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세상 파괴하는 ‘넷 반달리즘’
  • 김규태 | 싸이컴 대표·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 ()
  • 승인 2009.10.2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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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사람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하거나 조작된 소문 퍼뜨리는 경우 많아

“연예인 ○○이 어제 술 마시고 시비 건 사건을 고발합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이같은 글에 ‘낚시’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 특정인에 대해 근거 없이 비방을 하거나 조작된 소문을 퍼트리는 경우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에 그치지 않는다. 사건·사고로도 이어진다.

얼마 전 어린이 성폭행범이라며 올라온 사진의 주인공은 평범한 중년 남성이었다. 이로 인해 선량한 시민이 인터넷상에서 범죄자로 몰리는 일이 발생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휴대전화 카메라 등을 활용해 개인의 사생활을 폭로하거나 자극적인 장면만을 골라 게시판에 올리는 일이 발생해 물의를 빚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인터넷 참여자들 간에 ‘느슨한 규제’ 필요

▲ 지하철 안에서 애완견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그냥 내린 여자 승객 사진이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개똥녀’라는 제목으로 공개되었다. ⓒ연합뉴스

이것은 ‘개똥녀’ 사건에서도 확인되었다. 사건 전후에 이른바 개똥녀가 똥을 치웠는지 여부, 치울 수 없을 만한 사정이 있었는지 등은 확인할 길 없이 비난만 이어지는 상황으로 치달았다.

강원대 유승호 교수는 지난 10월20일 ‘디지털 컨버전스의 사회적 의미’라는 주제로 인천대학교에서 열린 한국 사회학회 심포지엄에서 이같은 일들을 ‘넷 반달리즘’이라고 정의했다. 사건의 정확한 정보보다는 특정인과 집단이 마녀사냥에 몰릴 수 있도록 하는 인터넷 행위를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반달리즘은 원래 문화예술품이나 종교 시설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5세기 무렵 서유럽에 침입해 로마 문화를 약탈·파괴한 반달족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넷 반달리즘을 경험하게 되면 인터넷상에는 더러운 것만 있다는 선입견이 생기게 된다. 이런 생각이 만연할수록 건전한 인터넷을 만들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유교수는 “반달리즘은 일상에서보다 인터넷상에서 훨씬 파괴력이 크다. 인터넷 공간은 특정 주인이 지키는 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인터넷은 사실상 공유 지대로서 모두가 선한 목적으로 사용해야 유지되지만, 이같은 반달리즘이 횡행할 경우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게 되어 결국은 황무지로 변한다는 이야기이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인터넷 참여자들 간에 느슨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유교수는 지적했다. 느슨한 규제는, 정부 등의 제제가 아니라 네티즌들이 나쁜 글에 대해서 지적을 해주고 좋은 글에 대해서 칭찬을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가 대중들이 만드는 것임에도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이처럼 느슨하고 자율적인 규제 덕분이다. 위키피디아의 경우 누구나 백과사전의 내용을 고칠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의 눈이 그것을 감시하면서 나쁜 정보를 밀어내는 논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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