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발적 충돌이었을까 북한의 의도된 도발이었을까
  • 고유환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sisa@sisapress.com)
  • 승인 2009.11.17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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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서해교전, 발생 시점·한국 해군 강경 대처 배경 등에 의문…남북 모두 사후 대응에는 차분

▲ 11월10일 서해 북방한계선 인근에서 벌어진 남북 해군 간 교전 소식을 전하는 방송을 길 가던 시민들이 시청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두 차례 교전으로 수많은 사상자를 냈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또 한 차례 남·북 해군 간에 교전이 일어났다. 11월10일 우려했던 3차 서해교전이 다시 발생한 것이다. 이번 사태가 우발적 충돌인지, 의도된 도발인지 그 진상을 파악하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우발적이라 하더라도 사태의 파장을 주시하고 확대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만약 의도적인 것이었다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둔 시점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정전 체제의 불안정성을 부각시켜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문제 제기를 하는 차원의 도발로 볼 수도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 정책 특별대표의 방북을 발표하기 직전에 이번 사태가 발생한 것에 우려를 표시했다. 백악관의 로버트 기브스 대변인은 11월10일 “북한이 서해에서 긴장 고조로 간주될 수 있는 추가적인 행동을 하지 말기 바란다”라고 밝혔다. 북·미 직접 대화를 앞둔 북한 군부의 불만 표출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그다지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남측 해군이 간소화되고 강화된 교전수칙을 적용해 NLL을 넘은 북측 함정에 강경 대응한 배경이 무엇인지도 규명해봐야 할 것이다. 남측 군부가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2012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주한 미군 재배치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쟁에는 의도된 전쟁도 있고, 때로는 우발적 사건이 대규모 전면전으로 비화하기도 한다. 우발적 충돌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의사 소통이 중요하다. 남북 관계가 잘 풀릴 때는 충돌 가능성도 낮아진다. 반면, 남북 관계가 교착되면 경직된 교전 수칙이 적용될 수밖에 없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도 당시의 남북 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발적인 해상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사전에 남북 해군 간 통신망을 정비해 의사 소통에 지장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번의 경우도 네 차례 경고 통신이 있었지만, 불응하자 한 차례 사격 경고 통신을 하면서 교전으로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은 해군경비정이 자신들의 영해에 침입한, 알 수 없는 목표물을 확인하기 위해 긴급 기동했다가 목표를 확인하고 귀대하는데 남한 해군함들이 뒤따라와 발포하는 등 엄중한 도발 행위를 했다고 우리와 상반된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번 교전에서 우리측의 피해는 거의 없지만 북측은 사상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파된 채 퇴각한 북측 함정이 조만간 보복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1차 서해교전 이후 김정일 위원장은 1년 내에 보복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면서 보복 없이 지나가는 듯했으나, 2002년 월드컵 열기가 무르익을 때 기어이 기습 공격을 감행해 남측 해군에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1차 서해교전 당시 침몰된 북한 해군 함정의 승조원들은 아직도 수장된 채 바다에 잠들어 있다. 이번에도 북측에 인적 피해가 있었다면 그대로 넘어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피해 입은 북한의 ‘보복 공격’ 가능성 주시해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월12일 서해교전에 대해 “단순한 우발적 사건인 것이 아니라 조선반도(한반도)의 긴장 격화를 노리는 남조선 군부의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도발 행위이다. 반드시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당장은 북한군 최고사령부가 남측에 대해 사죄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선에서 사태를 확대시키지 않고 관망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지만, ‘값비싼 대가’ ‘무자비하게 징벌’ 등을 운운하면서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지금까지 남북 모두 이번 교전이 정세를 악화시키지 않기를 바라는 듯 차분하게 대응하고 있다. 남측에서는 남북 비밀 접촉을 시도하는 등 모처럼 만에 마련된 대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나 않을지 우려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북측으로서는 곧 있을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앞두고 이번 교전이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계산을 하며 겉으로는 태연한 채 북·미 대화에 주력하려 할 것이다.

세 차례 서해교전에서 확인한 것은 NLL을 무력화하는 차원의 대남 도발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경계선을 그어놓고 영토 주권을 내세울 경우 앞으로도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충돌을 막기 위해서 남과 북은 2007년 10·4 선언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에 합의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10·4 선언은 사문화되고 서해 긴장은 다시 고조되었다. 총과 대포는 전쟁 억지력으로 사용하고 교류 협력으로 분단을 극복해야 한다.   


▲ 11월10일 서해 교전과 관련해 브리핑하는 합동참모본부 이기식 정보작전처장. ⓒ시사저널 임준선
이번 11·10 서해교전은 최근 남·북간의 물밑 대화 접촉 분위기가 무르익는 상황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태라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미 여러 차례 국내 언론의 보도를 통해 지난 10월 중순께 싱가포르에서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과 남한측 고위 인사가 비밀리에 접촉했다는 내용은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측 인사로 임태희 노동부장관이 싱가포르를 극비 방문했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임장관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을 지냈고, 초대 대통령실장 하마평에 오르내릴 정도로 이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통한다. 내일신문은 11월12일자 보도에서 ‘통일부의 고위 간부가 11월7일 개성에서 북측 인사와 비밀리에 접촉했다’라는 새로운 뉴스를 보도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이런 상황에서 북측의 갑작스런 서해 도발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일각에서는 남북 간 비밀 접촉과 관련해서 “최근 무위로 끝난 남북 비밀 접촉에 대한 북한의 불만 차원일 가능성이 있다”라는 추정도 나오고 있다. 또한, “비밀리에 진행되어야 할 문제가 한국의 언론 보도를 통해 공개되었고, 특히 북측이 대화에 매달리는 식으로 보도되는 것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북한 전문가들은 이런 의도성에 대해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 양무진 경남대 북한대학원 교수는 “이번 서해교전은 남북한 군부의 경직된 태도에서 발생한 우발적 사건이다. 의도된 것이 절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 수석연구위원 역시 “북한이 어떤 의도성이 있었다면 배 한 척 동원해서 할 일은 아니었다. 북·미 대화를 앞둔 시점에서 북한이 보복 행동을 할 가능성도 작아 보인다”라고 밝혔다. 백승주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의 우발적 행동이 확실해 보인다. 노동신문의 내용을 분석해보아도 북·미 대화를 앞둔 시점에서 이번 일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저의가 엿보인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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