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잡음에 휩싸인 환기미술관 지하의 거장이 목놓아 통곡할라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09.11.10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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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단 이사장과 관장의 고소·고발전으로 미술관 운영 파행 거듭해

▲ 서울시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 재단이사장과 미술관장의 분쟁으로 미술 전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사립 미술관인 환기미술관이 내홍을 앓고 있다. 환기미술관은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3대 화가로 꼽히는 수화 김환기의 작품을 모아놓은 미술관으로 그의 부인인 향안 김동림씨가 수화를 기념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세운 미술관이다. 

지난 1994년 미술관이 문을 연 이후 환기미술관은 모범적으로 운영되고 기획 전시를 하면서 성가를 높여왔다. 하지만 지난겨울 이후 환기미술관의 전시회는 끊어졌다. 환기미술관의 운영 주체인 재단법인 환기재단의 김화영 이사장은 환기미술관 박미정 관장과 박충흠 환기재단 이사를 횡령과 사문서 위조로 고소했고, 박관장과 박이사는 김이사장을 무고죄로 맞고소했다. 이어 김이사장이 미술관 돈으로 고소·고발전을 진행하고 있다는 이유로 박관장과 박이사가 주도한 재단 이사회에서 김화영씨를 횡령죄로 고소했다.

환기미술관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 환기미술관 입구. ⓒ시사저널 이종현

문제의 핵심에는 수화의 그림과 돈이 자리 잡고 있다. 수화의 작품은 A4 용지만한 드로잉 작품이 시장에서 2천5백만~4천5백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드로잉이 아닌 색채 작품은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로 20호 정도 되는 크기의 유화는 4억~5억원 선에 거래된다.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그림 값이 가장 비싼 화가로 분류될 정도이다.

김화영 이사장은 “박미정 관장이 내 그림을 나도 모르게 시장에 내다 팔고, 매각 대금도 제대로 주지 않고 돈을 횡령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미정 관장은 “김이사장 모르게 작품을 거래한 적은 없다. 근거 없는 주장을 펴며 정상적인 미술관 운영을 방해하고 있다”라고 맞서고 있다.

박미정 관장은 지난 2004년 1월 미술관장으로 취임했다. 미술관 설립자이자 강력한 카리스마를 행사하던 향안이 마지막으로 행사한 인사였다. 향안은 2003년 3월 아들 김화영씨를 환기재단 이사장에 취임시키고 2004년 2월 말 사망했다. 초보 이사장과 신임 관장은 이후 사이 좋게 미술관과 환기재단을 이끌어왔다.

사이좋던 초보 이사장과 신임 관장 사이에 찾아든 불신의 그림자

그러다 문제가 터진 것은 지난해 9월 김이사장이 귀국하면서부터이다. 김이사장은 “미국에 있는데 자꾸 환기미술관 소장품이 미술 시장에 흘러나오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라며 박관장을 불신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반해 박관장은 “지난해 9월 이후 김관장이 추천한 여자 인턴의 채용을 거절한 뒤부터 이런저런 꼬투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라고 주장했다.   

양쪽의 갈등이 표면화되면서 김이사장은 지난해 말 박미정 관장을 ‘이사장 권한’으로 해고했다. 그러자 박관장은 올 1월 임시이사회를 열어 관장 해임은 무효라는 결의를 이끌어냈다. 김이사장과 박관장을 뺀 나머지 이사회 구성원 세 명 중 두 명은 박관장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관장의 주장을 지지하는 박충흠 이사(전 이화여대 교수·조각가)는 “지난해 가을에, 김이사장에게 문제가 있다면 11월에 정기이사회가 있으니 그때 이사회를 열어 관장 문제를 규정대로 처리하라고 조언했지만 김이사장이 일방적으로 박관장을 해고시켜 문제를 악화시켰다”라고 주장했다.

▲ (왼쪽)ㅇ갤러리에서 발행한 김환기 드로잉북 도록. 김화영 이사장은 도록 속 드로잉북이 자신의 소장품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오른쪽)미술 전시가 이루어지지 않는 미술관에는 경호 요원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박관장 쪽에서는 규정을 지키지 않는 김이사장의 행태와 이사장 취임 이후 이사회를 한 번도 열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아 지난 7월 이사회를 열어 김이사장을 해임시켰다. 이에 김이사장은 해임 결의의 이유와 절차가 적법하지 않다며 해임 무효 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김이사장이 박관장을 불신하는 이유는 “내가 팔라고 의뢰하지 않은 작품이 팔리고 매각 대금도 나에게 제대로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했다. 박관장이 매각 대금 중 10억원을 빌려가 놓고서는 ‘그런 적이 없다’라고 발뺌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향안과 자신이 환기미술관에 맡겨놓은 수화의 작품 목록도 작성하지 않는 등 미술관장으로서 직무를 유기했다는 것이다. 그는 “작품 목록이 있었다면 이런 분란도 없었을 것이다. 어떤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지, 몇 점이나 있는지, 파악조차 안하고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9월 귀국 이후 박관장에게 작품 목록을 작성하라고 했지만 응하지 않고 제3자와 함께 수장고의 작품 실사를 공동으로 하자는 제안도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관장은 “실사를 거부하고 정상적인 미술관 운영을 가로막은 것은 김이사장이다”라고 반박했다.

