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고위 수뇌부‘7인회’ 요동치는 정국 ‘키잡이’될까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9.11.2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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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권에서 “정운찬 총리 정치력 실험 무대 될 것” 전망도 나와…당의 다양한 목소리 어떻게 끌어안고 갈지가 숙제


대한민국의 대통령들에게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대통령의 표정이 해외 순방길에 나가면 활짝 펴지다가도 다시 국내로 들어오는 기내에서는 저절로 찌푸려진다”라는 6공 시절 청와대 비서실의 한 고위 관계자의 전언처럼, 임기를 더해갈수록 국내 문제보다는 외교 활동을 더 많이 선호한다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북방 외교를 개척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지만, 국내에서는 ‘물태우’라는 비아냥을 감수해야 했다. ‘정치 9단’으로 불린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도 재임 중 국내에서는 온갖 비난 여론에 시달리곤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른바 ‘실세 총리’를 통해 국방·외교는 대통령이, 내치는 총리가 담당하는 이원정부제 형태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그런 전철을 밟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 기구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께서 요즘 외교 활동에 부쩍 재미가 붙으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국내 정치 문제를 정운찬 총리에게 많이 넘기는 분위기가 아닌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정국 유동성이 커지고 있다. ‘세종시 수정’ 논란과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여야 간의 물러설 수 없는 전쟁이 계속되면서 이미 대화는 실종된 모습이다. 11월19일 여야 원내대표가 오랜만에 한자리에 마주 앉았지만, 역시 서로의 입장만 주장하다가 소득 없이 헤어졌다.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해야 할 중요한 순간임에도 국회의 기능은 현재 마비 상태이다. 국회 예결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일단 (심의에) 들어와야 한다. 밖에서 협상할 것이냐 말 것이냐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무엇이 잘못인지를 이야기해야지, 4대강 사업은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해서야 되겠나”라며 민주당을 향해 전에 없이 날을 세웠다. 협상을 주도해야 할 위원장으로서 야당을 자극할 수 있는 강경 발언은 향후 정국이 상당히 요동칠 것이라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사분오열되는 여권에 위기론 대두되자 ‘수뇌부 회동’ 주목

그렇다고 해서 여권이 마냥 밀어붙이는 것도 쉽지 않은 처지이다. 여권도 사분오열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우선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의 날카로운 대립이 여전하다. 여권 주류인 친이계 역시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지는 모습이다. 강경파 쪽에서는 “최종적으로는 친박계와의 결별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이 정도로 진척이 된 만큼 추진해야 한다(수도권 재선 의원)”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를 안고 가야 한다. 4대강 사업도 예산이 좀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우리가 보기에도 지금의 내용으로는 뭐가 뭔지 정확히 알 길이 없다(중도 성향의 영남권 중진 의원)”라는 다른 강도의 얘기도 들려온다.

목소리가 갈라지다 보니 당의 걸음걸이도 어정쩡하다. 당 지도부 역시 일사불란한 모습이나 강력한 카리스마는 보이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난해 촛불 시위 정국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당이 무기력함에 빠져드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론이 대두되고 있다. 청와대가 모든 것을 주도하는 양상이 그것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정운찬 총리가 취임하면서 정부도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전임 총리와는 달리 정총리의 경우 ‘실세 총리’ 소리를 듣고 있다. 이대통령이 상당히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최근 세종시 문제 등 사실상의 모든 현안을 정총리가 짊어지고 가는 모양새이다. 정부와 청와대가 주도하다 보니 당은 여기에 끌려가는 모습이다.

그런 면에서, 최근 정국에서 가장 관심을 촉발시키는 이들이 있다. 이른바 ‘당·정·청 수뇌부 회동’에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진 멤버들의 면면이다. “‘3김’ 시대는 가고 ‘3정’ 시대가 왔다”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빅 3’인 정운찬 총리,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우선 눈에 띈다. 현재 당·정·청을 이끌고 있는 수장들이다. 정총리와 정대표는 여권의 잠재적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인물이다. 여기에 가장 연장자인 정실장이 자연스럽게 조율을 하는 역할을 맡는 것으로 알려졌다.

빅 3 외에 정부에서는 주호영 특임장관이, 청와대에서는 박형준 정무수석과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또 당에서는 안상수 원내대표가 이 멤버에 가세한다. 이른바 ‘7인 회동’이라는 말이 나온다. 여기에 권재신 국무총리실장까지 포함시켜서 최근 언론에서는 ‘8인 회동’이라는 용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고 있다. 다만 권실장의 경우, 현재 당·정·청 고위 수뇌부 회동이 세종시 문제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고정 멤버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되는 분위기이다. 그가 현재 세종시 정부지원협의회 의장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임이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10월11일 비공개 회동이 언론을 통해 불거지면서부터였다. 취임 상견례를 겸해 정총리가 자리를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는 윤진식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참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실장은 대통령실 부실장으로 불릴 정도로 이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이 회동과 관련해 향후 그의 역할도 주목된다.

