한 장을 넘겨보았다. 지금은 매주 <시사저널>이 기다려진다. 그리고 평소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시사 문제’에 대해 <시사저널>을 통해 눈을 뜨게 되었다. 요즘처럼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장악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정도를 걸어온 <시사저널> 같은 매체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도 국민에게 사랑받는 <시사저널>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사저널> 파이팅!!!
- 이소라(37) | 큐에스테틱 원장



"<시사저널>은 대한민국의 축소판"

나는 <시사저널>과 함께 대학교를 마치고 또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은 이제 내 친구나 마찬가지다. 내가 오랫동안 <시사저널>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안에 ‘희로애락’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시사저널>은 세계의 축소판이자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물론 <시사저널>에 실린 기사 모두가 좋을 수는 없다. 때론 나와 생각이 다르고 가치관이 달라 눈살을 찌푸리는 때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서서 보면 이게 <시사저널>의 색깔인 것 같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렇다고 다른 한쪽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자세이다. 앞으로 <시사저널>이 세상 사람들에게 유쾌, 상쾌, 통쾌, 호쾌를 주는 언론이 되었으면 좋겠다.
- 안영삼(37) | 신아법무법인 사무장



"세상사 들려주는 고마운 친구"

<시사저널>은 매주 세상사를 들려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혼란스러운 사회 문제들에 대해 항상 자상하게 이야기해주었고, 때로는 날카로운 비판으로 세상을 두루뭉수리 바라보는 나 자신을 꾸짖기도 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졸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상이 돌아가는 소리를 하나하나 들려주었다. 따듯한 목소리가 담겨 있는 <시사저널>의 20번째 생일을 친구의 마음으로 축하한다. 창간 20돌을 맞은 <시사저널>이 청년의 마음으로 세상의 청년들과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 박종엽(29) | 경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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