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정세균 크게 웃고 정몽준·박근혜 그럭저럭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11.0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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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8 재·보선 손익 계산서 / 손 전 대표가 ‘최대 수혜자’…이회창 총재는 입지 흔들

▲ 10·28 재·보궐 선거 투표가 끝난 10월28일밤 민주당 서울 영등포 당사 선거 상황실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보던 정세균 대표와 당직자들이 재·보궐 선거에서의 승리를 축하하는 만세를 부르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주목된다. 10·28 재·보선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은 단연 손 전 대표이다. 그의 저력은 최대의 격전지로 꼽혔던 수원 장안에서 한나라당 박찬숙 후보에 비해 크게 열세였던 무명의 이찬열 후보를 당선시키면서 한껏 발휘되었다. 차기 대선 주자로서의 입지를 한층 강화했다. 민주당 인사들은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에 내주었던 수도권을 다시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되찾기 시작했다. 이것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벌어질 수도권 쟁투가 지금 전망보다 훨씬 치열해질 수 있다는 것을 예감케 한다. 손 전 대표는 이번 승리로 인해 내용적으로 그 선두에 서게 되었다.

손 전 대표는 재·보선 다음 날인 10월29일 측근 몇몇과 점심 식사를 함께하고 다시 춘천으로 돌아갔다. “아직 반성이 끝나지 않았다”라는 것이 그가 춘천으로 돌아간 이유였다. 측근들은 당분간 손전 대표가 전처럼 다시 칩거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한다. 들떠 있을 수도 있는데 절제되었으면서도 발 빠른 행보이다.

한 민주당 지도부 인사는 “손 전 대표가 직접 출마하지 않고 자신의 최측근을 당선시켰다. 직접 방을 얻어 살면서 온몸을 던져 뛰는 모습은 감동을 주었다.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종로를 떠나지 않아 ‘의리의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남겼다. 당내에서 그가 불출마하겠다고 결심했을 때 비판하던 목소리는 쑥 들어가고 ‘역시 손학규!’라는 말이 나온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그의 영향력이 상당히 커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전망했다.

그가 언제 정계에 복귀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그가 섣부르게 결정할 것 같지는 않다. 지금 구도대로라면 민주당은 정세균 체제로 내년 지방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크다. 손 전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 때도 이번 재·보선 때처럼 ‘밑거름’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 측근은 “정세균 대표 체제가 계속 가고 있으니 그를 열심히 돕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라고 내다보았다.

주목되는 것은 손 전 대표 주변에서 내년 초부터는 그가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올 연말까지는 춘천에 칩거하겠지만 내년 초부터는 지방을 차례로 돌면서 지역에서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만나며 지역 민심을 듣고 국가의 미래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전에 했던 ‘민심대장정’과는 질적으로 다른 형식과 내용을 통해 대중적인 영향력을 더 키우고 자신을 알리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손 전 대표는 이번 재·보선 이전에 이미 이같은 계획을 구체적으로 검토한 적이 있다. 그는 현재 민주당 내에서 수도권에 호소력이 있는 인물로는 자신만한 이가 없다는 판단 아래 전체 판을 이끌어가고 있다고 보여진다. 정세균 대표 체제를 적극 돕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여러 의미가 있는 것 같다.

▲ ‘4인4색’. 10·28 재·보궐선거 결과는 각당 대권 주자들의 표정을 극명하게 갈라놓았다. 왼쪽부터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 박근혜전 대표, 민주당 손학규 전대표,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 ⓒ시사저널 사진팀

정세균 대표, ‘약체’ 이미지 희석시키며 ‘롱런’ 발판 마련

재·보선이 끝난 날 정세균 대표의 얼굴은 누구보다 밝았다. 당 안팎에서는 “정대표가 롱런의 발판을 마련했다”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정대표가 내년 6월 지방선거 직후에 열리는 전당대회까지는 대표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보는 관측이 적지 않다. 대표직 2년 임기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중간에 특별한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정대표 체제가 내년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민주당의 한고위 당직자는 “정대표는 이번 재·보선에서 패배했더라도 대표직에서 물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승리했기 때문에 앞으로 더 강한 액션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내다보았다.

이와 함께 정대표가 ‘약체’ 이미지를 어느 정도 희석시켰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정대표가 주도해왔던 장외 투쟁도 더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세종시 문제와 4대강사업, 2009년도 예산안 등에서 강공 전술을 펼 것으로 보인다.

