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이 일깨운 ‘가치 소비’의 힘
  • 이민훈 |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 ()
  • 승인 2009.10.28 18: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황이 일깨운 ‘가치 소비’의 힘


▲ 루이비통, 샤넬 등 럭셔리 브랜드 매장을 갖춘 서울 명동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명품관. ⓒ시사저널 박은숙

최근 반복된 경기 침체로 소비자의 생활 전반에 걸쳐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미래 소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선정한 2008년 히트 상품만 보더라도 합리적이고 의미 있는 지출에 대한 관심과 함께 자산 관리에 대해서도 ‘어떻게 큰 돈을 벌 것인가’보다는 ‘기존 자산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교통요금결제서비스나 넷북과 같이 가격이 낮으면서 확실하게 부가가치를 제공하는 상품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시작된 글로벌 경제 위기로 한국 소비 시장도 외환위기 이후 최대의 충격을 경험하면서 이같은 긴축적 소비 심리가 극에 달했다. 소득 감소, 자산 가치 하락 등 경제적 충격뿐 아니라 유명 인사 사망, 신종 전염병 확산 등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위축시켜 소비 침체를 초래했다. 예를 들어 2008년 배우 최진실의 자살(10월),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등으로 침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또한, 2009년 3월 멕시코와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신종플루가 5월 국내에도 상륙해 8월 이후 확산됨에 따라 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불황기의 경험이 한국 소비자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우선 가장 큰 변화는 소비자들이 알뜰 소비를 일상화함에 따라 향후 가격 대비 가치를 꼼꼼히 따져보는 ‘가치 소비’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과거 미국과 일본에서도 경제 위기 후 소비 트렌드가 급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 경기 침체를 겪은 후 미국 소비자는 방만하고 낙관적이었던 1980년대식 소비 행태를 반성하기 시작했고, 가족 중심의 소박하고 평범한 생활에 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부터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한 일본에서는 이후 경기가 회복된 2000년대까지도 안정·검약을 지향하는 소비가 대세로 자리 잡았다.

한편으로는 오랜 불황으로 인해 억눌러왔던 소비 욕구가 경기 회복과 함께 분출될 경우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물론 일시적으로 현실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이기기 위한 항스트레스 소비 성향은 경기가 회복되면 점차 순화될 것으로 보인다. 비단 경기 호·불황의 변화뿐 아니라 최근 글로벌 메가트렌드로 정착된 ‘친환경’ ‘하이브리드’ ‘안전과 보안’ 등도 기존 소비 트렌드에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요인에 바탕을 두고 경제 위기 이후에 떠오를 10대 소비 트렌드를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대표적인 3대 트렌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더불어 향후 소비트렌드 변화에 대한 기업의 대응 자세에 관해 생각해보자.

1. 거품 걷어내고 차별화된 새로운 매력 포인트 추구 : New Focal Point 

불황기 이전에는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다양한 기능을 선호했던 소비자가 구매력이 약화된 불황기에는 핵심 기능을 보유한 저가 제품을 선택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대표적으로 가격 거품을 제거한 맥도날드의 커피, 저가 노트북 넷북, 유통업체의 PB상품, 패스트 패션, 저가 화장품 등이 히트했다. 반면, 향후 경기가 회복되고 구매력이 향상되면 단순 저가가 아닌,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핵심 기능에 ‘플러스 알파’ 요소를 겸비한 상품이 선호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상품들은 차별화된 인터페이스 기능이나 맵시 있는 스타일 등 새로운 매력 포인트를 부가해야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PB 상품에서도 무조건 저가보다는 기존의 스탠더드급 스타일에 이코노미급 가격을 갖춘 업그레이드 PB 상품이 인기를 끌 것이다.

2.럭셔리 소비의 진화 : Neo-Luxury

고가·고품격을 핵심으로 하는 럭셔리 소비는 이번 불황기에 세계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설립 이후 30여 년간 승승장구해 오던 독일 명품 패션그룹 에스카다가 2009년 8월 파산했고, 프라다도 2008년 말 경영 악화로 인해 명품 최대 성수기인 성탄 시즌에 이례적으로 예정에 없던 할인 행사를 단행했다. 국내에서도 VIP용 럭셔리로 활기를 누렸던 수입차 시장이 침체되어, 2009년 1?7월 말까지 국내 수입차 등록 대수가 3만3천62대로 전년 동기에 비해 17.2% 줄었다. 그러나 향후 경기가 회복되는 국면에서는 VIP 시장이 재활성화될 전망이다. 특히 VVIP층만 향유하던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 선진국형 레저 상품 등이 일반 VIP층으로 확산될 것이다. 귀족 스포츠인 요트와 승마, 특급호텔 최고급 파티, 고급 복층 콘도, VVIP 전용 카드 및 컨시어지 서비스, 호텔식 의료 케어 및 귀족 수술, 크루즈 여행, 명품 시계(오데마 피게, 파텍 필립, 브레게), 한정 생산 자동차(벤틀리, 페라리) 등이 대표적인 인기 예상 상품이다.

3. Fun은 소비 생활의 기본 : Funvergence(Fun+conv-ergence) 

경제적 불안이 증가하고 소비자의 항스트레스 욕구가 부각됨에 따라 생각 없이 편하게 웃으며 즐길 수 있는 문화 콘텐츠가 인기를 끌었다. Fun을 소재로 하는 <개그콘서트> <내조의 여왕> 각종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 등이 대표적이다. 유통업체, 외식업체의 Fun 마케팅이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제품 보호용에 국한되었던 제품 패키지, 정보 제공 기능에 초점을 둔 광고의 주제까지 ‘유머’ 중심으로 전환되는 추세이다. 2008년 10월부터2009년 5월까지 히트한 TV 광고 중 59%가 유머 및 감성에 호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회복 후에는 불황기 ‘유머’ 중심의 Fun에서 브랜드 전략 차원의 다양한 Fun이 개발되고 확산될 전망이다. 불황 중 일시적인 손님 몰이를 위해 활용되었던 단기 Fun 이벤트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브랜드 스토리’를 담은 장기 Fun 이벤트도 인기를 모을 전망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