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과 ‘이야기’의 힘이 통했다
  • 하재근 |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11.2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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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30%대 오른 블록버스터 드라마 <아이리스>

ⓒ태원엔터테인먼트

<아이리스>가 시청률 30%를 가볍게 돌파했다. 드디어 수목극 강자에 등극한 것이다. 그동안 수목드라마에서는 이상하게 강자가 나타나지 않았었다. 별로 주목받지 못하는 고만고만한 작품들이 동시간대 1위를 돌아가면서 했던 것이다. 이것은 월화드라마에서 <꽃보다 남자> <내조의 여왕>      <선덕여왕> 등 올 최고의 화제작들이 연이어 출현한 것과 확연히 비교되었다. 그 이유로 젊은 사람들이 월화에 비해 수목에는 드라마를 잘 안 보는 경향이 있다는 식의 황당한 분석도 나왔었다.

그런 외적인 요인이 문제가 아니었다. 수목드라마가 몰락한 이유는 바로 작품 자체에 있었다. 우연히도 수목에는 ‘2% 부족한’ 작품들만 배치되었던 것이다. 한류를 노렸던 <스타의 연인>은 주인공들의 사랑 이야기에 시청자를 몰입시킬 만큼 힘을 갖지 못했다. <시티홀>은 기대한 만큼의 코믹함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저 바라보다가>는 지나치게 잔잔했다. <아가씨를 부탁해>와
<태양을 삼켜라>는 공허했다. 이 작품들을 졸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강력한 임팩트가 없었던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작품의 한계로 인해 수목드라마는 월화드라마에 비해 힘이 약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아쉬움을 채워준 것이 <아이리스>이다. 뭔가 허전했던 수목드라마들에 비해 <아이리스>에는 강렬한 임팩트가 있다. 그것은 1차적으로 블록버스터가 주는 확고한 존재감에 기인한다. 그런데, 블록버스터의 존재감이 성공의 이유라면 <태양을 삼켜라>를 비롯해 여태까지의 대작들은 왜 성공하지 못했을까? 그래서 다시 ‘작품’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리스>는 일단 블록버스터급 규모로 시청자의 시선을 모은 후에, 작품 자체의 힘으로 뒷심을 발휘하고 있다. 여태까지의 블록버스터들은 최초에 시선을 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힘을 잃었었다. <아이리스>에서 모처럼 성공적인 작품으로서의 블록버스터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아이리스>가 최초에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 끌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블록버스터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출연진에 있었다. 이병헌, 김태희, 정준호, 김승우, 김소연, 탑 등의 출연자 명단은 ‘이래도 안 볼 테냐!’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런 대규모의 스타 종합선물세트가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당연했다.

특히 일등공신은 이병헌이다. 마치 <선덕여왕> 초반 화제 몰이를 고현정이 담당했던 것과 같다. 그동안 한국에서 보기 힘들었던 월드스타 이병헌의 등장은 <아이리스>에 고현정 이상의 천군만마였다. 고현정이 최초에는 화제성으로 작품에 공헌했지만, 나중에는 연기로 작품을 책임졌던 것처럼 이병헌도 화제성과 연기로 <아이리스>의 7할을 책임지고 있다. 때문에 이병헌이 빠진 <아이리스>를 상상할 수 없다.

전개 빠르나 디테일 생략 지나쳐 몰입 방해할 수도

<아이리스> 초반에는 크게 두 축의 코드가 전개되었다. 하나는 이병헌의 몸이 부각되는 액션이었고, 또 하나는 이병헌의 눈빛과 분위기가 부각되는 김태희와의 멜로였다. 보통 액션에 강하면 멜로가 약하고, 멜로에 강하면 액션을 못하는 법인데 이병헌은 양쪽 면에서 동시에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는 괴력을 발휘했다. 회당 출연료가 무려 억대에 달한다는 것이 알려졌는데도 그 까칠한 네티즌이 아무도 이병헌의 고액 출연료에 불만을 터뜨리지 않을 정도로 그의 존재감은 압도적이다.

