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도 환자도 기진맥진 ‘전쟁’이 따로 없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11.03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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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진료소, 야전 병원 방불…시설·장비도 열악

ⓒ시사저널 유장훈


“생물학 테러나 전쟁이 일어난 것 같다.” 신종플루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어강희 인하대병원 응급실 수간호사는 폭탄을 맞은 전쟁터에 서 있는 기분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인하대병원 옥외주차장 한 구석에 컨테이너 박스나 천막으로 만든 진료소는 영락없이 야전 병원을 닮았다. 감기 증세를 호소하며 밀려드는 환자들은 전쟁을 치르다 부상을 당한 병사들을 연상시킨다.

지난 10월28일 저녁 7시40분, 돌이 갓 지난 아기를 포대기에 싼채 응급실로 달려온 엄마는 고열에 지쳐 잠든 아들을 부둥켜안고 울음 섞인 목소리를 토해냈다. 30대의 한 여성은 잦은 기침에 지쳐 핏발까지 선 눈으로 응급실을 찾았다. 이들은 모두 신종플루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간호사들은 이런 환자들을 병원 외부에 마련한 신종플루 외래진료소로 안내했다.

최근 신종플루 의심환자들이 밀물처럼 밀려들자 이 병원은 병원 외부에 임시진료소를 마련했다. 병원 내부 공간이 부족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반 환자와 분리하기 위해서다. 다른 병원도 이와 비슷한 형태로 임시진료소를 운영하고 있다. 응급실 옆 옥외주차장에 컨테이너 박스 4개를 겹겹이 쌓은 가건물이 임시진료소이다. 벽에 붙어 있는 신종플루 외래진료소라는 표지판이 이곳이 의료 시설임을 알려주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 내부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왼편에는 3개 진료실이 있다. 오른편에는 접수·검사·수납 공간이 있다. 컨테이너 박스에는 진료받는 사람, 접수하는 사람, 검사받는 사람, 진료비를 내는 사람들이 의사·간호사와 함께 뒤엉켜 있다. 흰 가운을 입었는가 여부로 의료진과 환자를 구분할 수 있을 뿐이다. 컨테이너 박스 밖에는 간이 천막이 설치되어 있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정도밖에 되지 않은 천막 아래에는 의자가 놓여 있다. 이곳이 진료 대기실이다. 조바심 탓에 환자 대다수는 의자에 앉지 않고 선채 차례를 기다린다. 보통 1시간은 대기해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그 옆에는 책상 두 개를 붙여 임시 약제실을 차렸다. 환자에게 항바이러스제 등을 공급하는 곳이다.

의료진은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환자를 진료한다. 그 외의 시간이라고 해서 환자를 받지 않은 것이 아니다. 밤 10시 이후에는 응급실에서 환자를 진료한다. 하루 24시간 신종플루 진료팀이 가동 되고 있는 셈이다. 임시진료소에는 의사 11명, 간호사 18명, 약사 3명에 안내와 수납 직원까지 합쳐 약 30명이 투입되어 있다. 이들은 하루 3교대로 근무한다. 3교대 근무는 빛 좋은 개살구이다. 아침 8시 진료를 시작한 정문현 감염내과 과장은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컨테이너 박스를 나와 심호흡을 했다. 꼬박 8시간 동안 환자를 진료했다. 신종플루 의심환자를 진료한다고 해서 기존 병원 업무를 생략하는 것은 아니다. 가운을 갈아입은 그는 곧바로 병원 내부로 달려 갔다. 병실을 돌며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환자들의 상태를 살폈다.

“과로·스트레스보다 ‘의료진 불신’이 더 괴롭다”

저녁 식사를 한 것은 오후 7시가 넘어서였다. 저녁 식사를 제때에 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라고 한다. 보통 임시진료소 일을 마친 밤 11시가 넘어서야 저녁 식사를 한다. 그는 퇴근 시간을 훨씬 넘긴 8시쯤 커피와 과자를 싸들고 임시진료소를 다시 찾았다. 저녁 식사를 거른 동료 의료진에게 커피와 과자를 돌렸다. 마침 조금 잦아들던 환자의 발길이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기표 번호는 7백20번을 넘겼다. 커피 마실 여유는 진료소 의료진에게 사치였다. 싸늘한 밤공기에 커피는 이내 식었다. 또 다른 여의사는 저녁 8시가 넘어 퇴근하면서도 임시진료소에 남아 있는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을 떨쳐 버리지 못했다. 퇴근하다 말고 다시 임시진료소를 찾아 동료 의료진을 위로한 뒤에야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그녀의 눈은 과로로 충혈되어 있었다.

