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가정으로 들어오고 있다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12.0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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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와 장소 가리지 않는 첨단 의료 장비 속속 등장…원격 진료 체계, 2~3년 내에 자리 잡을 수도

▲ 책장만 한 초음파 진단기가 휴대전화기처럼 소형화되었다. 응급 상황에서 활용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멘스헬스케어 제공


경북 영양군에 사는 김만식씨(74ㆍ가명)는 병원을 자주 방문해야 하는 당뇨 환자이다. 당뇨는 방치할 경우 심장병 등 합병증을 유발하므로 의사의 꾸준한 관찰이 필요하다. 고령인 데다 관절이 좋지 않은 그에게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병원을 방문하기 위해 안동시까지 가는 일은 고역이다. 그러나 올해 들어 그는 병원을 방문하지 않는다. 원격진료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안동의료원 의사로부터 진단을 받는다. 한 달에 두 번 안방에서 혈당을 측정하면 그 수치가 의사에게 전달된다. 네트워크로 전달된 자료를 두고 의사와 화상 상담도 한다. 기기 조작이 익숙하지 않아 보건소 직원의 도움을 받는다. 황용순 무창보건진료소 소장은 “환자의 심전도, 혈당 수치, 혈압, 체온 등이 인터넷망에 연결된 원격진료기를 통해 의사에게 전달된다. 10분 진단을 받기 위해 반나절을 허비하는 일이 없어졌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 원격 진료는 큰 도움이 된다”라고 말했다.

의료 서비스가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웬만한 진단은 병원을 방문하지 않아도 가능하게 되었다. 병원의 일부 기능이 가정으로 옮겨온 셈이다. 인터넷 TV(IPTV)로도 건강 진단이 가능하고, 새로 건설되는 아파트에는 의료 진단 시스템이 기본으로 깔리는 시대이다. 단순히 인터넷을 이용해 진단하는 것은 이미 구식이 되었다. 앞으로는 휴대전화 무선망을 이용하면 환자가 있는 곳이 진료실이 된다. 의사를 만나기 위해 시간을 정할 필요도 없다. 환자가 원하는 시간이 진료 시간이 된다. 이렇게 되면 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는 고혈압 환자가 커피숍에서 휴대전화 등으로 혈압을 재고 의사로부터 처방전을 발급받아서 근처 약국에서 약을 구할 수 있다. 약 처방을 받거나 의사의 한마디 말을 듣기 위해 몇 시간씩 걸려서 먼 거리에 있는 병원까지 다녀오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처럼 꿈같은 진료 환경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향후 2~3년 내에 가능해진다. 이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 이른바 헬스케어 폰(healthcare phone)이다. 4~5년 전 시중에 판매된 헬스케어 폰은 휴대전화에 진단 기능이 접목되어 있다. 대표적인 기능이 당뇨 환자를 위한 혈당 측정이다. 혈당 수치는 본인이나 의사는 물론 부모나 자녀 등 보호자에게도 전송된다. 측정 시간 알림, 이상 수치 경고 메시지, 음성 알림, 기간별 혈당 분석 등 다양한 기능이 포함되어 있다. 서울성모병원이 2004년부터 이런 시스템을 구축하고 당뇨 환자를 관리해 오고 있다. 이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쓴 논문이 의료 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에 여러 차례 실렸다. 유용성이 인정된 셈이다. 이쯤 되면 헬스케어 폰은 병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생활하는 사람이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에게는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환자와 의사를 연결해주는 핫라인이기 때문이다. 

장소와 시간에 상관없이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정보통신 환경을 이용한 의료 서비스를 유비쿼터스 헬스(U-health)라고 부른다. 하지만 U헬스라는 말이 보편화된 지금도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진료를 받을 수 없다. 과거보다 의료장비가 첨단화되어 정확도나 편리성은 높아졌지만 부피는 커졌다. CT(컴퓨터단층촬영)나 MRI(자기공명영상) 장비가 대표적이다. 커다란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부피가 크다. 아무리 거동이 불편하거나 응급한 환자라도 CT나 MRI로 진단을 받으려면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따라서 의료 장비의 소형화는 향후 U헬스의 기본이 될 전망이다.

