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 외치며 뒤통수 때리는 대형 마트 업체 ‘SSM 잔혹극’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11.03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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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바꿔 달기 등 ‘변칙’ 써서 개업…영세 상인들, 불매 운동 벌이며 반발

▲ 성남시에 위치한 마켓999 수진점 매장. ⓒ시사저널 임준선

경기도 성남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씨(56)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초저가형 매장인 ‘마켓999’가 하룻밤 만에기업형 슈퍼마켓(이하 SSM)인 롯데슈퍼로 바뀌어 있었기 때문이다. 의문은 곧 풀렸다. 마켓999가 롯데슈퍼에서 운영하는 또 다른 균일가 숍이었던 것이다. 지난 6월 말 신촌점과 목동점 개설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과 경기도에서 네 곳이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마켓999가 롯데 브랜드인지 잘 알지 못한다. 이씨 역시 “처음에는 전혀 몰랐다”라고 토로했다. 이같은 맹점을 이용해 롯데가 ‘간판 바꿔치기’를 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다. 그는 “일단 매장을 열게 되면 사업조정이 쉽지 않다. 마켓999로 문을 연 뒤, 롯데슈퍼로 간판을 바꿔 단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이씨의 말이 사실일 경우 롯데슈퍼는 도덕적인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지난 7월16일 인천에서 처음으로 사업조정 신청이 나온 이후 대형 마트 업계는 ‘골목 상권과의 상생’을 강조해왔다. 해결책이 마련될 때까지 추가 개점을 보류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롯데슈퍼 역시 그동안 매장을 새로 내는 것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뒤에서는 여전히 상생과는 거리가 먼 전략을 고수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롯데의 경우 사업조정 신청을 피하기 위해 변칙적으로 계열사 매장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영세 상인들의 반발 또한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슈퍼측도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롯데슈퍼를 겨냥한 매장 오픈은 아니었다”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마켓999는 시험 사업일 뿐이다. 시작한 후 매출이 워낙 안 좋아서 업종을 전환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에 ‘롯데슈퍼’로 이름을 바꾼 매장의 경우 상권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직원들조차 “솔직히 좋은 상권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하지만 롯데는 불과 3백m를 사이에 두고 두 개의 매장을 개점했다. 총 다섯 개의 매장(롯데슈퍼로 전환한 매장 포함) 중에서 두 곳을 상권이 좋지 않은 곳에 배치한 것 자체가 난센스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도 롯데슈퍼측은 “도미노 출점 전략의 일환일 뿐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회사 관계자는 “롯데슈퍼로 전환하려고 의도했다면 모란점만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영진들도 SSM 관련 논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골목 상권을 자극할 이유가 없다”라고 강조했다.

 

개점 뒤엔 사업조정 신청 어려운 점 악용

▲ 10월28일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성남시 조합 윤희정 이사장이 롯데슈퍼의 횡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최근 ‘롯데슈퍼’로 간판을 바꿔 단 곳은 모란점만이 아니었다. 지난 10월16일 경기도 평택시에서 개점한 롯데슈퍼 안중점 역시 일반 슈퍼마켓을 인수해 롯데슈퍼로 개조했다. 보는 눈이 없는 새벽에 기습적으로 문을 열었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경기 남부조합에 따르면 이곳은 지난 10월15일 자정까지 ‘C마트’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16일 새벽 1시 대형 트레일러와 기중기가 동원 되어 간판을 바꾸어 달았다. 소상공인들은 이를 ‘리뺏지’라고 불렀다. 홍광표 조합장은“관할 지자체나 중소기업청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어쩔 수 없다’라는 답변만 들었다. 재벌들이 겉으로는 소상공인과의 상생을 강조하지만, 뒤에서는 여전히 영세 상인들의 피를 빨 궁리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사업조정제를 피하기 위해 ‘변칙’을 시도한 곳은 현재 롯데슈퍼만이 아니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GS수퍼마켓, 이마트 등과 관련해서도 현재 비슷한 사례가 여러 건 들려오고 있다. 중소기업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10월26일 기준으로 사업조정 신청 건수는 전국적으로 70건을 돌파했다. 그만큼 SSM을 둘러싼 대형 마트 업계와 골목 상권간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특히 홈플러스의 경우 대형 유통업체 중에서 SSM 사업에 가장 의욕을 보여왔다. 이는 최근 3개월여 간의 사업조정 신청 건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중소기업청의 ‘SSM 사업조정 신청 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월26일 기준으로 사업조정 신청 건수는 전국적으로 72건에 달한다. 이 중 40건이 홈플러스였다. 눈에 띄는 사실은 홈플러스를 제외한 나머지 유통사들의 신청 건수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월말 기준으로 롯데슈퍼, GS수퍼마켓, 이마트 등은 각각 10건, 6건, 6건으로 최근 수치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홈플러스만 25건에서 40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그만큼 사업조정 신청제 시행 이후에도 홈플러스가 SSM의 출점을 강행하고 있다는 얘기이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변칙적으로 매장을 개설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문을 열 예정인 홈플러스 익스플레스 평창점이 대표적인 예이다. 매장이 위치한 건물에는 안경점과 돈가스 전문점, 죽 전문점 등이 들어서 있었다. 입주사들이 건물을 떠난 빈자리에 홈플러스 익스프레스가 들어선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주변 상인들도 홈플러스가 입주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건물 전체를 칸막이로 가리고 공사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원한 비밀은 없는 법이다.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상인들이 사업조정 신청을 하면서 입점이 연기되었다고 한다.

홈플러스측은 “숨길 의도는 없었다.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인근에서 영업을 하는 한 상인은 “구청뿐 아니라 홈플러스에 입점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 서울시에 접수한 사업조정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을 보니 소문이 사실이었다. 최근 사업조정 신청이 늘어나면서 상인 몰래 매장을 열 속셈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때문에 지난 7월 이후 잠잠해졌던 불매 운동도 재개될 조짐이다. 특히 롯데와 영세 슈퍼마켓과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롯데가 국내에서 성장할 수 있었던데는 영세업자들이 상당 부분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배신감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윤희정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성남조합 이사장은 “다른 곳은 몰라도 롯데는 슈퍼 주인들을 타박해서는 안 된다. 최근 상황을 보면 솔직히 배신감마저 느낀다. 현재 연합회 차원에서 롯데 제품을 팔지 않는 불매 운동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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