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장들의 수상한 ‘친목’
  • 양주·의정부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10.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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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뢰 사건으로 실체 드러난 경기도 북부 지역 기관장 모임 ‘여명회’ / 시장·경찰서장·군 사단장 등 11명이 회원…“총무 개인 비리일 뿐” 주장

▲ ‘여명회’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저녁 모임과 골프 회동을 가졌다고 한다. ⓒ시사저널 사진자료


지난 10월19일 오후,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한 고급 레스토랑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대신 가게 입구에는 ‘업종 변경을 위해 휴업한다’라는 안내 표지판만 세워져 있었다. 이 레스토랑의 주인 장 아무개씨(61)는 지난 9월7일 ‘제3자 뇌물 취득 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었다.

군사시설 보호 구역인 양주시 광적면 석우리의 임야(2만2천8백㎡)를 개발할 수 있도록 해당 군부대와 협의해서 합의를 받아주겠다는 명목으로 이 임야 주인으로부터 1억4천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였다. 

경찰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새로운 사실을 포착했다. 경찰이 압수수색한 장씨의 컴퓨터에서 ‘군(軍)과 관련된 문서’들이 나왔던 것이다. 이에 경찰은 지난 9월21일 장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수사하기 위해 이 사건을 의정부경찰서에서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사로 이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게다가 경찰은 장씨가 경기 북부 지역 기관장들의 모임인 ‘여명회’의 총무를 맡고 있다는 사실까지 추가로 밝혀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임야개발권을 내준 군 부대장도 ‘여명회’ 회원이었다.

그러면서 이 지역에서는 이번에 처음 드러난 ‘여명회’의 회원은 누구이며, 이들이 그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등에 대한 관심이 커져가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여명회’는 국정원 출신으로 양주시가 고향인 최 아무개씨가 주도해서 지난 2003년에 만든 모임이다. 당시 최씨가 고향 선배인 이 지역의 한 유력 인사를 비롯해 기관장 서너 명에게 모임을 제안하면서 처음 만들어졌다.   

해를 거듭하면서 이 모임의 규모는 커졌고 경기 북부 지역 기관장 모임으로 확대되어 시장과 시의회 의장, 군 사단장, 경찰서장 등이 회원으로 가입했다. 여기에 경기 북부 지역을 담당하는 국정원과 기무사 등의 간부들도 합류했다.

여명회 회장인 최씨는 지난 10월21일 전화 통화에서 “내가 지난 2000년 공직 생활(국정원)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이 모임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구속된 ‘장총무’는 지난 2005년에 한 회원의 추천으로 우리 모임에 들어와 총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모임 이름도 없었으나 2007년쯤 한 회원의 제안으로 ‘여명회’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최회장은 ‘장총무 사건’은 단순한 개인 비리 사건이라며 여명회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여명회는 최회장과 장총무 그리고 임충빈 양주시장, 원대식 양주시의회 의장, 오세창 동두천시장, 군 사단장 및 부대장 네 명, 국정원 및 기무사 간부 등 모두 11명이 회원으로 있으며, 한두 달에 한 번꼴로 모임을 가졌는데 평균 6~7명 정도가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회장과 장총무만 ‘민간인’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현역 기관장들이다. 기초단체장 등이 지방선거에서 낙선할 경우 자연스럽게 모임에서 탈퇴했고, 새로 당선된 이들이 새 멤버로 들어왔다. 이 지역에 새로 부임한 군 사단장이나 국정원·기무사 간부들 역시 자연스럽게 새 식구가 되었다.

그런데 ‘장총무 사건’이 터지자 회원들은 상당히 곤혹스러워했다. 여명회 회원인 오세창 동두천시장은 “선거에 당선된 다음에 전임자로부터 당연직이라는 말을 듣고서 여명회에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장총무 사건)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건이다”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임충빈 양주시장측은 “시장님은 그 모임에 몇 번 안 나간 것으로 안다”라고만 밝혀왔다. 여명회와 관련해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면 이 지역 기관장들은 여명회에서 무엇을 했으며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을까. 최회장은 “특별한 이야기는 없었다. 업무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잡담 비슷한 이야기만 했다. 간혹 현역 시장은 정책을 홍보했고, 군 사단장은 대민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오세창 시장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주로 했으며 정보 교환도 이루어졌다. 특히 우리 지역(동두천)에 군사 문제가 많이 있어 군 사단장 등과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이 모임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무슨 정보를 교환했는지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장총무’가 앞서 언급했던 땅 주인으로부터 받았던 1억4천만원 가운데 아직 그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은 6천만원 정도를 여명회 활동비로 사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여명회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인했다. 회비를 걷지 않았고,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저녁 식사와 골프 비용 등을 냈다는 것이 최회장과 일부 회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따라서 장총무가 여명회에서 특별히 돈을 쓸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모여서 잡담만 했을 뿐이다”

경기 지역에서는 장총무 사건이 터지자 갖가지 관측과 루머가 나돌고 있다. 경찰은 장총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한 기관장의 ‘불미스러운 일’을 적발해 현재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해당 기관장측은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사정 기관들도 경찰 수사와 별도로 자체적으로 이 사건과 관련해 ‘특별 조치’를 취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정원 관계자는 “‘특별한 조치’를 취한 적이 없다”라고만 답했다.

기무사에 대해서도 해당 군부대를 압수수색했거나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기무사측은 이와 관련해 “여명회는 자연스러운 지역 기관장 모임이며 ‘장총무 사건’은 개인의 문제였기 때문에 군부대에 대한 압수수색이나 조사는 전혀 없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경기 지역에서는 ‘여명회’가 단순한 친목 모임의 범주를 넘어섰던 것 같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경기경찰청의 향후 수사 결과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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