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정 회오리 앞에 고개 숙인 한나라당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11.1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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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친이계 인사인 공성진 의원이 수뢰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으면서 한나라당을 비롯한 여권에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한나라당 소속 지방단체장들의 비리 의혹도 꼬리를 물고 있다. 일각에서는 “?

ⓒ일러스트 박현정


정치권에 한 차례 거센 회오리가 몰아칠 조짐이다. 진원지는 여권이다. 청와대도 한나라당 주변도 긴장감이 감돈다. 최근 세종시 논란으로 여권은 사분오열되고 있다. 여기에 여권 인사들을 상대로 한 ‘사정의 칼날’이 번뜩이고 있다. 섣부르게 예측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저마다 숨죽인 채 관망하는 눈치이다. 일각에서는 “지금 한나라당은 패닉 상태이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상황의 심각성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11월6일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의 검찰 소환설이 불거지면서 여권 내부의 위기감은 급격히 확산되기 시작했다. 본인은 강력히 부인하지만 공의원은 골프장 업주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내사를 받아왔다. 이미 <시사저널>은 지난 11월2일 발매된 제1046호 ‘100억 비자금 사건 주역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무슨 관계이기에’ 제하 기사에서 관련 내용을 단독 보도한 바 있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골프장 스테이트월셔CC의 공 아무개 회장(43)이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었는데, 문제의 이 인사가 공의원과 아주 밀접한 관계라는 것이다. 현재 검찰은 공회장이 이 비자금을 공의원 등 정치인에게 뿌린 혐의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의 또 다른 현역 의원 3~4명의 이름이 더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수도권에 지역구가 있으며, ‘친이(친이명박)계’ 소속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공의원은 친이계를 대표하는 최고위원이다.

이번 사건을 바라보는 한나라당의 위기감은 매우 심각하다. 본지에서 보도한 대로 공회장이 갖는 당내의 입지 때문이다. 그는 한나라당 서울시당 부위원장을 맡으며 ‘당 정보위원회 상임위원장’ ‘당 미래위기대응특별위원회 위원’의 명함을 뿌리고 다녔고, 지난여름에는 한나라당 소속 의원 및 당직자들과 해외 시찰도 함께 다녀올 정도로 당내에 활동 폭이 깊고 넓다. 그가 뿌린 비자금이 어디까지 미쳤는지, 친이계의 핵심인 공의원이 실제 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날지 여부에 따라 자칫 당 전체가 발칵 뒤집힐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소속 지방단체장들의 이름도 줄줄이 거론된다. 골프장의 인·허가권을 각 지자체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과 상관없이 이미 한나라당 소속 지방단체장들에 대한 검찰의 사정 수사는 시작되었다. 이기하 경기도 오산시장에게는 지난 11월3일, 아파트 사업지구 지정과 분양 승인을 도와주는 대가로 한 건설사로부터 2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노재영 군포시장도 현재 수억 원대의 모금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고, 이동희 안성시장은 지난 8월 뇌물수수죄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상태이다. 홍사립 동대문구청장은 뇌물을 받은 혐의로 이미 구청장직을 사퇴했다. 이밖에 이대엽 성남시장과 서정석 용인시장도 검찰 주변에서 비리 의혹과 관련해 이름이 오르내리는 등 3~4명의 이름이 더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8월 김준규 총장 취임 이후 토착 비리와 권력형 비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진작에 했어야 할 수사들이었다. 상당한 제보 자료들이 축적되어 있다”라는 말로 정치적 의도가 있는 기획수사 성격은 아님을 강조했다. ‘박연차 게이트’ 수사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등으로 검찰이 입은 상처 때문인지, 최근 검찰은 유독 정권과 관련된 질문에 민감하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관계자는 얼마 전 사석에서 “정치인들의 돈과 관련된 여러 비리 의혹은 꼭 한번 제대로 다 파헤쳐야 한다”라는 말로 정치권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최근 과거 10년 정권에서 불거졌던 정치 비자금 등과 관련한 일부 의혹들도 다시 내사에 들어간 정황이 포착되기도 했다.

대통령의 사돈 기업인 효성 비자금 수사와 관련해서도 검찰은 발끈했다. 검찰이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수사를 하지 않고 있다는 야당의 주장에 대해 김총장은 “내가 총장 2개월 했지만 청와대가 하라면 하고 말라면 마는 스타일이 아니다”라고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총장은 이후 검찰에 재수사를 지시했다.

