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스타’로 가는 레드카펫 활짝 펼칠까
  • 반도헌 (bani001@sisapress.com)
  • 승인 2009.11.17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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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닌자 어쌔신> 주연 맡은 비

▲ 11월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나타난 비. ⓒ시사저널 임준선

비(정지훈, Rain)를 이야기할 때 앞에 꼭 따라붙는 말이 있다. 바로 ‘월드스타’이다. 비는 가수로서, 배우로서 국내를 포함한 아시아권에서 확실한 위치를 점하고 있고, 아시아를 넘어 미국이라는 세계 대중문화 중심지를 꾸준히 공략하고 있다. 물론 ‘월드스타’라는 말이 비에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지.아이.조>로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이병헌, 미국 안방을 장악한 <로스트>에서 주요 배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김윤진, 미국 인기 아이돌 조나스 브라더스와 전미 투어를 마친 원더걸스 등 국내 언론 매체는 국내 스타들이 해외 진출을 시도하면 으레 훈장처럼 ‘월드스타’라는 호칭을 선물해왔다. 이렇듯 쉽게 사용되는 말이지만 대중이 인정하지 않으면 ‘월드스타’는 공허한 자기 위안에 그칠 뿐이다. 설사 국내에서 대중의 인정을 받았을지라도 실제 해외에서 성과를 거두고 그들로부터 호명되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다. 그래도 ‘월드스타’ 비가 어색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국내 스타 중에서 성공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다.

‘월드스타’ 비를 가능성에서 현실로 만들어줄 열쇠가 영화 <닌자 어쌔신>이다. <닌자 어쌔신>은 <브이 포 벤데타>로 호평을 받았던 제임스 맥티그 감독이 연출한 기대작으로 비가 단독 주연을 맡았다. <닌자 어쌔신>은 11월2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보다 하루 앞선 25일 개봉한다. 미국 전역 2천8백여 개봉관에서 상영이 이루어진다. 주연급 조연으로 투입된 워쇼스키 형제의 블록버스터 <스피드 레이서>에 이은 할리우드 두 번째 도전작이자 첫 번째 단독 주연을 맡은 이 작품이 성공을 거둔다면 진정한 ‘월드스타’로서 거듭나는 일이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그만큼 비에게 <닌자 어쌔신>의 성공은 그가 세워놓았을 ‘월드스타’ 프로젝트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이다. 비는 “인생에는 세 번의 기회가 찾아온다는데 내 인생에 세 번의 기회는 다 온 것 같다. 첫 번째는 박진영을 만났던 순간, 두 번째는 워쇼스키 형제를 만났던 순간, 마지막이 <닌자 어쌔신> 주연을 제의받은 순간이다”라고 말하며 이 영화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밝혔다.

지난 11월7일 관객에 앞서 언론과 평단에 먼저 공개된 <닌자 어쌔신>은 불안 요소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불안 요소는 이 영화가 일반적인 대중 영화가 아니라는 점이다. <닌자 어쌔신>이 보여주는 표현 수위는 액션영화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그저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튀는 정도가 아니다. 영화 속에서 암살 집단으로 등장하는 닌자가 휘두르는 검, 사슬낫, 수리검에 사람의 몸은 깔끔하게 잘려나간다. 잘려나간 단면으로 뼈와 골수가 가감 없이 드러나고 양동이에 모아 한 번에 부어버리듯 쏟아지는 피의 양감은 거침이 없다. 잔인한 현실을 통쾌함으로 변형시키는 대중적인 영화 문법을 거부하고 오히려 극대화시키는 하드고어적인 영화 문법을 사용했다. 닌자의 숙명이라 할 수 있는 어둠과, 목표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가 선명히 대비되며 어우러진다. 장르 마니아에게는 즐거움이 될 감각적인 영상은 <닌자 어쌔신>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이자 유일한 장점이지만 국내외 일반 대중에게는 혐오감을 일으킬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이다. 천년의 역사를 지닌 비밀 암살 조직 오즈누에서 라이조는 최고의 닌자로 성장한다. 닌자라기보다 먼저 인간이고 싶어 했던 연인이 조직으로부터 살해된 후 라이조는 조직을 배신하고 오즈누를 해체하는 데 온 힘을 기울인다. 그 와중에 국제 수사 기관이 등장해 오즈누를 척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이야기는 양념처럼 들어간다.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닌자 어쌔신>은 관객의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춤으로 다져진 부드러운 액션, 최근 액션 영화의 흐름과도 잘 맞아

▲ 영화 속의 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닌자 어쌔신>은 약점이 많이 보이는 작품이지만 가능성도 엿보인다. 장르 충성도가 강한 관객들에게는 선물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복수를 주제로 하는 홍콩 무협 영화, 일본 닌자 영화에서 복잡한 이야기 구조는 오히려 영화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이 장르에서는 선악 대비가 명확하고 결투 장면이 실감나게 그려지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이런 부분만 생각한다면 <닌자 어쌔신>은 장르 영화로서 훌륭하다. 연출 과정에서 공들였을 액션 장면이 어두운 화면에 조금 가려진 면이 있지만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배우로 성공하기 위해 출연한 작품이 꼭 성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작품성이나 이야기는 제작자와 연출가의 몫이다. 배우는 연기로 평가받는다. 전작 <스피드 레이서>가 흥행에서 성공하지 못했지만 비라는 동양 배우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듯이, <닌자 어쌔신>은 액션 배우로서 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닌자 어쌔신>에서 비가 보여주는 액션은 할리우드에 이미 진출해 있는 성룡, 이연걸과는 조금 다르다. 이들이 절도 있는 무술 동작에 근거한 액션을 보여준다면 비는 춤 실력에서 나오는 부드러우면서 화려한 액션을 보여준다. 이는 실전 격투 기술보다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보여주는 익스트림 마샬 아츠와 파쿠르를 선호하는 최근 액션영화의 흐름과도 잘 맞는다. 영화의 성공과는 별개로 액션 배우로서의 가능성과 상품성은 충분히 입증했다고 말할 수 있다.

비는 계약 조항에 따라 명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속편이 제작된다면 계속해서 주연을 맡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는 “<닌자 어쌔신>은 비의 매력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춤으로 단련된 비의 육체는 과격한 액션 연기에서도 카리스마를 과시한다. 비가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은 잘 풀리면 장 클로드 반담과 스티븐 시걸이다”라고 평가했다. 액션 스타에서 드라마로 발을 넓히고 있는 제이슨 스태덤도 비에게는 좋은 역할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비는 배우이기 이전에 가수이다. 아시아 시장에서만큼은 여전히 관객 동원력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가수이다.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 것도 가수로서가 먼저였다. 하지만 현 시점에서 냉정히 평가하자면 가수보다는 배우로서가 성공의 길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프로듀서 박진영이라는 둥지를 벗어난 비가 가수로서 ‘월드스타’로 도약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박진영의 품을 벗어난 이후 발표한 비의 음반은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최근에는 5인조 아이돌 그룹 엠블랙의 음반 제작자로 나서기도 했지만 ‘월드스타’로 가기 위해 배우에 집중하는 것이 옳은 선택으로 보인다. 워쇼스키 형제라는 황금 동아줄이 누구에게나 드리워지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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