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한 ‘보따리상’ 옛 전성기 되찾는가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11.10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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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원대 수입 올리는 일본 왕래 보따리 무역 현장을 가다

ⓒ게티이미지


보따리상이 진화하고 있다. 외국 제품을 국내로 들여와서 파는 상행위 자체는 예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나 최근 보따리상의 연령대가 낮아지면서 취급하는 제품, 규모, 방식, 마케팅 등이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경제 발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부산과 일본 시모노세키를 잇는 훼리호가 취항하면서 일본으로 왕래하는 보따리상이 출현했다. 국산품은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 제품에 밀렸던 시절이다. 코끼리표 전기밥솥과 워크맨으로 대변되는 ‘일제’는 전국 각지의 ‘도깨비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렸다. 보따리상이 재미를 톡톡히 보던 때였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일제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국산품이 시장에 쏟아졌다. 경제 성장 붐을 타고 중국의 저가 제품도 밀물처럼 밀려들어왔다. 시장에 물건이 넘쳐나면서 소비자는 굳이 값비싼 일제를 찾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보따리상의 주역이던 50~60대 아주머니들이 고령화되면서 보따리상의 명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했다. 최근에는 그 바통을 30~40대 젊은 층이 이어받고 있다.

임동근 일본창업연구소 소장은 “현재 보따리상 업계의 트랜드는 세대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기존에 활동하던 할머니 중심의 보따리상이 점차 줄어들면서 30~40대 중심의 젊은 층이 명맥을 이어가는 추세이다.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창업 교육을 통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전체 보따리상의 30~50% 정도는 여성이다. 20대 여대생부터 30대 주부까지 다양하다. 디자인이 예쁜 가정용품이 주요 거래 제품이라면 여성이 남성보다 유리하고 생존율도 높다”라고 분석했다.

전문성 내세워 경쟁력 확보…‘1인 기업’형도 늘어

▲ 보따리상들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제품을 찾아 발품을 판다.

나이와 상관없이 육아나 퇴직 후에도 할 수 있다는 점이 여성에게는 큰 매력이다. 회사 생활 10년차인 김영미씨(가명·34)는 “결혼 전에 취업했지만 결혼, 임신, 육아 등으로 회사 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 한 회사에서 10년을 일해도 승진 등에 보이지 않는 유리벽이 있는 것도 현실이다. 퇴직 후에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로 보따리상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여성은 최근 시장조사차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부산 세관을 통과하는 보따리상만 줄잡아 연 1만명이 넘는다. 최강수 부산세관 홍보담당관은 “지난해 보따리상 1만6천명이 부산 세관을 거쳤다. 올해에는 9월까지 9천여 명에 이른다. 하루 평균 45명에서 34명으로 줄었다. 신종플루에다 엔고 현상이 겹친 때문이지만 일본 보따리상은 꾸준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엔고 현상이 일본을 왕래하는 한국 보따리상을 위축시킨다는 말이 어제오늘 얘기는 아니다. 그럼에도 보따리상이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닌 일본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수입 제품의 변화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수입 물품이 1970년대에는 가전제품과 보석류, 1980년대에는 밥솥과 오디오, 1990년대에는 건강보조식품과 소프트웨어 등으로 변했다. 사실 이때까지는 어떤 일본 제품이라도 들여오기만 하면 팔리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종합선물세트식 판매가 가능했다.

지금은 보따리상에 따라 수입하는 제품이 달라졌다. 각자 전문성을 내세워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예를 들면 남성 속옷, 문양이 화려한 청바지를 수입해 마니아층을 상대로 판매한다. 일본 남성 속옷을 판매하는 보따리상 장승준씨(40)는 “국산 속옷이 있지만 일본 속옷을 선호하는 소비자층이 존재한다. 디자인과 색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소수의 마니아 소비층을 겨냥한 제품을 수입해서 자신만의 영역을 갖추어야 이 업계에서 살아 남는다”라고 말했다.

품질이 비슷한 제품이라도 디자인과 색상이 다양하고 아이디어가 돋보여야 팔리는 시대이다. 이같은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일본 제품을 보따리상이 공급하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일본 제품이 비쌀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라고 한다.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하는 김민욱씨(30)는 “일본 나이키 운동화가 국내보다 비쌀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메이커 운동화를 수입해 판매해서 연간 1억원이 넘는 순수입을 올린다”라고 말했다.

연간 수억 원을 거래하며 보따리상 업계에서 거상으로 통하는 박재현씨(40)는 “과거 일본 후쿠오카와 시모노세키가 보따리상의 주무대였지만 점차 그 발길이 오사카로 옮아가고 있다. 과거에는 보따리상이 소일거리나 생계형이었다면 현재는 소무역 형태로 발전했다. 보름이나 한 달에 한 번 거래할 때 수천만 원씩 거래하는 상인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거래 규모가 커진 만큼 큰 배가 운항하는 오사카가 적격이다. 오사카에는 2만t급 여객선이 정기적으로 운항하지만 후쿠오카 등에는 규모가 적은 쾌속선이 다닌다. 또, 오사카는 2백~3백년 된 기업이 많아 상권이 잘 발달한 도시이다. 한 장소에서 다양한 제품을 대량 구입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다. 깡통시장이니 도깨비시장이니 하는 수입품 전문 시장에서 오픈마켓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로 유통 채널이 바뀌고 있다. 유통망의 변화는 제품의 홍보로 이어졌다. 포털사이트의 검색 결과에서 자신의 제품을 상위에 드러내려면 비싼 홍보비를 감당해야 한다.

국내에서 제품을 판매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있다. 깡통시장이니 도깨비시장이니 하는 수입품 전문 시장에서 오픈마켓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로 유통 채널이 바뀌고 있다. 유통망의 변화는 제품의 홍보로 이어졌다. 포털사이트의 검색 결과에서 자신의 제품을 상위에 드러내려면 비싼 홍보비를 감당해야 한다.

과거 보따리상은 국내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은 순기능도 발휘했지만, 환치기나 밀매 등 악기능도 있는 양날의 칼이었다. 악기능이 부각되면서 보따리상은 한때 움츠러들었다. 스스로의 자정 노력과 정부의 방침을 바탕으로 보따리상은 최근 어두운 과거를 벗고 환골탈태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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