주목되는 것은 청와대의 태도이다. 청와대로서도 지금 검찰의 행보가 달가울 리는 없다. 친이계 핵심 의원 등이 비리에 연루되고, 사돈 기업이 수사를 받는 것은 향후 정국 운영에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지켜보는 형국이다. 청와대와 사정 기관의 ‘교감설’도 나돈다. 일각에서는 “오히려 청와대에서 사정을 독려하는 양상이다”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10·28 재·보선 직후 “이 상태로는 안 된다. 뭔가 ‘판 갈이’ 수준의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라고 언급한 한 한나라당 중진 의원의 목소리가 사뭇 예사롭지 않게 되새겨지는 대목이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전방위 사정이 시작되었다고 보면 된다”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사정 정국, 지방선거 겨냥한 이대통령의 고도의 승부수인가

▲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공성진 최고위원(가운데). ⓒ시사저널 이종현

실제 청와대 등 여권 핵심부에서는 최근 ‘위기론’이 급격하게 전파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할 것이 뻔히 예상된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지방선거 패배로 인한 조기 레임덕 현상이다. 집권 2년차인 올해 ‘중도 강화론’과 ‘친서민’ 행보로 재미를 본 이명박 정부로서는 집권 3년차인 내년을 위해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그 유력한 카드로 과감한 내부 개혁이 예고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단체장들의 비리에 과감히 메스를 들이댐으로써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는 것과 함께 지지세를 확보하고 판을 흔드는 다목적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셈이다. 여권 핵심부는 이어 개헌과 행정구역 개편 같은 초대형 이슈들을 내놓으면서 지방선거를 앞둔 정국을 주도해나가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대통령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라는 일부 지적을 감내하면서까지 세종시 수정안을 들고 나오는 것 또한 이런 기존의 판 흔들기 차원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세종시 문제는 이미 그 본질적 성격은 퇴색된 채 정치 싸움으로 비화되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는 물론, 차기 대권 구도와도 접목되면서 이제 세종시 논란은 이대통령 집권 3년차인 2010년 정국의 방향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현재의 세종시 논란은 표면적인 구도로 보면, 이대통령과 정운찬 총리의 위기라고 볼 수도 있다. 반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영향력은 이번 세종시 건으로 더 강화되는 듯한 분위기이다.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이에 대해서는 정치 분석가들의 전망이 다소 엇갈리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상종가가 아니라, 오히려 지금 박 전 대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상황이다(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명박 대통령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고도의 승부수를 띄웠다(이경헌 포스커뮤니케이션 대표)”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신율 교수는 “지금 이대통령의 입장에서는 대권 주자 한 사람이 독주하는 것보다는 고만고만한 잠룡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구도가 필요하다. 물론 박 전 대표에 대한 견제가 급선무인 셈이다. 그 전략으로 세종시 문제만큼 적합한 것은 없다”라고 밝혔다. 세종시 문제가 계속 부각될수록 박 전 대표의 입지는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미 박 전 대표는 세종시 문제에서 민주당 등 야권과 보조를 맞추는 듯한 어정쩡한 상태에 놓여 있다. ‘친박(친박근혜)계’ 내부에서조차도 “박 전 대표가 세종시 원안 고수라는 입장을 지나치게 고집할 경우, 충청권의 일부 민심을 얻는 대가로 수도권은 물론, 자칫 영남 등 전통적 지지 기반을 잃게 되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경헌 대표는 “현재 이명박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정국 운영에서 유리하게 선점할 이슈나 현안이 거의 없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과감하게 내부 개혁을 펼치면서 민심도 얻고, 현재 지리멸렬 상태인 여권의 판도 새롭게 재편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라고 분석했다. 그나마 그런 기회마저 놓치고 어영부영하면 내년 지방선거 이후 박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차기 구도가 형성되면서 급격한 레임덕에 빠지게 되는 자명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이런 구도가 뻔히 보이는데도 지켜볼 수만은 없다는 위기감이 그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또 하나의 승부 카드가 지금 다듬어지고 있다.


발걸음 무거워진 ‘친이계 좌장’

 
최근 국민권익위원장에 임명되면서 오랜 야인 생활을 청산하고 활발한 행보를 펼치고 있던 이재오 위원장(사진)이 다시 한 번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되었다. ‘이재오계’의 좌장 격으로 통하는 공성진 의원이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공의원은 이위원장이 주도했던 ‘국가발전전략연구회의’의 공동대표를 맡는 등 매우 밀착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두 사람은 정치적 동지이자, 이위원장이 지난해 미국 유학길을 떠났을 때 공의원이 사실상 그의 대리인으로 계파를 관리하기도 했다.

공의원과 가까운 인물로 100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된 공 아무개 스테이트월셔CC 회장 또한 이위원장과 인연이 있다. 그는 이위원장의 지역구인 은평구에 살면서 한 장학재단의 감사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의원과 함께 검찰 수사에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한나라당 현역 의원 3명 또한 모두 ‘친이계’, 특히 이위원장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위원장은 최근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의 의원직 상실형 확정 판결이 내려지면서 내년 봄 서울 은평구에서 재·보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내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친이계’를 대표해서 당권에 도전할 유력한 후보로 계속 거론되고 있다. 현재 친박계에 다소 밀리는 듯한 양상인 친이계 쪽에서 이위원장의 복귀를 고대하고 있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하지만 이번 검찰 수사로 인해 앞으로 이위원장의 행보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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