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칫덩어리 뽑아내기 국세청·검찰 손잡았나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11.10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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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가인갤러리 전격 수사 막후 / 한 전 청장과 대척점 섰던 국세청 고위 간부 부인이 운영

▲ 서울 평창동에 있는 가인갤러리. 검찰은 이 갤러리가 세무조사 로비와 관련 있다고 보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지난 11월2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서울 평창동에 있는 가인갤러리를 느닷없이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가인갤러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검찰 안팎에서는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 로비 의혹과 관련한 수사가 본격화하는 것이 아니냐”라는 관측이 불거졌다. 하지만 한 전 청장에 대한 수사는 특수2부가 맡고 있다. 두 사건은 전혀 관련이 없다.

검찰은 왜 이 시점에 가인갤러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일까. 가인갤러리의 대표 홍 아무개씨는 국세청 2급 공무원인 안 아무개씨의 부인이다. 이 갤러리는 올 초 한상률 전 청장이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인사 청탁을 하면서 그림을 주었다는 이른바 ‘그림 로비’ 의혹 때도 등장했다. 전 전 청장의 부인이 평소 친분이 있던 홍씨에게 그림을 팔아달라고 맡겼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검찰의 가인갤러리 수사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뒤 국세청 안에서 펼쳐졌던 권력 투쟁의 대미를 장식하는 성격이 있다. 한 전 청장의 공격, 안씨의 반격, 한 전 청장의 낙마, 안씨의 복귀 움직임, 백용호 국세청장의 등장, 안씨에 대한 수사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10월 초에 만난 국세청의 한 핵심 인사는 “지금 국세청 내부의 최대 관심사는 안씨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했다. 국세청 핵심부에서는 안씨가 명예퇴직을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데 그가 “명예 회복을 하겠다”라며 ‘복귀’에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안씨는 지난 1월 대기발령을 받아 출근하지 않고 미국 유학을 준비해 오던 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7월에 다른 사람이 미국 유학을 가기로 결정되어 그는 공중에 뜬 상태로 보직 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안씨는 “애초에 내가 미국에 유학을 가기로 되어서 대기발령을 받은 것이니 나를 보내달라. 영어 시험에도 합격했으니 문제가 없지 않느냐”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세청 핵심부는 이미 다른 이를 보내는 것으로 발표까지 하고 안씨에게 퇴직을 종용하고 있던 차였다. 심지어 방계 회사 사장으로 자리를 마련해줄 테니 용퇴를 해달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안씨는 강하게 버텼다. 국세청의 한 핵심 인사는 “국세청 내부에는 안씨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한 전 청장이 낙마했으니 안씨 또한 거취를 정리하는 것이 모양새도 좋고 조직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라고 전했다.

2만명에 달하는 국세청 직원 가운데 고위 공무원단에 속한 인원이 30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인사 적체가 심한 것도 안씨가 거취를 빨리 정리하기를 바라는 흐름에 힘을 보탰다. 안씨가 지난 정권에서 초고속 승진을 했다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많았다.

안 아무개씨, ‘백용호 체제’에서도 사퇴 안 하고 버티기 계속

경북 의성 출신으로 영남대를 나온 안씨는 대구지방국세청 총무과장으로 있던 1999년 청와대에 들어갔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김중권 비서실장 체제 아래서 이른바 ‘동진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영남 출신들을 중용했다. 청와대에 있을 때 승진한 그는 2005년 이용섭 국세청장 시절 본청 총무과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서울청 조사1국장, 본청 국제조사국장 등을 거쳐 2007년 7월 대구지방국세청장이 되었다. 행시 26회인 그는 행시 21회 선배보다 앞서 진급했을 정도로 잘나갔다.

한상률 전 청장을 낙마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그는, 허병익 국세청장 대행 체제가 들어선 뒤에도 ‘복귀’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때만 해도 국세청 핵심부에서는 어떻게든 ‘배려’를 하려는 분위기였다. 이러던 와중에 백용호 국세청장 체제가 등장했다. 국세청 내 대구·경북 세력의 또 다른 축이었던 이헌동 서울청장은 국세청 차장이 되었다. 허병익 대행은 국세청을 나갔다. 안씨가 비빌 언덕이 더 없어진 것이다.

국세청 관계자에 따르면 백용호 청장은 안씨 문제에 대한 처리를 이헌동 차장에게 맡긴 것으로 알려졌다. ‘백용호 체제’에서 안씨는 국세청 핵심 인사들에게 ‘골칫덩어리’였다. 이런 와중에 서울지검의 수사가 시작된 것이다. 이미 10월 초부터 국세청 안팎 정보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가인갤러리가 안씨가 요직에 있을 때 수십억 원을 벌었다”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 때문에 국세청의 한 핵심 인사는 “검찰의 수사는 국세청이나 정권 핵심부와 어떤 식이든 교감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진행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설득력이 있는 분석이다.

현재 검찰 수사는 가인갤러리가 조형물 등을 납품한 건설업체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이 “세무조사 무마·축소 대가로 조형물을 납품받았다”라고 진술하거나 당시 국세청 세무조사 담당자들이 윗선의 압력으로 조사를 축소했다는 진술 등이 나와야 안씨를 형사 처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안씨는 “떳떳하다”라며 사표를 낼 생각이 없다고 버티고 있다. 국세청 내부에서 해결을 하지 못하고 검찰까지 간 ‘가인갤러리 사건’으로 인해 국세청은 다시 한 번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가인갤러리에 대한 검찰 수사와 관련해 주목된 것은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다. ‘그림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가 맡고 있다. 국세청장직에서 물러난 뒤 미국으로 간 그의 행적은 지금껏 알려져 있지 않다. 그가 귀국하지 않는 한 ‘그림 로비 의혹’에 대한 수사는 이루어지기 힘들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한 전 청장은 현재 뉴욕 주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인이 많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골프를 즐기고 강의도 하면서 지낸다. 마라톤에 취미를 붙여 얼마 전에는 하프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고 주변에 털어놓기도 했다. 그가 현 정권에서 귀국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는 “당분간 들어갈 생각이 없다”라는 뜻을 주변에 여러 번 밝혔다. 태광실업 등 이른바 ‘정치성 세무조사’ 칼날을 들이댔고, 이와 관련해 대통령을 독대했던 그가 입을 열면 정권에 미칠 파장은 상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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