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갯속에 갇힌 ‘표류 도시’ 객관식 문제 풀이로 가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10.27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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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세종시 3대 구상’ / 과학·교육, 기업, 녹색 도시 등 검토…‘원안 유지’ 목소리도 커 결과 주목

ⓒ연합뉴스


세종시 문제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9월3일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국무총리에 내정되자마자 작심했다는 듯이 제기했던 ‘세종시 원안 수정론’이 벌써 두 달째 논란을 빚고 있다. 더군다나 이번 논란의 끝이 어디쯤일지조차 쉽게 가늠할 수 없다. 야권은 “원안대로 가야 한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 지도부는 “원안 처리가 당론이다”라고 강조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친(親)이명박계를 중심으로 “세종시 원안을 수정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이명박(MB) 대통령이 지난 10월17일 장·차관 워크숍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에는 적당한 타협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며 ‘세종시 원안 수정’ 의지를 간접적으로 피력한 이후 여권의 대세가 세종시 수정안 쪽으로 이동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따라서 이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언제, 어떤 방식으로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할지 주목된다.

정치권에서는 MB와 여권이 세종시 원안인 행정부처 9부·2처·2청의 이전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기보다는 ‘최소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면 백지화’할 경우 반발 여론이 강하고 법을 개정해야 하는 등 적지 않은 진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정부와 여권 입장에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최소화’할 경우에는 ‘행정중심도시특별법’(일명 세종시법)을 개정하지 않고 정부 고시 변경만으로도 가능하다. 특히 충청 민심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비난만큼은 면할 수 있게 된다.

세종시의 ‘미래’에 대해 총리실 관계자는 “여러 가지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했다. 총리실 안팎에서는 오는 11월에 총리실이 세종시 수정안 ‘초안’을 작성해서 청와대에 제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총리실이 마련하고 있는 ‘수정안’은 큰 테두리에서 이대통령의 복안을 반영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대통령과 정총리가 세종시 수정 문제에 대해 교감을 갖고 있다 해도 최고 통치권자인 이대통령의 의중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MB가 구상하고 있는 세종시는 어떤 모습일까. MB의 대통령 공약과 최근 발언 등을 토대로 새로운 ‘세종시의 청사진’들을 예상해보았다.

[검토1] 대통령 후보 시절 “충청권에 국제 과학비즈니스 도시를 건설하겠다”- 과학·교육 도시 ‘유력’

우선 세종시를 과학과 교육을 접목한 복합도시로 만드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MB의 대선 공약이었던 ‘과학비즈니스 벨트 사업’을 세종시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MB는 대통령 후보 시절 “충청권에 행정도시 외에도 국제 과학비즈니스 도시를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정운찬 총리는 지난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세종시=자족 도시’를 강조하면서 “과학 연구 기관, 비즈니스 관련 기관, 대학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라고 밝혔는데, 여기서 언급한 ‘과학 연구 기관’이 바로 MB의 ‘과학비즈니스 벨트 사업’과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과학·교육 도시를 조성하기 위한 분위기도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 지난 2월 ‘과학비즈니스 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법법’이 국회에 제출되어 현재 계류 중이다. 이 법안에 따르면 과학비즈니스 벨트 사업은 오는 2015년까지 3조5천억원을 투입하는 대형 국책 사업이다. 특히 자족 도시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과학과 지식을 기반으로 한 기업을 대량 유치해야 한다. 

이같은 과학 도시에 교육 도시를 결합시키는 형태가 바로 과학·교육 도시의 밑그림이다. 이미 카이스트(KAIST)와 고려대는 일부 시설을 세종시로 옮기기로 한 상태이다. 여기에 서울대 이공계 학과와 다른 대학의 일부를 이전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정부 부처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만 옮겨가도 된다는 이야기가 정부 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서울대는 이 방안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세종시가 처음 계획대로 2030년까지 인구 50만명의 도시로 성장하려면 ‘서울대급’ 대학을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는 지난 10월22일 한국선진화포럼(이사장 남덕우 전 총리) 주최로 열린 ‘행정복합도시(세종시),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에서 “세종시가 대학 도시가 되면 대덕의 카이스트와 세계적 수준의 기초 과학 연구원, 대기업의 연구소를 비롯한 각종 연구소, 첨단 기업 등이 경쟁하고 협력하면서 과학 발전의 메카로 발전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검토2]“포항에 포항제철 세워 먹고살았다” - 기업 도시 ‘급부상’

기업 도시는 세종시를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한 다음 우리 기업이나 외국 자본을 유치하면서 대규모 산업 단지를 조성하는 방안이다. 기업 도시로 결정되면 무엇보다 주거와 교육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자족적이고 복합적인 기능을 갖춘 도시가 된다는 것이다.