이후 11월부터 이 비공개 회동이 주말마다 한 번씩 정례화되다시피 했고, 사안 역시 현재 세종시 문제로 집중되면서 자연스럽게 청와대에서는 윤실장이 빠지고 두 명의 박수석이 참여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박재완 수석은 ‘세종시 수정안 추진의 전도사’라고 불릴 만큼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박형준 수석 역시 이대통령의 중도 실용 노선을 기획한 핵심 인물로 소개된다. 이들의 광폭 행보에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요즘 정치는 청와대 수석들이 다 한다는 얘기가 있다”라고 비아냥거리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당·정·청이라는 것이 사실은 정국을 운영하는 세 축 아닌가. 이들이 서로 만나서 대책을 논의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이번에 세종시와 관련해서 그것만 딱 부각시키니까 마치 없었던 뭔가가 새롭게 만들어진 것처럼 느껴질 뿐이지, 이전 정부에도 있었고, 전임 한승수 총리 시절에도 있었던 모임이다”라며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내가 알기로 멤버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만약 향후 세종시 문제나 4대강 문제와 관련해서 홍보 기능을 강화할 시점이 오면 청와대에서는 이동관 홍보수석이 나갈 수도 있고, 뭐 그런 것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회동 ‘비공개 진행’에 대한 비판도

▲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와 정운찬 국무총리, 정정길 대통령실장(앞줄 왼쪽부터)이 11월11일 국무총리 공관에서 열린 제8차 고위당정협의회에서 만나 회의에 앞서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여권 주변에서도 “마치 ‘7인회’ 또는 ‘8인회’라고 해서 고정적인 느낌을 주지만, 굳이 기본적인 고정 멤버를 분류한다면 ‘빅 3’로 불리는 ‘3정’뿐이다”라고 말한다. 여기에 안상수 원내대표까지 포함해서 4인이 된다는 것이 당에서 나오는 얘기이다. 그 나머지 멤버는 모두 상황에 따라서 그때그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 한명숙 총리와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 김근태 열린우리당 당의장과 김한길 원내대표 등 4인이 만났던 ‘당·정·청 수뇌부 4인 회동’이 있었다. 이를 근간으로 ‘8인회’ ‘12인회’까지 확대되기도 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 김근태 복지부장관 등 대권 주자들까지 포함되면서 막강한 위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소통 부재’라는 비난에 줄곧 시달렸던 이명박 정부가 지난 정권의 모습을 벤치마킹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지난 정권 때의 그 모임은 구성원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가 대통령 측근이나 실세들이 참여해서 ‘옥상옥’이라는 비난을 받았지만, 이번 경우는 공식 직책에 있는 분들이 나와서 서로 협의하는 것이니 만큼 성격이 전혀 다르다”라고 주장했다.

당·정·청 고위 수뇌부 회동은 향후 불투명한 정국에서 그 위상이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이같은 회동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불가피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회동을 막기도 힘들고 또 굳이 막을 이유도 없다. 순기능이 있다. 대통령으로서도 이 회의체에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비공개로 진행되는 데 대한 비난 여론도 뒤따른다. 당 쪽에서도 “굳이 비공개로 할 이유가 있나”라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청와대에서 “업무의 효율상 비공개가 좋겠다”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장은 “너무 지나치게 은밀할 경우, 밀실 국정 운영이라는 비 판을 받을 수도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공개와 비공개를 번갈아가며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굳이 비공개를 고집할 이유는 없지만 일반적인 정책 협의가 아니라 정무적·정치적 판단이 필요한 테이블이라면 비공개로 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당·정·청 수뇌부 회동에 힘이 실리면서 향후 여권의 대선 구도와 접목하려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당장 “정운찬 총리의 정치력을 판가름할 실험 무대가 될 것이다”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실장이 최연장자이기는 하지만 자연스럽게 정총리가 ‘좌장’과 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측근으로 알려진 정부 기구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내가 아는 교수 출신 중에 정총리는 가장 정치적인 센스가 뛰어나다. (당·정·청 수뇌부 회동을) 잘 이끌며 성공하는 총리가 될 것으로 본다”라는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총리실(정부)과 청와대가 그 어느 때보다 밀착되어 움직이는 현 정국에서 최대 문제는 당과의 원활한 조율이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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