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역력 키우는 습관이 ‘재발’ 없이 살게 해준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11.1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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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력 키우는 습관이 ‘재발’ 없이 살게 해준다”

ⓒ시사저널 임준선

“내가 폐암 수술을 받기 전날, 초등학교 6학년짜리 아들이 보름달을 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린아이를 보니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7년 전 폐암 판정을 받은 김정길씨(53·가명)는 어린 자식을 두고 생명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남은 삶을 가족과 함께 보낼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도 아찔하기만 하다.

한·일 월드컵 열기가 더해진 때문인지 2002년 5월의 날씨는 후텁지근했다. 에어컨을 켠 채 차를 몰았던 김씨는 점차 심해지는 기침에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6월 하순 병원을 찾았고, 7월 초 검사 결과를 받았다. 결과는 폐암이었다.

김씨는 “평소 술은 마시지 않았지만 하루 3갑씩 25년 동안 담배를 피워왔다. 이 때문에 매년 엑스레이로 폐를 검사했다. 그런데도 폐암을 피할 수 없었다”라며 발병 사실을 알았을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국립암센터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비소세포(非小細胞) 폐암 3기였다. 비소세포 폐암은 암세포 크기가 작지 않은 폐암이다. 그의 몸속에 있는 암세포는 6×8cm 정도로 컸고, 림프절에도 전이된 상태였다. 조금 더 늦게 발견했다면 수술도 못하고 운명에 맡겨야 할 지경이었다.

단백질은 계란으로 보충…검증 안 된 식품은 독 될 수도

수술로 암을 제거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그러나 암 크기를 줄이지 않고는 수술이 여의치 않았다. 항암제로 암덩어리 크기를 줄이는 방법이 우선 필요했다. 당시에는 두 개의 항암제를 병행하는 항암요법이 일반적이었는데, 마침 세 개의 항암제를 사용하는 임상시험이 있었다. 주치의는 김씨에게 임상시험에 응할 것을 권했다.

김씨는 “항암제 신약 임상시험이 있다고 들었다. 부작용도 생길 수 있고 기존 방법보다 효과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의사의 추천을 적극 받아들였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3주에 한 번씩 총 세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암 크기가 2cm로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해 9월 김씨는 우측 폐 일부와 림프절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 후 현재까지 재발 없이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암으로 나빠진 폐를 더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김씨는 면역력을 증강하는 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김씨는 “정상인의 폐가 2천cc 엔진이라면 내 폐는 1천7백cc 엔진이다. 정상인과 같은 생활을 고집하면 몸에 무리가 따른다. 폐암 환자는 폐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도록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건강을 지키는 최선책이다. 면역 기능이 떨어지면 정상 세포가 작은 자극에도 비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암이다. 암 재발을 막는 것은 물론 현 상태를 유지하려면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행동과 생각을 면역력과 결합시켜 생활했다. 예컨대 수술 후 보약이나 감을 먹었는데, 이 역시 면역력을 높일 목적이었다”라고 강조했다.

투병 기간 동안 일기를 쓰는 습관이 몸에 뱄다. 하루에 일어난 일을 시시콜콜 글로 남겼다. 특히 체중과 운동 시간을 기록했다. 그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았는데 평균 체중이 5% 이상 빠지면 암이거나 당뇨이다. 나도 암에 걸렸을 때 몸무게가 63kg에서 56kg으로 빠졌다. 이런 변화를 일기에 기록했다. 일기는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의 몸 상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라며 일기를 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육류를 줄이는 대신 부족한 단백질을 계란으로 보충하라는 의사의 지시에 따랐다. 몸에 좋다는 음식을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암에 걸리면 무엇 무엇이 좋다는 말에 혹하기 십상이다. 김씨는 암 치료에 효과가 있는 음식이라면 이미 약으로 개발되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는 면역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이다. 검증되지 않은 식품을 먹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자칫 면연력을 떨어뜨리면 치명적인 결과까지 각오해야 한다”라고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았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 식습관은 물론 사고방식까지 개조했다. 그는 발병 당시 임원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경쟁과 스트레스가 가장 심할 때였다. 4개월 휴직 후에 복직했지만 경쟁 관계를 피했다. 그는 “내가 살아날 확률은 20% 남짓이었다. 비관적인 수치이지만 내가 그 20%에 해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승진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경쟁심과 스트레스를 줄인 것인다. 후배보다 늦은 2~3년 후에 승진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주변에서 수군거렸다. 결국 회사를 나왔다”라고 말했다.

암에 걸리기 전 그의 생활은 집과 회사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았다. 자신을 ‘회사형 인간’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암에 걸린 것이 그에게는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한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속담처럼 그는 수십 년 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삶에 쉼표를 찍기로 했다. 이 쉼표는 일보다 소중한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폐암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무렵 노모가 폐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고 투병 4년 만에 77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평생 노모와 함께 보낸 시간이 거의 없었다. 병 간호를 하면서 모자간에 많은 시간을 가졌다. 돌아가셨지만 여한이 없다. 또,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았다. 나는 건강을 잃었지만 가족을 얻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당시 김씨의 주치의였던 조재일 국립암센터 원장은 “김정길씨는 폐암 3기로 수술할 수 있는 마지막 고비에 병원을 찾았다. 항암치료 결과, 암 크기가 작아졌고 림프절에서 암이 관찰되지 않았다. 그해 9월 우상엽폐와 림프절 39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5년 후 김씨의 발병률은 일반인과 같은 수준으로 낮아졌다. 완치된 셈이다”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씨는 건강을 유리구슬에 비유했다. 한 번 깨지면 다시 회복할 수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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