최근 의료 장비의 소형화 바람이 불고 있다. 그 테이프를 끊은 장비가 초음파 진단기이다. 그동안 초음파 기기의 가장 큰 약점은 육중한 무게와 크기였다. 휴대할 수가 없기 때문에 아무리 급한 응급 환자라도 진단 기기가 있는 검진 장소로 이동해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초음파 진단을 받기 위해 병원을 찾는 일이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작은 책장만 한 초음파 진단기가 휴대전화만 한 크기로 작아졌다. 지멘스헬스케어가 개발한 아쿠손(ACUSON) P10 등 휴대용 초음파 진단기는 무게가 7백g 내외에 사이즈도 휴대전화만 하다. 반면, 성능은 일반 초음파 기기 그대로를 갖추고 있다. 프로브(probe)라는 막대기를 복부에 대면 신체 내부의 영상이 휴대전화 화면에 비친다. 오지에서도 대도시 병원에서 검진받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다. 특히 위급한 상황에서 환자의 진단 자료를 의사에게 전송하면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응급 수술을 준비할 수 있다.

환자 스스로 간단한 치료할 수 있는 의료 기기도

▲ 인공 지능형 알약 ‘아이필’은 환자 상태에 맞는 약물 복용량을 장기 내부에서 분출한다.

진단뿐만 아니라 간단한 치료도 병원 밖에서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크론병과 대장염 같은 위장질환은 스테로이드 등의 약물로 치료한다. 신체 전신 복용량을 투여하므로 일부 환자에서 부작용이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약물을 질환 부위에 직접 전달하면 복용량을 낮출 수 있다. 부작용이 생기는 것도 줄일 수 있다. 이런 필요에 의해 개발된 것이 필립스헬스케어의 아이필(iPill)이다. 일반 캡슐 약처럼 생겼다. 길이 2.6cm, 지름 1.1cm의 아이필은 마이크로프로세서, 배터리, pH 센서, 온도 센서, RF 무선 송수신기, 액체 펌프, 약물 저장소로 구성된다. 환자가 물과 함께 삼킨 아이필은 장(腸)을 통과하면서 질환 부위에 도착해서 약물을 방출한다. 마이크로프로세서에는 의사의 처방이 입력되어 있다. 또, 이때 감지한 체내 pH농도와 온도 등은 의사에게 전달되므로 환자 상태에 맞춰 약물 농도를 조절할 수도 있다. 헨크 하우텐 필립스 연구소 수석 부사장은 “전자공학, 진단의학, 치료 도구가 결합한 의료 장비이다. 앞으로 거의 모든 종류의 약물을 장 내 특정 부위에 전달하는 일이 가능해질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캡슐형 내시경은 지난 2001년 개발되었다. 환자가 일반 알약 크기의 캡슐을 삼키면 소형 카메라가 장 내부를 촬영한다. 일반 내시경 검사에 따른 고통과 불쾌감을 없앤 첨단 의료 기기이다. 이제는 이 캡슐이 진단뿐만 아니라 치료까지 하는 단계로 진화한 것이다.

▲ 혈당을 측정할 수 있는 헬스케어폰. 혈당 수치 등을 분석하고, 관련 자료를 의사에게 전달한다.

이런 의료 기기는 응급 상황에서 그 빛을 발한다. 갑자기 심장마비 환자를 접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119에 전화를 거는 것 외에는 딱히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 구급차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동안 응급 처치를 하지 않으면 환자는 싸늘하게 식어간다. 앞으로는 휴대전화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자동제세동기(AED)를 검색하면 된다. AED는 일종의 전기충격기이다. 공항, 백화점 등에 비치되어 있고 일반인도 쉽게 사용할 수 있다.

최근에는 여기에 한 가지 기능이 추가되었다. AED 뚜껑을 여는 순간 환자의 위치와 시간이 휴대전화 망을 타고 보건복지부 산하 응급의료정보센터로 전송된다. AED 뚜껑에 무선통신 칩이 붙어 있다. 이 정보는 즉시 가장 가까운 병원에 문자메시지(SMS) 등으로 연락되어 구급차가 출동한다. 굳이 119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하느라 심폐소생술(CPR) 등 필요한 응급조치를 하지 못하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 이런 서비스를 공동으로 진행하기 위해 이동통신사업자인 KT와 GE헬스케어가 지난 3월 합의했다.

진단부터 치료와 응급 처치까지 가능한 소형화된 첨단 의료 장비가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핵심이 빠져 있다. 상담이나 진단을 넘어 의사의 처방과 약물 배송까지 원격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행법으로는 의사가 화상을 통해 환자에게 처방을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원격 의료 관련 기술이 갖추어졌지만 서비스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보건복지가족부는 원격 진료와 처방이 가능해지도록 의료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또, U헬스 육성을 위해 6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지식경제부는 원격 당뇨 관리 서비스 시범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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