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동짓날에 정말 지구는 운명을 다할까
  • 김형자 | 과학칼럼니스트 ()
  • 승인 2009.11.17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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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의 거짓과 진실 / 마야 달력 ‘끝나는 날’ 두고 시시비비…NASA “끝이 아니라 새 주기 시작”

▲ 지구의 종말을 컴퓨터그래픽으로 묘사한 영화 . ⓒ소니픽쳐스 킬리징 브에나 비스타(주)


지구의 종말을 다룬 영화 <2012>가 개봉되면서 지금 전세계는 또다시 종말론에 휩싸이고 있다. 1999년에도 종말론은 세기말을 앞두고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나 사람들이 우려했던 종말은 오지 않았다. 과거에도 수없이 나타났다가 그 예언의 시점이 지나면 사라지곤 해서 더 이상은 사람들에게 종말론이 먹히지 않을 법도 한데 여전히 지구 대격변·대재앙의 이름을 걸고 오히려 이전의 종말론보다 더 진화된 모습으로 널리 퍼지고 있다.

이런 예언은 사실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가볍게 웃고 넘겨버리면 그만인 일이다. 하지만 “당신은 2012년 12월에 교통사고로 틀림없이 죽는다”라는 말을 ‘용한’ 점성가로부터 들었다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겠는가. 더구나 2012년의 종말론은 이전의 종말론과는 다르게 ‘과학적’이라는데…. 과연 2012년 지구 대재앙설을 믿을 수밖에 없다는 과학적 이유는 무엇일까. 정말 2012년 12월21일, 지구는 운명을 다할 것인가?

영화 <2012>의 배경은 마야인의 고대 달력이 2012년 12월21일에 멈춰 있다는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마야력(曆)은 기원전 3114년 8월13일이 시작일이다. 마야에서는 약 3백94년을 주기로 시간을 측정하는데, 이를 ‘박툰(baktun)’이라 부른다. 고대 마야족은 ‘13’을 공포의 숫자로 믿었다. 그래서 마야력의 시작일로부터 13번째 박툰이 끝나는 날이 바로 2012년 12월21일이다. 이날이 지나면 세상에는 인류도 시간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세계가 펼쳐진다는 것이 마야 종말론의 내용이다.

고대 마야 문명은 천문학적 지식과 우주에 대한 통찰, 역학(달력)이 어떤 문명보다 뛰어났다. 현대의 달력보다도 더 정확하게 태양의 공전 주기와 일식과 월식, 금성의 공전 주기까지 계산했다. 그런 마야인의 달력이 지금의 달력으로 2012년 12월21일에 멈춰 있으니 종말론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당연한 이치 아니겠는가.

이런 마야 달력에 대해 포츠마우스 대학의 천문학자 카렌 마스터스는 명확한 ‘오해’라고 지적한다. 현재의 달력과 시간이 1일, 1주, 한 달, 1년 등 여러 주기로 나누어져 있듯 마야 달력도 그렇다는 것. 마야 달력은 56년을 주기로 매일매일 여러 복합적인 요소에 따라 특정한 이름이 주어져 있다. 현재로 치면 ‘7년마다 오는 1월 첫 번째 월요일’ 같은 식이다.

마야인은 5천1백26년에 이르는 달력을 만들었는데, 마스터스가 마야 달력의 기본 개념을 토대로 계산한 결과 2012년 12월21일은 우리 달력의 ‘1999년 12월31일’이나 자동차 주행 기록의 ‘99999.99마일’처럼 계산상의 주기가 끝난 것에 불과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마야인이 적용한 방정식 틀에 따라 한 차례 계산이 끝나고, 다음 계산으로 나아가는 시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마야인들이 2012년 12월21일을 종말이라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도 이같은 반박을 뒷받침해준다.

NASA(미국 항공우주국) 또한 마야의 달력은 2012년 12월21일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곧바로 새 주기가 시작되는 것이라면서 ‘2010년 지구 멸망설’을 공식 반박했다. AP통신도 정작 마야 문명의 후손 중에서는 이런 종말론을 믿는 이가 거의 없다고 보도했다. 멕시코 남부 유카탄 반도에서 아직도 마야 언어를 쓰는 후손들에게 2012년에 대해 물으면, 그런 종말론에는 관심도 없고 오히려 언제 비가 와서 가뭄이 끝날 것인가와 같은 현실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고 한다. 결국, ‘2012년 종말론’은 앞서 종말론자들이 2003년 5월을 지구 멸망의 날로 생각했지만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자 마야 달력의 한 주기가 끝나는 것에 끼워맞춰 2012년 동지를 지구의 마지막 날로 설정한 것에 불과하다.

■ 천문학을 덧씌운 천체 충돌 종말론

▲ 고대 마야인들의 달력이라고 알려진 유물.

2012년을 둘러싼 이 병적 흥분은 약간의 천문학적 근거도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플래닛 X’ 행성설이다. 일부 천문학자들은 명왕성 궤도 바깥쪽인 카이퍼벨트에 있다는 가설의 미확인 행성 ‘플래닛 X(제10행성)’가 지구로 돌진해 오고 있어 지구에 근접하거나 충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해가 2012년이다. 설령 지구와 충돌하지는 않더라도 엄청난 자기장을 지닌 이 행성으로 인해 지구 자기장의 +와 -극이 바뀌어 현재 23.5도 기울어져 있는 지축이 똑바로 설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되면 지구 내부에 잠자고 있는 수많은 화산이 폭발을 하고, 진도 9.0의 대지진이 발생할 것이라 한다.

