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 저력 여전히 막강 ‘고대경제인회’ 단합 두드러져
  • 이춘삼 |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11.0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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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재계 법무장관·검찰총장 다수 배출…경제인회, 그룹 총수·학자 등 모여 활발한 활동


■법조계

요즘에는 세계화와 국제화의 물결 속에 정경대나 경영대(과거의 상과대)의 분발이 두드러지지만 예전까지만 해도 고려대를 대표하는 단과대학은 단연 법과라고 해도 무리한 말이 아니었다. 그 연유를 따져 보면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 시절부터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실상 법과대의 기틀을 닦았던 유진오 총장의 재임 기간(1960~65년)동안 법과대학의 세가 크게 신장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여타 명문 사립대에 비해 고려대에 지방 출신 우수 학생들의 지원이 많았던 것도 한 가지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법조계에서 고대 법대 출신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비중은 전통적으로 확고하다. 그 단적인 예는 검찰 인사에서 드러난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 두 요직에 기용된 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뚜렷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고려대의 검찰 인맥은 어느 다른 분야보다 줄기가 굵고 진하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검찰총장, 노태우 대통령 시절 안기부장을 지냈던 서동권(경북고 1952년 졸업, 정법대 1957년 졸업, 고시 사법과8회) 변호사는 “우리(고려대 동문) 선후배가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어야 한다”라며 결속을 강조하고 독려했다고 한다. 대부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분야별로 차례로 맥을 짚어보자. 우선 법무부장관을 역임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1952년 상학부를 졸업한 이종원 전 법무부장관은 변호사시험 3회 출신으로 전두환 정권 초기 장관을 지냈으며 공인회계사 시험도 통과해 공인회계사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종남(법학과 57) 장관만큼 다채로운 경력을 가진 인물도 드물다. 덕수상고를 졸업한 그는 법학과를 이수하고 12회 고시 사법과에 이어 11회 공인회계사 시험도 합격했다. 대검 중수부장, 서울지검장, 검찰총장, 법무부장관을 거쳐 공인회계사회 회장을 지냈으며 1999년 9월에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에 의해 감사원장에까지 임명되었다. 이정우(고시 사법과 6회) 장관은 서울형사지법원장, 대법원판사를 거쳐 법무부장관에 선임된 경우이다.

전남 신안 출생으로 조선대부고 출신인 김정길(1963년 정외과 졸업, 사시 2회) 장관은 김태정 장관이 옷 로비 사건으로 물러난 자리(49대 법무부장관)를 이어 받았고, 그 1년여 뒤에도 재차 기용되어(53대) DJ로부터 두 차례 부름을 받는 기록을 세웠다. 송정호(법학61(이하 학번), 사시 6회) 장관은 전주·광주·부산 지검장과 광주고 검장을 지냈으며 2009년 7월부터 청계재단(이명박 대통령이 출연한 사재의 관리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성호(법학 68, 사시 16회) 장관은 대검 중수부 4·3·2과장, 서울지검 특수3·1부장, 춘천·청주·대구지검장을 지낸 수사통. 노무현 정권 후반기 법무부장관을 지냈고,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는 10개월 동안 국정원장으로 일했다.

현직에선 이귀남-한상대-노환균-최교일 포스트 형성

검찰총장으로는 1944년 보성전문을 졸업하고 2회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김종경 총장(1980년 5월~81년 3월 재임)이 있고, 그로부터 4년 후 서동권 총장이 그 뒤를 이었다. 1995년 9월~97년 8월 재직한 김기수(법학 62, 사시 2회) 총장은 같은 시기 재임한 안우만 법무부장관의 경남고 2년 후배이고 김기춘 전 법무장관과는 동기로서 동래고 출신의 김도언 직전 총장과 함께 검찰 내 PK(부산·경남) 인맥의 대표 주자로 꼽혔다. 김각영(법학 62, 사시 12회) 총장은 고시 합격이 조금 늦었지만 서울지검장, 대검 차장, 법무부 차관을 거쳐 2002년 11월 총장의 자리에 올랐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직후 평검사들과 대화를 가진 직후 불신의 뜻을 내비치자 조기 퇴진했고 김종빈(법학 67, 사시 15회) 총장도 동국대 강정구 교수 구속 문제로 천정배 법무부장관과 갈등을 빚은 뒤 물러났다.