정문현 감염내과 과장은 “자고 나면 환자가 1.5~2배씩 늘어난다. 의료진은 식사는 물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다. 휴일도 반납했다”라며 의료진의 격무를 우회적으로 설명했다. 의료진이 격무에 시달리는 이유는 늘어나는 환자를 감당할 만큼 충분한 의료 인력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내과, 소아과 등 호흡기질환과 관련된 의사들이 총동원되었다. 그러나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신종플루 의심환자를 응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의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공익근무 요원, 경비 요원, 원무과 직원도 접수, 대기실 정돈, 안내 등을 맡아 부족한 일손을 돕고 있다.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신종플루 확진검사(RT-PCR) 결과가 나오기까지 며칠씩 걸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환자는 불평을 쏟아내지만 의료진은 딱히 하소연할 곳도 없다. 다만, 격심한 업무와 스트레스에 지쳐가고 있다. 일선에서 신종플루 바이러스와 싸우고 있는 의료진은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누구보다 크다. 특수복에 마스크를 두 겹으로 착용해도 감염의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과로가 누적되면서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될 가능성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신종플루 의심환자 진료에 회진, 대책회의 참석 등 기존 업무가 겹겹이 쌓여 있다. 한 간호사는‘폭발 직전’이라는 다소 과격한 표현을 써가며 의료진의 인내심이 한계에 이르렀음을 드러냈다. 임시진료소에 있는 의료진에게 말을 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없지만 신경이 예민해져 있어 곧잘 목소리가 격해진다.

이두익 인하의료원장은 “임시진료소 현장을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의료진이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 아쉽지만 병원 입장에서는 진료 인력과 장소를 늘리는 수밖에 방도가 없다. 진료소를 확충하고 인력도 충원할 계획이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일 뿐이다”라며 근본적이고 정책적인 해결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환자를 진료하는 행위는 의료진의 직분이기에 힘들어도 감내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의료진을 불신하는 환자는 견딜 수 없는 어려움이다. 김정희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진료고 뭐고 필요 없으니 타미플루나 달라고 하는 환자들이 있다. 의료진이 백신과 치료제를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환자에게는 선별해서 나눠준다는 불평이다. 여기에서부터 의료진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있다. 타미플루를 처방받지 않아도 되는 환자도 있다. 그런 환자에게 타미플루를 처방해주지 않으면 섭섭한 눈길을 보낸다. 그 이유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만은 않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환자를 대하는 어려움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의약품 부족도 의료진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신종플루 백신에 가려 일반 백신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박원 진료부원장은 “신종플루 백신에만 신경을 쏟다 보니 계절성 독감 백신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A제약사의 백신이 아침까지 있었지만 오후가 되면 그 백신이 없어서 처방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긴급하게 B제약사의 백신을 확보하더라도 곧 동나고 만다. 그러다 보니 약을 처방할 때마다 어떤 회사의 백신이 얼마나 있는지를 약제팀에 전화로 일일이 확인해야 할 지경이다. 폐렴 백신도 자취를 감추었다. 평소에는 보건소에서 폐렴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지만, 지금은 씨가 말라서 대학병원까지 폐렴 백신을 접종 받으려는 환자가 몰리고 있다”라며 일반 백신이 품귀되는 현상을 설명했다.

각 병원에 마련된 신종플루 외래진료소에는 공통점이 있다. 간호사가 환자 이름을 부르는 것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환자를 찾아다닌다. 병원 내부에는 환자 이름과 순번이 커다란 전광판에 적혀 있고 환자 대기실이 잘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임시진료소에는 대기실이 부족한 데다 외부로 트여 있어 환자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다. 또, 소음 탓에 환자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간호사는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을 찾아다니며 환자를 찾는다. 그러다 보니 뒤늦게 나타난 환자가 자신보다 늦게 접수한 사람을 먼저 진료하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진료 시간이 길어지면서 터져나오는 환자의 불평도 받아내야 한다. 환자를 설득하고 설명하다 보면 다른 업무를 제때에 보지 못하기도 한다. 울고 보채는 어린아이는 얼러가며 체온과 체중을 재야하는 것도 간호사의 몫이다. 아침저녁 싸늘한 기온에 몸을 떨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 지난 10월28일 명지병원에 있는 신종플루 외래진료소 대기실에서 환자들이 진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정부 새 지침 나온 후 약사들도 바빠져

의료진은 자신들이 신종플루에 감염되는 것에 무뎌져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환자를 제대로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울대병원 1층에 마련된 신종플루 임시병동에는 12개 병상이 마련되어 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일부 병상이 비어 있었지만 최근에는 빈 병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 10대 환자들이 입원하고 있다. 폐렴 등 다른 질환에 신종플루까지 겹친 환자들이므로 입원 치료가 불가피하다.

이곳에는 간호사들이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홍경순 서울대병원 간호사는 “신종플루 환자를 보살피는 일 자체는 힘든 줄 모르겠다. 다만, 같은 신종플루 환자라도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기저 질환이 다르므로 어떤 응급 상황이 발생할지 모른다. 의료진이 항상 긴장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또, 처음 입원하면 보호자들이 매우 불안해한다. 이들을 안심시키는 일도 간호사가 해야 할 일이다. 감염이 우려되면 환자를 돌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간호사는 네 살과 여섯 살짜리 아이들의 엄마이다.

