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란 긴장, 설득력 없는 눈물
  • 이지선 | 영화평론가 ()
  • 승인 2009.11.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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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의 이야기 잘 정돈했지만 소설과는 다르게 관객 몰입 방해

▲ 감독 | 박신우 / 주연 | 한석규, 손예진, 고수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시대, 베스트셀러가 드라마나 영화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 그렇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에서 각광받는 그의 작품은 드라마로, 영화로 변신해 다시 대중을 만나 왔다. 하긴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진 소설만큼 괜찮은 각색 대상이 어디 있겠는가. 하여 소설 <백야행>은 한국에서 영화 <백야행>으로 재탄생했다.

기본적인 줄거리는 같다. 재벌과의 결혼을 앞둔 수상한 여자, 비밀을 잔뜩 가진 듯이 보이는 남자 그리고 그들을 쫓는 또 한 명의 남자. 세 사람의 물고 물리는 관계는 이미 14년 전에 시작된 일, 살인이 계속되면서 그들 각자가 가졌던 비밀이 폭로되고 각각의 인물들은 이기적 욕망과 사랑, 죄책감 따위의 짐을 어깨에 메고 파국을 향해 달린다.

원작이 보여주는 방대한 분량을 볼 때 영화 <백야행>은 상당히 불안한 프로젝트였다. 3권짜리 소설을 2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압축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캐릭터의 성인 시절에 집중시킨 이야기는 의외로 잘 정돈되어 있다. 꽤 성공적인 압축이라고 칭찬할 만하다. 어디선가 본 듯하기는 해도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는 한석규나, 냉정해서 더 애절한 모성을 연기한 중견 배우 차화연도 나쁘지 않다. 군 제대 이후 영화에서는 처음 만나는 고수의 여전한 미모(?)도 반갑다.

그런데 그것이 전부이다. 이 영화의 장점은 거기까지이다. 이야기는 잘 압축했지만 그것은 그저 사건과 인물을 정리한 수준이다. 원작이 가졌던 사회적 시선이나 묵직한 정서는 온데간데없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신파, 눈물 바람이다. 굳이 원작을 그대로 따를 필요도 없거니와 애틋한 사랑 이야기라면 눈물이 넘쳐나도 나쁠 것은 없을 텐데, 문제는 그것이 그다지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는 데 있다. 현재와 과거를 반복적으로 오가는 구성이나 비극적 결말의 원인이 된 기본 사건도 같건만, 영화는 소설과 달리 흡인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일찌감치 범인을 밝혔으므로 ‘왜’에 집중할 수 있도록 관객을 휘어잡아야 하는데, 사건을 나열하기 급급하다 보니 흐름이 계속 늘어진다.

지나치게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음악 <백조의 호수>는 지루하고, 살인과 섹스를 병치한 교차 편집은 상투적이다. 소설에서 따온 대사는 문어체라 어색하고 덕분에 배우들의 연기마저 간혹 삐걱거린다. 러닝타임은 1백35분, 부디 극장을 찾을 관객의 건투를 빈다. 11월1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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