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주목된다. 10·28 재·보선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단연 손 전 대표이다. 그의 저력은 최대의 격전지로 꼽혔던 수원 장안에서 한나라당 박찬숙 후보에 비해 크게 열세였던 무명의 이찬열 후보를 당선시키면서 한껏 발휘되었다.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를 한층 강화했다. 민주당 인사들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 내주었던 수도권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벌어질 수도권 쟁투가 지금 전망보다 훨씬 치열해질 수 있다는 것을 예감케 한다. 손 전 대표는 이번 승리로 인해 내용적으로 그 선두에 서게 되었다.
손 전 대표는 재·보선 다음 날인 10월29일 측근 몇몇과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갔다. “아직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라는 것이 그가 춘천으로 돌아간 이유였다. 측근들은 당분간 손전 대표가 전처럼 다시 칩거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한다. 들떠 있을 수도 있는데 절제되었으면서도 발 빠른 행보이다.
한 민주당 지도부 인사는 “손 전 대표가 직접 출마하지 않고 자신의 최측근을 당선시켰다. 직접 방을 얻어 살면서 온몸을 던져 뛰는 모습은 감동을 주었다.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종로를 떠나지 않아 ‘의리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남겼다. 당내에서 그가 불출마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비판하던 목소리는 쑥 들어가고 ‘역시 손학규!’라는 말이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그의 영향력이 상당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그가 언제 정계에 복귀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가 섣부르게 결정할 것 같지는 않다. 지금 구도대로라면 민주당은 정세균 체제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크다. 손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 때도 이번 재·보선 때처럼 ‘밑거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측근은 “정세균 대표 체제가 계속 가고 있으니 그를 열심히 돕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주목되는 것은 손 전 대표 주변에서 내년 초부터는 그가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올 연말까지는 춘천에 칩거하겠지만 내년 초부터는 지방을 차례로 돌면서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만나며 지역 민심을 듣고 국가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전에 했던 ‘민심대장정’과는 질적으로 다른 형식과 내용을 통해 대중적인 영향력을 더 키우고 자신을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손 전 대표는 이번 재·보선 이전에 이미 이같은 계획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다. 그는 현재 민주당 내에서 수도권에 호소력이 있는 인물로는 자신만한 이가 없다는 판단 아래 전체 판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정세균 대표 체제를 적극 돕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여러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정세균 대표, ‘약체’ 이미지 희석시키며 ‘롱런’ 발판 마련
재·보선이 끝난 날 정세균 대표의 얼굴은 누구보다 밝았다. 당 안팎에서는 “정대표가 롱런의 발판을 마련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대표가 내년 6월 지방선거 직후에 열리는 전당대회까지는 대표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적지 않다. 대표직 2년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중간에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정대표 체제가 내년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고위 당직자는 “정대표는 이번 재·보선에서 패배했더라도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승리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강한 액션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보았다.
이와 함께 정대표가 ‘약체’ 이미지를 어느 정도 희석시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정대표가 주도해왔던 장외 투쟁도 더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세종시 문제와 4대강사업, 2009년도 예산안 등에서 강공 전술을 펼 것으로 보인다.
정대표는 ‘대연합’의 우선 대상자로 현재 정치 세력화하고 있는 친노 진영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양산 선거는 민주당과 친노 그룹의 연합 선거였다. 비록 지기는 했지만 양 진영의 연합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라고 설명했다. 정대표는 친노 진영과의 연합 이후에 동교동계와 무소속 정동영 의원 등과 합친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직을 맡은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착잡할 수밖에 없다. 당장 당 안팎에서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을 통해 ‘화려한 데뷔전’을 치르려고 했던, 그래서 차기 대권 주자군으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져가려고 했던 당초 의도에 차질을 빚게 된 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정대표는 당내에 기반이 없기 때문에 이번 선거 기간 동안 대표직을 이용해 전국을 한 번 훑었다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전 대표의 경우 ‘선거 불개입 원칙’을 표방하면서도, 박희태 전 대표를 심정적으로 지지했고 친박 의원들이 실제로 지원했기 때문에 책임론과는 거리가 있다.
충북 지역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번 참패로 충청권에서의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군다나 경기 안산과 충북에서 한자릿수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충청권의 대표 정당을 표방하며 ‘충청 맹주’를 노리는 이총재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힘 받은 민주당, 여권 독주에 제동 걸고 야권 통합도 ‘탄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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