신종플루가 의심되면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라도 항바이러스제를 투약하라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약사들도 바빠졌다. 약사들도 임시진료소에 상주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타미플루 등 약을 처방받은 환자는 병원 내부에 있는 약국을 찾아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런 불편함을 없애기 위해 병원측은 임시진료소 옆에 임시약국을 차려놓고 약제팀을 파견했다. 이혜경 약제팀장은 “의사가 타미플루만 처방하는 것이 아니다. 처방전에 따라 필요한 약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모든 약을 임시약국에 갖출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에 따라 제조 약이 필요하다. 병원 외부에서 약을 제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약사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병원 내 약제실에서 제조한 약을 임시진료소로 날라 환자에게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열악한 의료 환경도 의료진을 위축시킨다. 임시진료소는 온갖 오염·감염 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다. 또, 필요한 의료 장비를 갖추기도 쉽지 않다. 문진과 청진기, 체온계 정도로 진단하다 보니 진료의 어려움이 있다. 공기 순환이 잘 된다는 점 외에는 모든 환경이 열악하다. 앞으로 날씨가 추워질수록 의심환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의료진은 추위와도 싸울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임시진료소에도 난방 시설이 갖춰지겠지만, 요즘 같은 날씨에 몇 시간씩 외부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건강을 해치기 십상이다.

임시진료소 의료진들은 나름으로 요령이 쌓였다. 서울대병원 옥외주차장에 마련된 신종플루 외래진료소 옆에는 상황실 표지판을 단 별도 컨테이너 박스가 마련되어 있다. 의료진이 다른 곳으로 이동할 때 옷을 갈아입거나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어차피 멀리 이동할 수 없으므로 임시방편으로 마련한 간이휴게실이다. 그 앞에도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엑스레이 촬영실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한 환자를 위해 아예 엑스레이 촬영기까지 병원 외부로 내온 것이다.

이 진료소 앞에는 간이 천막과 의자로 마련한 대기실이 있다. 대기실에는 환자가 많이 보이지 않는다. 한 여성 환자가 진료를 접수하고 대기실 의자에 앉으려고 했다. 이 환자에게 한의료진이 다가와서 “약 2시간 후에나 진료가 가능하다. 접수했으니 추운 곳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다른 볼 일을 보고 와서 진료를 받는 편이 좋다”라고 말했다. 의사부터 공익요원까지 임시진료소의 의료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바이러스 감염 우려와 추위는 잊은 지 오래다.

자신들의 식사 시간과 취침 시간이 부족해도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가 늘어나면서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우려한다. 이러한 악조건은 의료진의 업무는 물론 환자 진료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 것이 뻔하다. 불 끄는 소방수가 파이어 파이터(fire fighter)라면 신종플루에 맞선 병원 의료진은 ‘신종플루 파이터’이다. 신종플루 파이터가 바이러스와 싸울 수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서울병원 관계자는 “사실상 재난 사태인데 별다른 조치는 없는 실정이다. 정부 차원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별로 시민회관이나 마을회관 등에 신종플루 합동진료소를 마련하고 각 병원 의료진이 모여 진료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병원도 제 기능을 되찾고 일반 환자도 신종플루 환자와 격리될 수 있다”라고 제안했다.

임시진료소에서 외과적 치료를 하지 않지만 자칫 의료 사고가 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고열이 나는 다섯 살짜리 딸과 함께 병원을 찾은 김권희씨(35·여)는 “좁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진료받는 환자와 대기하는 환자가 1m도 떨어져 있지 않다. 건강한 사람도 신종플루 바이러스에 감염될 것 같다. 병 고치러 병원에 왔다가 오히려 병을 얻고 나갈 것 같다”라며 의료 사고를 걱정했다. 지난 10월27일 오후 경기도 파주에 있는 경기도립병원인 파주병원에서는 의료진의 실수로 약을 잘못 처방하는 약화 사고까지 발생했다.

약화 사고는 약물과 관련된 의료 사고이다. 고열과 기침 증세로 진료를 받은 노강민군(9ㆍ가명)은 신종플루 의심환자로 분류되어 항바이러스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왔다. 일반적으로 어른에게는 75mg 타미플루가 처방되지만 45kg 이하 아이들에게는 45mg 타미플루가 처방된다. 체중 22kg인 노군은 45mg 타미플루 5일치를 처방받았다. 그러나 이 병원 약제팀은 성인용인 75mg 타미플루를 환자에게 내주었다. 이에 대해 약사들은 “큰 약화 사고이다. 간이 약한 아이라면 고용량 약물로 간이 망가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현기증, 구토, 설사 등 일반적인 의약품 부작용도 더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 병원 김현승 원장과 정은미 약제과장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생겼다. 신종플루 환자가 하루에 최고 8백명이 몰리다 보니 의료진이 정신이 없어서 생긴 사고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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