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묘지’였을까, ‘천문대’였을까
  • 이종호 |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전문위원 ()
  • 승인 2009.11.02 20:4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국 런던 서쪽 솔즈베리 평원 위의 고대 거석 구조물

▲ 영국 윌트셔 주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고대의 거석 기념물인 스톤헨지. ⓒ연합뉴스


영국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백30km 떨어진 솔즈베리 평원에 있는 스톤헨지(1986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는 높이 4m, 무게 25~30t의 거대한 돌을 원형으로 늘어놓은 거석 유구(遺構)이다. 환상열석유적(環狀列石遺跡)이라고 부르는데, 아틀란티스 후예들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증거로 자주 제시되기도 한다. 스톤헨지라는 뜻은 ‘스탄(stan)’과 돌쩌귀를 의미하는 ‘헹그(hencg)’라는 고대 영어 단어에서 유래하는데, 이 말은 헨리왕 시대보다 수백 년 앞서 영국을 정복한 색슨족이 사용한 말이다.

스톤헨지는 선사 시대의 입석 유적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존재이다. 예컨대 돌기둥들의 윗부분을 연결시키는 거대한 상인방(上引枋) 돌들은 똑바로 잘라낸 단순한 평석(平石)이 아니라 돌 하나하나를 곡선으로 잘라 이들을 전체적으로 결합한 모양이 원형을 이루고 있다. 더욱이 돌기둥들은 옛날 그리스 신전의 기둥들처럼 가운데 부분이 불룩하게 되어 있는데(배불림), 그것은 원근법의 영향을 감안해 밑에서 올려다볼 때 기둥이 직선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마찬가지 이유로 안쪽의 상인방 돌들은 가장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좁게 깎여 있다.

스톤헨지를 상공에서 보면 손거울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손잡이에 해당하는 부분은 스톤헨지의 중심으로 향하는 길로서 큰길(大路)이라는 뜻의 애버뉴라 부른다. 그리고 입구 근처에 있는 것이 힐스톤(뒤꿈치), 중심에서 바깥쪽을 향해 트리리톤, 서센원, Z구멍, Y구멍, 오브리 구멍, 주구의 순서로 되어 있다. 스톤헨지는 엄밀한 의미에서 고인돌과 같은 분류인 거석 유물로 분류하지만 그리스 신전과 같은 중앙 집중적인 배치 방식으로 공간을 한정했다는 점에서 건축물로 간주한다.

스톤헨지에서 놀라운 점은 이 구조물을 세우기 위해 사용된 돌이 총 2천4백t이나 된다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많이 사용된 서센석은 스톤헨지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에서 채취했지만, 스톤헨지에서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 청석사암은 2백40km가량 떨어진 곳에서 옮겨왔다. 학자들은 2백km나 넘는 곳에서 청석사암을 옮겨 온 것으로 보아 이 돌들이 당시 특별히 신성시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한다.

스톤헨지의 구조를 볼 때 천문학과 관련되어 있으리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거대한 서클 중앙에 서서 태양이나 달이 안표(眼標)가 되는 어떤 돌의 어느 쪽을 지나 지평선으로 지는가를 관찰함으로써 무언가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스톤헨지가 그 당시 사람들이 지녔던 지적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건설된 구조물이라는 뜻이다.

▲ 위에서 내려다본 스톤헨지 유적도.

학자들, “제사 등 의식 치르는 데 사용된 건물” 한목소리

▲ 고대 복장을 한 사람들이 스톤헨지 근처에서 종교 의식을 치르고 있다. ⓒ연합뉴스

근래 스톤헨지의 효용성에 대해 매우 주목할 만한 연구가 발표되었다. 과학자들은 스톤헨지에서 발견된 화장(火葬)된 흔적들의 연대를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기원전 3천년 전부터 스톤헨지의 본래 용도는 시신을 매장하는 무덤이라고 밝혔다. 스톤헨지 외곽의 도랑이 건설된 시점과 5백년간 화장 장례식이 지속된 기간이 겹치는 것을 볼 때 시신 매장이 스톤헨지 중심부 제단의 중요한 구성 요소라는 설명이다. 이는 스톤헨지가 처음에는 무덤으로 건설되었지만, 완성된 후에 용도가 변경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초기의 스톤헨지 용도가 어떠하든 대다수 학자들은 스톤헨지가 제사 등의식을 치르는 데에 사용된 건물이라는 데는 동의한다. 초기 목조 건축물 단계에서는 유물의 중심부에 목재를 원형으로 세워 일반 사람들이 중심부로 들어가는 것을 통제했다. 그러므로 제방과 배수로에 의해서 외부와 구분된 원형의 성소 안에 들어간 사람들은 석조 건물의 중심부에서 제의를 드리는 사제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 유적의 심장부에서 바깥을 바라볼 수 있었던 소수의 특권층은 1년 중 가장 중요한 때로 인식되던 하짓날 아침에 스톤헨지의 진입로 위로 태양이 뜨는 순간을 감격적으로 바라보았을 것이다.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이 지역 인근뿐만 아니라 영국 전역에서 한반도의 고인돌과 비슷한 형태의 고인돌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한국과 영국은 전혀 문화적인 접촉이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데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형태의 고인돌이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연구 대상임은 물론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