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는 수치보다 흐름으로 읽어야 한다
  • 이철희 |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컨설팅본부장 ()
  • 승인 2009.11.17 18: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사 기관·조사 기법 등에 따라 수치는 달라질 수 있어

▲ 충남 연기군 대책위원회가 11월10일 서울역 광장에서 세종시를 원안대로 건설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지난 10·28 재·보궐 선거와 관련해서 여론조사의 적실성(relevancy)에 대해 논란이 적지 않았다. 대통령(MB)에 대한 지지율이 50%를 넘어섰다는데 어째서 여당이 수도권에서 허무하게 깨졌느냐는 것이다. 이런 터에 여론조사의 적실성과 관련된 논란이 다시 제기되었다. 세종시 문제에 대해 엇갈리는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몇몇 언론사가 세종시 관련 여론조사를 보도했다. 한겨레가 10월31일 보도한 바에 따르면, 원안 또는 확대 추진이 48.7%이고 축소가 21.5%였다. 지난 11월8일 발행된 중앙선데이는 원안 또는 원안 +α에 대한 찬성이 57.8%, 수정에 대한 찬성이 35.7%라고 보도했다. 조사는 11월6일에 실시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일보가 발표한 것도 있다. 11월8일에 실시한 조사에서, 원안 +α에 대한 찬성이 23.2%이고 수정에 대한 찬성이 59.4%인 것으로 나타났다. 

수치의 높낮이를 일단 빼고 추세(trend)로 읽는다면, 한겨레와 중앙선데이가 보도한 조사 결과는 대동소이하다. 두 조사 모두 원안을 수정해 축소하자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왔다. 문제는 국민일보가 보도한 조사 결과이다. 이 결과는 한겨레나 중앙선데이의 조사 결과와 배치(背馳)된다. 수정·축소 여론이 더 높게 나왔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답은 선택 항목에 있다. 국민일보의 조사는 응답자가 선택할 수 있는 보기를 이렇게 주었다. ‘원안+자족 기능’, ‘부처 이전 없이 과학 비즈니스 도시 구축’ ‘부처 이전 및 자족 기능 보완.’ 이 세 항목 중에 하나를 택해야 하기 때문에 ‘원안대로 하자는 입장’을 가진 응답자는 부득불 제시된 셋 중에서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정 싫으면 모른다거나 대답하지 않아야 한다. 따라서 응답 항목에 ‘원안’을 넣은 한겨레 및 중앙선데이 조사와 ‘원안’을 뺀 국민일보 조사를 수평 비교해서는 안 된다. 

응답자에게 어떤 선택 항목을 제시하는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예컨대, 대통령 지지도를 조사할 때도 4점 척도와 5점 척도는 다르게 나온다. 4점 척도는 ‘아주 잘한다’ ‘잘한다’ ‘못한다’ ‘아주 못한다’ 중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다. 5점 척도는 여기에 ‘그저 그렇다’를 넣는 것이다.

오차 범위도 무시한 보도에 유의해야

지난 9월의 어떤 여론조사에서는 MB 지지율이 53.8%였다. 이 조사는 4점 척도와 5점 척도를 같이 조사했는데, 53.8%는 4점 척도에 의한 것이었다. 5점 척도에서는 MB 지지율이 34.4%였다. 5점 척도에서 36.8%로 나타난 ‘그저 그렇다’가 4점 척도에서는 찬반으로 나뉘어졌기 때문에 53.8%의 지지율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를 대할 때 명심해야 할 원칙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가 여론조사를 수치로 읽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추세나 흐름, 또는 구도로 읽어야 한다. 수치는 조사 기관별로, 조사 기법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추세는 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 방법이 다른 조사를 그냥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예컨대, ARS 조사와 전화면접 조사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두 경우 대답이 다르게 나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론조사는 자칫 오해를 낳기 쉽다.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이런 점에서 여론조사 결과의 수치만을 앞세우고, 그를 통해 오차 범위조차도 무시한 채 우열을 판시하는 언론 보도는 하루빨리 지양되어야 한다. 그것은 왜곡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