곪다 곪다 터진 영국 의회 최대 스캔들
  • 조명진 | 유럽연합 집행이사회 안보자문역 ()
  • 승인 2009.11.02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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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 부당 청구 건으로 의원직 내놓은 의원만 46명…영국 정치 제도 허점 여지없이 드러내

▲ 영국 의회 민주주의의 상징인 국회의사당 건물 앞에서 관광객들이 이동하고 있다. 가운데 우뚝 솟은 시계탑은 국회의사당의 상징물인 빅벤. ⓒ연합뉴스

영국에서는 10월23일 현재 보조금 부당 청구 스캔들이 드러난 지난 5월부터 6백46명의 국회의원 중 46명의 의원이 의원직을 내놓았다. 초유의 사태이다. 국회의원이 공금을 부당으로 청구한 사실은 집권 노동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고, 보수당 의원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전반적으로 영국 정치인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이 사실은 지난 5월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 텔레그라프를 통해 공개되었다. 영국 국회의원들은 자신의 애완견 사료에서부터 집 수리 비용까지 다양한 비용을 공금으로 썼다. 징계위원회는 국회의원의 공금 남용을 세 가지 유형으로 보고 있다. 차익을 노린 부동산 관리, 사치스럽거나 부당한 물품 구입비 또는 서비스비 청구 그리고 사기이다.

데이비드 체이터 노동당 의원은 이미 완불한 모기지에 대해서 추가로 주택보조금을 신청한 것이 드러났고, 베리 노스 의원은 2004년에 이미 모기지를 완납했는데 그 이후 런던 아파트에 대해서 1만3천 파운드를 추가로 타냈다. 이들은 당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다. 게다가 1만6천 파운드를 더 타낸 농림장관 엘리오크 몰리 의원은 노동당에서 당적을 박탈당했다. 사히드 말리크 법무장관은 책임을 지고 사임했고, 야당 당수 카메론의 보좌관인 앤드류 맥케이도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동당의 전 국회의원이었던 탐 델옐 의원은 2005년 의원직에서 사퇴하기 2개월 전에 1만8천 파운드짜리 책장을 국회 비용으로 청구한 적이 있었다. 노동당 의원인 제럴드 카우프만 경은 뉴욕 고가구점에서 산 1천8백51파운드짜리 양탄자와 8천8백 파운드짜리 텔레비전의 구입비를 청구한 적이 있다. 문제가 불거지자 카우프만 경은 양탄자 비용은 자신이 물겠다고 밝혔다.

얼마 안 되는 비용을 청구해 망신을 당한 보수당의 더글라스 호그 의원은 피아노를 조율하는 비용과 마구간 수리 비용으로 2천2백 파운드를 청구했다. 보수당의 앤소니 스틴 의원은 시골 주택에 대해서 지난 4년간 8만7천 파운드를 청구했는데, 그 비용에는 정원사를 불러 나무를 손질한 서비스 요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자유 민주당의 리차드 로스 의원은 런던의 아파트에 거울과 오디오 스테레오를 사는 데 4천 파운드, 서랍장을 사는 데 1천4백75파운드를 청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보수당의 피터 비거스경은 오리집을 구입하는 데 1천6백45파운드를 청구했다. 문제의 심각성은 공금을 과다 청구하고 남용한 의원들 대다수가 자신이 한 것은 국회의원 보조비 사용 규정 범위 내에서 한 것이며, 문제가 된다면 청구했던 돈을 다시 반납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다.

총리가 장관의 공금 유용에 대해 변호해 국민 분노 더 키우기도

▲ 의원들의 비리가 불거진 뒤 분위기가 썰렁해진 의회 건물 입구. ⓒ연합뉴스

유권자들은 분노했다. 노동당과 보수당에 대한 지지도가 4% 포인트 하락했고, 유권자 3분의 1이 정치인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고 여겼다. 영국 국회의원들의 세비는 연 6만5천 파운드로 영국 월급자 상위 4%에 해당된다. 집권 노동당의 또 다른 문제는 달링 재무장관이 이번 스캔들에 연루되어 있다는 점이다. 달링 장관은 자신의 아파트 청소비로 지난 4개월간 6백 파운드를 청구했다. 이는 액수의 과다를 떠나 노동당 정부에 치명타를 입혔다. 처음에 브라운 총리는 달링 장관의 공금 부당 사용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으나, 달링 장관이 환불하겠다고 공표함으로써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대했다. 브라운 총리가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 일이 또 다른 문제가 된 것이다. 브라운 총리는 자신의 내각에서 벌을 받을 장관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 천명했지만, 정작 달링 재무장관의 공금 유용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그를 지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물론 달링 장관직만 위태로운 것은 아니다. 이처럼 브라운 총리의 수습책은 카메론 보수당 당수의 적극적인 대처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보수당의 데이비드 카메론 당 대표는 국민들의 분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텔레그라프의 보도는 국회의원들의 탐욕을 보여 주었다. 국회의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작동 불능의 정치 체제를 드러냈다. 경비를 부당하게 청구한 국회의원들을 통해 세상이 파워엘리트에 유리하게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의 분노는 웨스트민스터(영국 국회의사당)의 부패한 정치인들을 성실한 자들로 교체할 때만 가라앉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보수당 국회의원이 납세자를 속였다면 더 이상 국회의 원직을 유지할 이유가 없다고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카메론 당 대표는 보수당 내 공금 남용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들은 징계했을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수를 65명 줄이면 연간 1천2백만 파운드의 감세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현재 6백46명인 의원 수를 6백명 이하로 줄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이번 공금 부당 청구 스캔들로 이미 46명의 의원이 의원직을 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우연히도 6백명의 의원만 남아 있다. 실제로 부당 청구한 것을 인정해 반납한 의원 수는 전직 의원을 포함해 2백60 명에 이르고 액수로는 60만 파운드를 상회한다.

제보자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영국군이 제대로 장비를 갖추지도 못하고 싸우는 상황인데, 정치인들은 국민 세금을 사치스럽게 쓰고 있다는 것에 격분했다고 텔레그라프는 전한다. 제보자는 납세자는 세금이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알 권리가 있기 때문에 정보를 언론에 제공했다고 밝혔다. 제보자의 정보는 <남는 비용 없음(No Expenses Spared)>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지난 9월25일 출간되었다. 브라운 총리는 이 공개된 자료를 일컬어 “지난 2세기 안에 영국 의회의 최대 스캔들(the biggest Parliamentary scandal for two centuries)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빅토리아 대영제국 시절 디지 레일리 총리의 말대로 ‘의회민주주의는 강한 야당이 있을 때 건전하다’라는 말처럼, 부패한 국회의원들을 골라내는 기능이 작동하는 한 영국 정치 풍토는 건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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