모범 미술관으로 꼽혀온 환기미술관의 공식적인 작품 리스트는 지난 1992년 미술관을 설립할 무렵 미술관 등록 재산으로 신고한 1백30점에 관한 것밖에 없다. 향안은 미술관을 설립하면서 뉴욕에 있던 수화의 작품과 유품을 모두 환기미술관으로 보냈다. 향안 생존 당시에는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향안이 1년에 한두 번씩 한국을 오갔고, 누구보다도 수화의 어떤 작품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꿰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향안 사후에 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된 작품이 어떤 규모로, 어떤 작품이 있는지 파악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관장은 “전임 환기미술관장인 오광수 관장이나 맹인재 관장도 수장고의 보유 작품 목록을 작성하지 않았고, 김이사장도 이사장에 취임한 뒤에 목록 작업을 요구하지 않았기에 목록을 만드는 작업을 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박관장은 “목록화 작업은 최소한 6개월 이상이 걸리는 작업인데 지난해 9월 김이사장이 당장 목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자신을 미술관장에서 해임시킨 것은 황당한 일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이사장은 “미술관장으로서 소장품 목록을 작성하거나 작품 반출입 기록 대장을 만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취임 이후 4년 동안 이 작업을 안 하고 무엇을 한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 환기미술관 수장고 봉인. ⓒ시사저널 임준선

양쪽 주장 팽팽히 맞선 가운데 문광부에서 감사 벌여

사사건건 의견이 갈리는 김이사장이나 박관장 모두 인정하는 부분은 김이사장의 개인 소장품을 시중에 내다 팔았다는 부분이다. 하지만 매각 대금 규모와 작품 수에서 의견이 갈린다. 김이사장은 “내가 팔라고 인정한 작품 수는 11점뿐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매각 대금으로 17억원 정도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박관장은 기자의 질문에 “김이사장의 허락 없이 나간 작품은 없다. 그동안 김이사장이 챙겨간 돈이 수십억 원대 규모인데…”라며 말을 흐렸다.

향후 경찰이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매각 작품 수와 매각 대금 규모의 실체가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술 시장 관행상 대부분 현금 거래를 하고 미술관에 작품 목록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수사 결과 모든 것이 제대로 밝혀질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김이사장 쪽에서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고, 일부 불법 유출된 작품의 증거도 확보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박관장은 “김이사장이 미국에서 보냈다는 향안의 유품에는 수화의 작품이 전혀 없었고 당시 화물 송장도 있다”라며 김이사장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김이사장이 수화의 작품을 개인적으로 많이 미술관에 보냈다고 주장하지만, 보냈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또, ‘작품 매각 대금’을 속였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박관장은 “작품을 매각할 때 김이사장이 늘 옆방에 따라와 지키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작품 값을 속이겠느냐. 그가 모르는 거래는 있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이렇게 양쪽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면서 미술관 운영이 파행을 거듭하자 지난 7월 말 문광부 예술과에서 미술관 운영 실태에 대해 감사를 벌였다. 일단 미술관 운영 실태 감사에서는 미술관 수장고에 대한 공개 실사가 이루어진 점을 수확으로 들 수 있다. 실사 결과 1백30점의 등록 작품 중 다섯 점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또, 수장고에 있는 전체 작품이 1천5백점 이상이 된다고 파악되어 작품 목록화를 위한 기초 자료가 만들어진 것도 실사의 수확이었다.

등록 작품이 없어진 것에 대해 박관장은 “이전 관장 때 없어진 것이다”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이사장측은 “미술관장이 등록 작품의 인수 인계나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라고 공격하고 있다.

감사를 담당했던 문광부 예술과에서는 감사 결과를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작품 관리에 문제가 일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올해 안으로 감사 결과를 발표하겠다”라는 언급 외에는 더 이상의 답변을 거절했다.

지난 3월부터 김이사장이 고발한 횡령 사건을 수사 중인 종로경찰서 담당자도 수사 결과를 조만간 검찰에 송치하겠다고 밝힐 뿐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다. 경찰은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해 조사를 벌였지만, 증거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0월 말로 예정되었던 검찰 송치 일정이 계속 미루어지고 있다.