사법부 쪽은 검찰보다 숫자가 적다. 정경식(법학 57, 사시 1회) 전헌법재판관은 대검 공안부장, 청주·대구·부산지검장, 대검 공판송무부장, 대구고검장을 지냈다. 유지담(체신고 졸업, 법대 61, 사시 5회) 전 대법관은 사법부 내 ‘고려대 인맥의 대부’로 불린다. 주선회(법학 65, 사시 10회) 전 헌법재판관은 대검 감찰부장·공안부장, 청주·울산·광주지검장을 지냈고,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지명자에 대한 논란 사태로 공석이 된 소장직 권한대행을 6개월간 맡았다.

그 밖에도 고대 출신 법조인 중에 특기할 만한 인물이 몇 명 있다. 변호사시험 2회 출신인 김일두(법학과 1948년 졸업) 전 대검 차장은 수필가로도 이름이 많이 알려졌으며, 군법무관 출신인 안경열(1949년 법대 졸업) 전 감사원 감사위원도 있다. 이원성(법대 1965년 졸업, 사시 5회) 전 대검 차장은 제주지검장, 대검 형사부장·중수부장, 대구고검·부산고검장을 역임했고, 이명박(MB) 정권 출범과 동시에 청와대 민정수석(2008년 2~6월 재임)을 지낸 이종찬(1970년 법학과 졸업, 사시 12회) 검사는 대검 중수부와 서울지검 특수부의 부장, 중수부장, 각 지검장, 서울고검장까지 지낸 특수 수사통으로 이명박 서울시장의 법률 고문을 역임한 인연을 갖고 있다. 검찰주변에서는 이종원·이종남·이종찬을 가리켜 ‘고대의 3종’이라고 부른다. 이정수(1973년 법학 졸업, 사시 15회) 검사 역시 지검장, 대검부장(검사장 급), 고검장을 거쳐 대검 차장까지 올랐다.

현직에 몸담고 있는 검찰의 라인업도 탄탄하다. 이귀남 법무부장관(사시 22회)을 정점으로 한상대 서울고검장(사시 23회),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고검장급, 사시 24회), 최교일 법무부 검찰국장(사시 25회)이 포진한 면모는 “역시 고려대 법대 출신은 만만치 않다”라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귀남 장관은 DJ 시절 중수3과장,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 서울지검 형사1부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을 거쳤고, 노무현 정부 들어서는 인천·대구지검 차장검사, 법무부 기획관리실장, 대검 공안부장·중수부장을 역임했으며, MB 정부에 와서 대구고검장, 법무부차관·장관에 이르기까지 승진 가도를 달려왔다. 앞으로 장관과 총장의 발탁 과정에서 한고검장과 노지검장의 행보를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적지 않다. 검찰의 꽃이라고 불리는 지검장으로는 노환균 서울중앙지검장 외에 곽상욱 서울 서부, 길태기 광주, 이득홍 제주 지검장이 있다.

■ 재계

고려대 경제계 인맥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거목’은 쌍용그룹의 창업주이자 정치인이었던 고 성곡(省谷) 김성곤 회장이다. 1936년 보성전문 상과를 졸업한 그는 금성방직과 동양통신을 설립했으며, 국회의원 당선과 함께 정치에도 입문해 공화당 재정위원장·중앙위원회 의장을 지내면서 공화당의 핵심 인물로 자리를 굳혔다. 자신의 아호를 딴 성곡언론문화재단과 성곡학술문화재단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 근대화·산업화에 큰 족적을 남긴 고 김성곤 회장의 맥을 잇는 고려대 출신들은 재계에 널리 퍼져 있다. 그것을 대표하는 인맥 집단이 바로 ‘고대경제인회’이다.

1979년 12월12일 저녁 롯데호텔 크리스탈 볼룸에는 고려대를 졸업한 기업인 중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서 사회 분위기가 불안정해 뒤숭숭하던 참이었다.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 간에는 “경제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그러자면 우리가 중지를 모아 의미 있는 일을 해나가야 되지 않겠느냐”라는 식의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해서 이날 창립총회를 갖고 결성된 모임이 ‘고대 상공인회(Tiger Club)’이다. 초대 회장에는 이종욱(상과 37) 삼익건설 회장이 선출되었다. 같은 시간대에 한남동 육군 참모총장 공관에서는 정승화 총장이 신군부 세력에 의해 체포·연행되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냥 우연이라고 넘겨버리기에는 너무나도 공교로운 일치가 아닐 수 없었다. 이처럼 비상 시국의 와중에서 탄생한 ‘상공인회’이기에 오는 12월 창립 30주년을 맞아 치르는 기념 행사의 의미는 각별하게 여겨진다. 그만큼 행사도 성대하게 준비되고 있다.