외계인 침공이 아니라면 가장 그럴듯한 ‘공포의 대왕’의 정체는 혜성이나 소행성의 충돌 가능성일 것이다. 물론 혜성이나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확률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충돌이 2012년에 일어날 확률은 지금까지는 0이다. NASA 또한 소행성 X설이 가당치 않다고 일축한다. 지구에 근접하는 궤도를 가진 소행성들은 NASA에서 24시간 계속 감시하면서 충돌 가능성을 계산하고, 발견되는 혜성들도 즉각적으로 궤도가 계산되어 지구 충돌 가능성을 알 수 있다. 지구로 접근하는 물체 중 직경 2마일(3.2㎞)이 넘는 것들을 한 군데 모아 지도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2012년에 지구 충돌 가능성이 단 1%라도 있다고 보고된 소행성은 없다. 만일 플래닛 X가 지구와 충돌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천문학자들이 최소한 10년 전부터 이 행성을 추적했을 것이고, 지금쯤은 지구 가까이 접근해 맨눈으로도 보일 것이다.

물론 2029년, 2036년, 2068년에 지구에 접근하는 아포피스(Apophis)라는 소행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 아포피스는 1만8천 마일(약 2만8천9백km) 이상 지구를 비껴갈 것으로 계산되었다. 최장 길이도 축구장 너비의 2.5배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공룡을 멸망시킨 것과 같은 대규모 혜성이나 소행성 충돌도 없을 것이다. 충돌설은 과학적인 견지에서 무시해도 아무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 행성 일직선 배열 일어날 경우 지구에 미치는 영향

또한, 종말론자들은 대략 2만5천8백년마다 한 번씩 일어나는 은하계의 중심과 태양과 지구 등의 행성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천문학적 정렬 현상이 2012년에 겹칠 것이라고 한다. 이날 은하계의 공전 축이 변하게 되며, 그 파괴력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대다수 천문학자들은 “행성이 일직선으로 배열된다고 해서 어떻다는 것이냐”라고 비꼰다. 그러면서 앞으로 수십 년 동안 행성들이 수평선에 나란히 정렬하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설사 이런 일이 일어난다 해도 지구에 해를 끼칠 만큼 강력한 중력을 일으키지도 않아 지구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고 단언한다.

1999년 종말론을 예언한 노스트라다무스도 ‘그랜드 크로스’(Grand Cross)라는 행성 배열에 대해 언급했었다. 그가 말한 행성 배열은 우주 공간에서 십자가 모양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이러한 일은 자주 일어나고 있다. 점성술에서는 모르지만 천문학적으로는 전혀 특이한 일이 아니다. 행성들의 공전 주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는 각각의 행성들이 놓여 있는 모양이 십자가 모양이 될 수도 있고 나란할 수도 있다.

조석 간만을 일으키는 기조력(달과 태양이 지구에 작용하는 인력에 의해서 조석이나 조류 운동을 일으키는 힘)은 천체의 거리에 의해 아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이는 질량이 태양의 약 3천만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달이 오히려 태양보다 약 2배 정도 더 조석 간만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만을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른 행성들이 아무리 일렬로 정확히 늘어서도 이들로부터 비롯되는 기조력은 달이 미치는 기조력의 수만 분의 1에 불과하다. 지구에서 행성까지의 거리가 멀기 때문에 기조력이 거의 무시할 정도인 것이다. 따라서 행성 직렬이나 그랜드 크로스나 어떠한 행성의 배치가 있더라도 지구에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었고, 사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행성들의 공전은 우주 공간에서 보면 매우 느리기 때문에 이러한 배치가 어느 날 하루에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며칠씩 계속되기도 한다. 따라서 어떠한 행성 배열도 단지 드물게 일어나는 천문 현상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일 뿐, 어느 날 행성의 배치 때문에 종말이 온다는 등의 종말론적 천체 현상으로 받아들일 일은 전혀 아닌 것이다.

■ 종말론보다 더 중요한 미래 설계

근래에는 공상과학소설과 UFO 신드롬의 영향으로 외계인 침략설을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공상과학적인 허구일 뿐 현실과 연결해 생각하기에는 거리감이 있다. 미확인비행물체로서 UFO는 물론 있다. 우리가 확인할 수 없는 비행체가 왜 없겠는가.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외계 생명체는 곧 UFO이다’와 같은 등식이 일반인들 사이에서 너무 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점이다.

천문학자들이 외계 생명체라고 말하는 것은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처럼 ‘유기적인 생명 활동을 보이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늘 고도의 문명을 갖춘 지적인 생명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즉, UFO 안에서 조종간을 잡고 있는 화성인이나 외계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외계인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우리와 바로 교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외계인을 숭앙하는 종교가 퍼지고 있는 것은 걱정되는 일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은 천체 현상 하나가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구인의 운명을 바꾸는 것은 지구인들의 노력이다.

2012년, 인류 종말을 일으킬 만한 천문학적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소행성 충돌도, 행성 일직선 배열도 없을 것이다. 마치 매년 12월31일에서 1월1일로 넘어갈 때 아무 일도 없듯이,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갈 때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다. 우리가 2012년에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2013년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고, 2012년을 잘 마감했을 때 밝은 2013년이 찾아오는 것이다. 종말론과 같은 일설에 심취하는 어리석음보다는 건강한 태도로 밝은 미래를 설계하는 현명함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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