정대표는 ‘대연합’의 우선 대상자로 현재 정치 세력화하고 있는 친노 진영을 염두에 두고 있다. 민주당의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양산 선거는 민주당과 친노 그룹의 연합 선거였다. 비록 지기는 했지만 양 진영의 연합 가능성은 더 커졌다고 보는 것이 맞다”라고 설명했다. 정대표는 친노 진영과의 연합 이후에 동교동계와 무소속 정동영 의원 등과 합친다는 복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직을 맡은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착잡할 수밖에 없다. 당장 당 안팎에서 재·보선 패배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재·보선을 통해 ‘화려한 데뷔전’을 치르려고 했던, 그래서 차기 대권 주자군으로서 확실한 입지를 다져가려고 했던 당초 의도에 차질을 빚게 된 셈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은 “정대표는 당내에 기반이 없기 때문에 이번 선거 기간 동안 대표직을 이용해 전국을 한 번 훑었다는 것으로도 의미가 있다”라고 말했다. 박근혜전 대표의 경우 ‘선거 불개입 원칙’을 표방하면서도, 박희태 전 대표를 심정적으로 지지했고 친박 의원들이 실제로 지원했기 때문에 책임론과는 거리가 있다.

충북 지역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던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이번 참패로 충청권에서의 입지가 크게 흔들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군다나 경기 안산과 충북에서 한자릿수의 저조한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내년 지방선거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충청권의 대표 정당을 표방하며 ‘충청 맹주’를 노리는 이총재를 비롯한 당 지도부가 ‘특단의 대책’을 내놓아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힘 받은 민주당, 여권 독주에 제동 걸고 야권 통합도 ‘탄력’

10·28 재·보궐 선거 결과에 따라 여야의 희비가 엇갈리면서 향후 각 정당이 어떤 행보를 취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한나라당에게는 전패보다 뼈아픈 완패였다. 지금의 당 체제로는 힘들다는 것을 이번 재·보선을 통해 민심이 경고했고, 여권이 본격적으로 제기할 세종시 수정론과 4대강 사업 등도 상당 부분 탄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당장 조기 전대론의 불씨가 되살아났다. 개혁 성향의 초선 모임인 ‘민본 21’은 10월29일 “민심은 책임 있는 국정 운영과 당 쇄신을 요구한다”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조속한 쇄신 프로그램을 마련하라고 당 지도부에 촉구했다. 이에 대해 각 계파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지난 4월 재·보선 참패 직후처럼 조기 전대 요구가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질 수도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주요 기반인 수도권 두 곳에서의 패배는 이 지역 의원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년 6월 지방선거 전에 마지막으로 민심을 가늠할 계기였던 이번 재·보선에서 수도권 민심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깊이 각인시켰다. 더욱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50%를 육박하는 상황에서 수도권 전패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위기의식은 곧바로 지도부 교체, 즉 조기 전대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조기 전대가 쉽지 않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친이계, 친박계, 이재오계 등 당내 계파들이 조기 전대의 필요성을 인정하더라도 섣불리 응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안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이와 함께 청와대가 재·보선 후 세종시 수정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선거에서 패배한 여당은 민심을 고려해 신중론을 제기할 가능성이 대두된다. 당내에서도 반발이 적지 않은 4대강 사업 역시 재·보선 패배를 계기로 불만의 목소리가 다시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10ㆍ28 재·보선에서 승리한 민주당은 앞으로 여권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견제 야당의 역할을 공고히 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일단 연말 정기국회에서 세종시 수정과 4대강 사업 예산안 심사, 효성그룹 비자금 부실 수사 의혹을 대여 공세의 고리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이강래 원내대표가 재·보선 다음 날인 10월29일 세 사안을 거론하며 이명박 정부 심판론을 강조한 것을 보면, 공세의 수위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특히 세종시 문제에 대해서는 충북 증평ㆍ진천ㆍ괴산ㆍ음성에서의 압승을 밑거름 삼아 더욱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4대강 사업과 관련해서는 이미 민주당이 예산안 심사와 연계 방침을 천명한 바 있어 정기국회 예산안 심사가 본격화하면 여당과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길게 보면 민주당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한결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당내에서는 수도권에서 한나라당의 연패가 현실화함에 따라 지방선거를 노리는 정치 신인들이 민주당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상당하다.

민주당이 20% 중반대의 안정적인 정당 지지도와 재·보선에서의 잇따른 승리로 야권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으면서 야권 통합 작업도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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