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많은 ‘특별한 돌’들이 왜 여기 있었을까
  • 이종호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문위원 ()
  • 승인 2009.10.2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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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품고 있는 세계적인 수수께끼

▲ 1 제주도 애월읍 하귀리 조간대에 있는 세계 유일의 해중 고인돌. 2 강화도 부근리에서 발견된 이 고인돌은 무게가 80t으로 남한 최대 규모이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의 나라’이다. 한반도에는 황해도 은율과 평양 등 대동강 유역에 1만4천기 정도가 있고, 강화도와 전남 화순, 전북 고창 등지를 중심으로 남한에 2만4천기 등 전체 5만기 정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전세계에 있는 고인돌이 약 8만기로 추산되므로 5만기가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를 알 수 있다.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고인돌이 많은 것으로도 널리 알려졌지만 특이한 고인돌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제주도 애월읍 하귀리 조간대(속칭 관전동 해안가)에 있는, 세계에서 하나뿐인 해중(海中) 고인돌이다. 해안선에서 대략 40m 내려간 조간대에 위치해 밀물 때에는 고인돌 상석까지 모두 물에 잠기고, 썰물 때에는 상석과 함께 지석이 모두 드러난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고인돌의 모양새나 규모에만 호기심을 가졌을 뿐, 특별한 용도의 구축물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구한말과 일제 강점기만 해도 마을 앞에 신작로를 내거나 심지어 저수지를 만드는 데 고인돌을 마구 옮겨다 사용했다. 집 마당에 있는 고인돌을 장독대로 쓰기도 했고, 마당 앞에 그대로 두었다가 댓돌이나 담으로도 활용했다. 아예 고인돌을 집안에 들여놓은 채로 집을 짓거나 부엌을 만들 때 부뚜막으로 쓰기도 했다.

단순해 보여도 치밀한 기초 공사 필요해

우리나라의 고인돌에는 다른 나라의 고인돌과 차별되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람 뼈와 함께 부장품이 출토된다는 사실이다.

▲ 평안남도 증산군 룡덕리에서 발견된 고인돌(아래)에는 80여 개의 별자리(위)가 새겨져 있다.

즉, 거대한 바윗돌이 무덤으로도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크게 북방식(탁상식 : 네 개의 반석을 세워 돌방(石室)을 만들고 위에 큰 뚜껑돌을 올려놓는 것), 남방식(바둑판식 : 지하에 판석이나 할석 등을 이용해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낮은 받침돌로 뚜껑돌을 올려놓은 것), 개석식(蓋石式 : 받침돌 없이 뚜껑이 직접 지하 돌방을 덮고 있는 것)으로 나눌 수 있다.

북방식은 주로 우리나라 북부에 분포하고 탁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강화·인천·수원·이천을 연결하는 선을 한계로 분포한다. 이 중에서 강화도 부근리의 고인돌(사적 137호)은 뚜껑돌만 해도 길이 7.1m, 폭 5.5m,, 높이 2.6m, 추정 무게 80t에 달하는 남한 최대 규모이다. 남방식은 주로 한강 이남에 분포한다.

고인돌이 다른 무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매우 치밀한 기초 공사가 필요한 구조물이라는 점이다. 부장품으로는 여러 가지 토기와 화살촉 같은 석기들뿐만 아니라 청동검, 옥, 석검 등도 발견된다. 부장품이 있다는 것은 고인돌의 연대 측정이 가능하다는 의미로서, 이를 근거로 그 시대의 문화와 생활상을 살펴볼 수 있다.

한국의 고인돌이 다른 나라와 차별되는 또 다른 특징은 고인돌의 크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큰 것, 즉 무게로 보아 세계 최대로 추정되는 고인돌은 전북 고창군 운곡리 24호 고인돌로 무게가 무려 2백97t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전남 화순군 춘양면 대신리(사적 410호)에 있는 남방식 고인돌도 길이가 7.3m, 폭이 5m, 두께가 4m로 추정 무게만 무려 2백80t이 넘는다.

무리 중에서 유달리 큰 고인돌이 하나씩 있다는 점도 특징이다. 우리나라 고인돌이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1~2기가 독립적으로 발굴되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10여 기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100~2백여 기씩 무리를 지어 발견된다. 유달리 큰 고인돌의 존재는 촌락 공동체의 우두머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된다.

고인돌은 처음에는 무덤으로 만들어졌지만 고대인들의 조상 숭배와 조상에 대한 종교적 제사 행사를 진행하던 성지로 활용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중국 요동반도의 개주 석붕산에 있는 중국 최대의 북방식 고인돌을 필자가 현지 답사했을 때 최근까지도 마을 사람들이 기도의 대상으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고인돌이 중요시되는 것은 숫자가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일반적으로 청동기 시대로 들어선 경우 비로소 그 민족이 국가라는 틀을 구성했다고 본다. 고인돌은 비록 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고인돌 자체만을 갖고도 청동기 시대에 축조되었다고 받아들인다. 곧 고인돌의 연대가 올라갈수록 국가 성립 시기 또한 상향 조정된다.

평안남도 증산군 용덕리에 있는 외새산에서 발견된 10호 고인돌 무덤의 뚜껑돌 겉면에는 80여 개의 구멍이 새겨져 있다. 조사 결과 그 구멍들은 별자리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연대를 측정해보니 4천8백±2백15년 하늘의 별자리였다. 또, 같은 고인돌 무덤에서 발굴된 질그릇 조각의 연대를 핵분열비적법으로 측정해보니 4천9백26년(±7백41년)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이것은 적어도 기원전 2천9백~3천년 전에 우리 선조들이 천문을 세밀하게 관측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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