이런 정도의 카리스마를 내뿜는 주인공이 등장하자 수목드라마에 모처럼 볕이 들었다고 할까. 히트작들에는 대체로 이런 주인공들이 있는 법이다.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내조의 여왕>의 천지애, <선덕여왕>의 미실처럼 말이다. <아이리스>에서는 이병헌인데, 그가 김태희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은 주부를 포함한 수많은 여성 시청자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남성을 위해서는 미국 드라마 <24>를 방불케 하는 액션이 제공되었다.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차량 추격 장면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물론 어설프기는 했지만 대규모 액션은 작품의 격이 달라보이도록 만들었다. 월드스타와 CF퀸의 달콤한 멜로와, 월드스타다운 액션이 어우러지면서 <아이리스>를 성공한 블록버스터로 이끈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갔다. 뮤직비디오 같은 달콤한 멜로 화면과 돈 들인 티가 나는 대규모 액션만 나열되었다면 지금과 같은 화제 몰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이리스>가 33.7%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10회에, 이병헌의 눈빛이 시청자의 가슴에 꽂혔다. NSS에 침투한 이병헌이 마침내 김태희와 마주치는 장면이었다. 그 순간 이병헌이 받은 충격, 두 연인이 처한 기막힌 상황의 처연함이 그의 눈빛으로 전해졌다. ‘이병헌의 눈빛이 시청자의 가슴으로 들어왔다’라고나 할까?

이것은 작품이 이병헌의 감정선을 놓치지 않고 계속해서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 둘이 처한 상황에 정서적으로 몰입되었기 때문에 이병헌이 김태희를 만날 때 시청자가 충격과 아픔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단순한 물량 위주 블록버스터와 <아이리스>를 구분케 하는 지점이다. <아이리스>에는 주인공들의 정서에 몰입시키는 이야기의 힘이 있다. 중반 이후 이 이야기에 힘이 빠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리스>에서 걱정되는 것은 디테일이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른 것은 좋으나 디테일이 지나치게 생략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개연성이 무너지고 시청자의 몰입이 깨질 수 있다. 지금까지의 액션과 멜로, 이야기의 힘에 디테일까지 보강된다면 <아이리스>는 더욱 성공할 것이다.


ⓒ태원엔터테인먼트
<아이리스> 초반 네티즌의 관심은 김태희(오른쪽)에게 모아졌었다. 최근 ‘여배우’가 네티즌들의 화두였기 때문이다. 손담비, 윤은혜, 이지아, 성유리 등이 맹폭을 받았었다. <아이리스>가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김태희가 화제에 올랐다. 다행히 초반 멜로 장면에서 김태희의 연기가 합격점을 받으며 네티즌의 표적이 되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일은 이병헌이 고난에 처하면서 김태희가 본격적으로 NSS 정예 요원의 모습을 보일 때 벌어졌다. 특수 요원으로서의 긴박한 느낌을 별로 살리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네티즌은 지체 없이 김태희에게 ‘멍태희’라는 별명을 선사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김소연(맨 오른쪽)이 떴다. 마치 <아가씨를 부탁해>에서 윤은혜의 연기에 실망한 네티즌이 문채원을 밀어준 것처럼, <아이리스>에서는 네티즌이 김소연을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원래 이병헌과 정준호의 대결 구도가 중심 주제였는데, 이런 과정을 거치며 김태희와 김소연의 대결이 흥미진진해졌다. 김태희는 10회에서 몸 사리지 않는 ‘암바 액션’을 선보이며 다시 호감을 얻었다. 한편, 김소연은 이병헌을 바라보는 처연한 눈빛으로 계속해서 지지자를 모으고 있다. 누가 최종적으로 <아이리스>의 퀸이 될지 알 수 없는 박빙의 경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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