▲ 국무총리실은 오는 11월에 ‘세종시 수정안 초안’을 작성해 청와대에 제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왼쪽은 회의 석상에 나란히 앉은 정운찬 총리와 이명박 대통령. ⓒ시사저널 유장훈

최근 들어서 이 기업 도시 방안이 유력하게 떠올랐다. 이대통령이 ‘세종시 논란’과 관련해 참모들에게 “포항에 포항제철을, 구미에 전자산업단지를 세워 두 도시가 수십 년 동안 먹고살 수 있었다. 세종시에도 그런 것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는 것이 일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부터다.  

만약 세종시를 기업 도시로 만들겠다는 방침을 굳힌다면 우리 기업뿐 아니라 다국적 기업과 국제 기구까지 유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전남 무안, 충남 태안, 강원 원주 등 현재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다른 기업 도시들과 세종시를 어떻게 차별화할 것이냐가 숙제로 남는다.

남영우 고려대 지리교육과 교수는 “교육 도시를 비롯한 기업 도시·첨단 과학 기술 도시는 인구 흡입력이 있기 때문에 고려해볼 만하다. 특히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DMC)의 경우 모두 12만명에 달하는 고용 창출과 8조5천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부가 가치가 기대되는데, 자족 도시를 건설하면 이러한 기능을 유치할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의 방침이 크게 과학·교육 도시와 기업 도시로 압축되는 분위기이지만 최종적으로 어떤 기능을 갖춘 도시가 결정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정운찬 총리는 “과천(교육특구)으로 만들지, 송도(경제특구)로 만들지 고려해야 한다”라는 입장이다.

[검토3]‘녹색 성장’ 기조와 부합 - 녹색 첨단 도시 ‘검토’

세종시를 녹색 도시로 만드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녹색 도시는 신 재생 에너지와 탄소 저감 기술 등 녹색 성장 산업과 관련된 기업과 연구소 등을 대규모로 유치하는 구상이다.

MB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국책 사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녹색 성장’ 산업 육성인데 세종시를 거기에 맞는 녹색 도시로 조성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세종시는 설계 단계부터 친환경적인 요소들을 도시 곳곳에 심어놓았다. 도시에 녹지를 대량 확보했으며, 행여 난개발과 투기 지역이 발생할까 봐 세종시 주변 지역까지 계획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여기에 도시전체에 자원 순환·에너지 절약형 기술을 접목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문제는 ‘녹색 첨단 도시’라는 개념으로 도시의 자족 기능을 충족시킬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정부가 ‘녹색 도시’ 카드를 만지작거리면서 머뭇거리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이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임할 때 서울시의회 의장으로 수도이전반대 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임동규 한나라당 의원이 ‘연기·공주 지역 녹색 첨단 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조만간 발의할 예정이어서 주목된다. 이 법안은 행정 부처 이전 계획을 완전히 백지화하면서 신 재생 에너지 산업과 국제 의료 단지, 항공 우지 산업 등을 세종시에 유치해 자족 기능을 갖추도록 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한편, MB를 비롯한 여권이 세종시 원안을 수정해 실제로 추진하는 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당장 어떤 청사진을 제시하더라도 ‘원안’이 아니라면 충청도민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야권 역시 수정안 철회를 요구하면서 더욱 강경하게 맞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대통령이 ‘국가 백년대계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넘어야 할 ‘큰 산’ 가운데 하나는 ‘세종시 원안 유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를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점이다. 박 전 대표는 10월23일 “이 문제는 당의 존립에 관한 문제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충청 지역에서 내년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여권 인사들까지 ‘수정안 반대 깃발’을 들게 되면 정국은 또 한 차례 ‘세종시 태풍’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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