이사장과 관장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미술관의 파행 운영은 장기화되고 있다. 미술관의 한 직원은 “그림 유출이나 횡령 건은 이사장과 관장 사이의 일이다. 교육 프로그램 등 미술관을 정상 운영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지만 결제 대상도 불분명하고 직원들 입장이 난감하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서성록 회장(안동대 교수)은 “우리 미술계의 자랑거리였던 환기미술관의 파행 운영은 우리 미술계의 큰 손실이다. 양측의 갈등이 어떻든 간에 그 문제는 법리대로 따지고, 문광부는 관선 이사를 파견해서라도 먼저 미술관 운영부터 정상화시켜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환기미술관 사태의 핵심에는 돈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김화영 이사장측은 박미정 관장이 “내 돈 10억원을 빌려간 뒤 얼마 있다가 갑자기 건물을 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술관의 고용 관장이 어떻게 갑자기 18억원을 주고 평창동의 갤러리 건물을 사들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관장은 “평창동의 갤러리는 은행 돈 1억원을 빌려 세를 끼고 샀고, 나머지는 내 돈과 친정, 시가의 도움으로 샀다”라는 주장을 폈다. 

문제의 갤러리는 최근 국세청 그림 로비 의혹 사건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가인갤러리가 세 들어 있는 건물(사진)이다. 박관장은 이 건물을 지난 2005년 6월 남편 김 아무개씨와 함께 공동으로 사들였다.

박관장은 이 건물을 고암 이응노 화백의 미망인인 박인경씨로부터 사들였다. 이 건물이 바로 고암 이응노 미술관이 있던 자리였다. 미술계에서는 2000년 평창동에 고암미술관을 설립할 당시 미술계의 큰손인 가나아트에서 도움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나아트는 김환기의 작품이 가장 많이 거래되는 화랑이기도 하다. 이후 이응노 미술관을 대전시에서 유치해가면서 박인경씨가 이 건물을 박미정 관장에게 매각했다. 박관장이 건물을 산 이후 2005년 가을에 가인갤러리가 이 건물로 세 들어 왔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박관장의 부동산 거래가 2004년 이후 잇달았다는 점이다. 박미정씨는 2004년 4월 신반포의 45평형대 아파트를 단독 명의로 사들였다. 이 아파트의 현재 매매 호가는 15억원 안팎이다. 박씨가 아파트를 살 당시 주소지는 바로 옆동 401호였다. 401호의 전세권자는 박씨의 친정 아버지였다. 전세 살던 박씨가 갑자기 2004년, 2005년에 연달아 10원대가 넘는 대형 부동산을 사들인 셈이다. 이에 대해 박관장은 “자금 문제는 경찰에서도 다 말했다. 김이사장이 내게 10억원을 빌려줬다는 것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했다. 박관장의 신반포 아파트는 2004년 매입 당시 근저당권이 설정되지 않다가 2005년 갤러리 건물을 매입하면서, 조흥은행에서 평창동 갤러리 건물과 신반포 아파트에 각각 채권 최고한도 5억2천만원의 근저당권을 설정했다.

박관장은 신반포 아파트에 살지 않는다. 환기미술관 별관의 수향산방에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박씨가 출퇴근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하자 김화영 이사장이 수향산방에서 살도록 한 것이다. 한국에 왔을 때 수향산방에 머무르던 김이사장은 수향산방을 비워주고 본관 3층으로 거처를 옮겼다.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 두 사람이 지금은 같은 울타리 안에서 대치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뷰 | 박미정 관장] “공익 재단을 사유화하고 있다”

미술관을 먼저 살려야 한다. 올해 예정했던 다섯 건의 전시 중 네 건이 무산되었다. 올해 안에 반드시 열어야 하는 기획 전시도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 환기미술관은 이번 분쟁이 발생하기 전까지 미술관의 모범 사례로 꼽혀왔다. 하지만 김이사장으로 인해 미술관의 정상적인 전시 기능이 중단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 이전만 해도 신뢰한다고 문서까지 보내놓고 갑자기 입장을 바꿨다. 실사를 함께하자는 주장도 거부하고 미술관 직원들의 미술관 출입도 막고 있다. 김이사장은 재단의 경비를 개인 생활비와 변호사 비용으로 유용하고, 용역을 고용해 미술관 내에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며 공익 재단을 사유화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전에 아버지의 채색 작품 70여 점을 박관장에게 맡겼다. 지난해 10월에 돌려받은 것은 15점뿐이었고, 지난번 실사 때 수장고에서 네 점을 더 발견했다. 전시하라고 미술관에 맡겼던 드로잉북도 20~30권이었는데 나중에 돌려받은 것은 3분의 1도 안 되었다. 모두 스프링철이 풀린 채 뒤죽박죽 섞여 있어 어떤 작품이 같은 드로잉북에 있었던 것인지 구별이 안 되었다. 내가 전시하라고 맡긴 드로잉북이 다른 갤러리 소장품의 도록으로 나온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불법 유출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가 맡겨놓았던 작품도 전혀 목록화하지 않아서 어떤 작품이 없어졌는지 알 수가 없다. 박관장은 받은 것이 그것뿐이라는 주장만 한다. 수장고를 열었을 때 어떤 작품은 자기 개인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작품도 있었다. 미술관장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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