‘상공인회’는 1982년 7월 ‘고대경제인회’로 이름을 바꾸고 그해 8월 회보 <고우(高友)경제> 창간호를 발행했다. 현재 본회에는 기업 경영에 매진하고 있는 동문 8백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회장은 김명하(경제 58) Kim&AL 회장이 맡고 있으며 강신호 동아제약 회장,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김재철 동원산업 회장, 박종구 ㈜삼구 회장(전 고대교우회장), 이윤재 ㈜피죤 회장, 이재현 CJ 회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이 앞장서서 활발하게 모임을 이끌어나가고 있다(아래 ‘주요 회원’ 표 참조). 동문으로서 유명 기업인인 허창수 GS그룹 회장(경영학과 67)과 최태원 SK 회장(물리학과 79)은 기회를 놓쳐 아직까지 가입하지 않았으나 조만간 합류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계간지 <고우경제> 발행…세미나 등 열고 매년 경제인상 시상도

▲ 고려대학교의 상징 조형물인 호상 . ⓒ시사저널 박은숙

전체의 90%는 경제계 인사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 밖에도 정세균 민주당 대표, 정종환 국토해양부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허남식 부산시장 같은 고위 공직자들도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이기수 고려대 총장, 김동기 고려대 석좌교수, 어윤대 경영학과 교수(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장), 이두희 경영학과 교수 등 학자들과 함께 금창태(전 중앙일보·시사저널), 이성춘 중앙선거방송토론 위원회 위원장(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같은전·현직 국장급 이상의 언론계 인사들도 참여한다.

경제인회의 활동은 매우 다양하고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그 첫째로 꼽히는 것이 계간지 <고우경제>의 발간이다. 올 10월까지 통권 96호를 선보인 이 회보는 1백80여 쪽의 두툼한 볼륨으로 테마 특집, 교우 탐방, 회원 인터뷰, 회원 수필, 건강 및 취미 활동 소개, 회원 동정 등을 다양하게 싣고 있다.

회원 간의 친목도모와 정보 교류가 모임의 1차적인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각종 세미나를 활발히열고 있다. 경제계 인사들을 초청해 토론을 벌이는 경제포럼도 연1회 열어왔다. 또한, 매년 12월에 개최하곤 하는 경제인의 밤 및 경제인대상 시상식에서는 소유 경영인과 전문 경영인을 구분해 각 1명씩 시상해 오고 있다. 김상홍 삼양사 회장(1992년), 김재철 동원산업 회장(1993년), 박종구 삼구그룹 회장(1995년), 김일두 변호사(1997년),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1999년), 김명하 코래드 회장(2002년),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2003년), 장경작 호텔롯데 회장(2005년), 어윤대 제15대 고려대 총장(2006년), 이정치 일동제약 대표이사(2007년) 등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지난 2005년 개교 100주년을 맞은 고려대는 당시 어윤대 총장이 주도한 ‘발상의 전환’ 프로그램을 통해 교내 분위기를 일신하고 세계화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종전까지 정치학·법학·인문학 등의 전공자가 맡아오던 총장직에 경영학도가 나서서 경영적인 마인드를 도입하고 ‘막걸리’로 표현되던 학교 이미지를 ‘와인’으로 바꾼 사례 등이 그 첫 번째 시도였다는 것이다. 맞수인 연세대에 밀리는 듯한 위기감을 떨쳐버리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막후에는 역시 같은 경영학도 출신인 이두희 당시 대외협력처장의 아이디어가 주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지환(경영 68) 고대경제인회 사무처장은 “우리 경제인회 모임에서는 후배들에게‘남에게 믿음을 주라’는 점을 강조한다”라고 말한다. 그는 “고려대 출신들이 회사 내에서 자금 담당 업무를 맡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하나는 세무 관계 일이다. 즉, 오너들이 사람을 믿고 맡겨야 할 자리에 고려대 사람들을 앉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려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섣부른 짓을 안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면 그 사람은 일단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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