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개혁’ 시작도 안 했는데 ‘덜컹’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12.0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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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부의 ‘농협법 개정안’과 농협의 ‘사업구조 개편안’ 서로 충돌…신설될 보험 자회사는 특혜 시비 불러

▲ 서울 중구에 위치한 농협 본사. ⓒ시사저널 박은숙

농협 개혁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오고 있다. 농림부와 농협이 각자 ‘농협 개혁안’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갈등만 증폭되고 있다. 농림부는 지난 10월28일, ‘농협중앙회 사업 분리를 위한 농협법 개정안’(이하 농림부 안)을 입법 예고했다. 오는 12월 중순쯤 법제처 심사 등을 거쳐 국회에 개정안을 상정할 예정이다. 농협도 지난 10월27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농협중앙회 사업구조 개편안’(이하 농협 안)을 확정했다. 농림부와 농협의 개혁안을 보면 여러 곳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농협의 구조 개편 시기나 자금 지원 방법은 물론이고 개편 이후 사용할 명칭을 놓고 입장 차가 뚜렷하다. 농협은 농림부 안을 원안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반발하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신설되는 보험 자회사(농협보험)의 경우 특혜 시비까지 불러왔다. 농협보험을 빠르게 정착시키기 위해 각종 혜택을 주자 보험업계가 집단 반발하고 나섰다. 보험업계 사장단까지 나서 정부에 예외 조항을 철회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향후 농협 개혁을 둘러싸고 농림부와 농협, 농림부와 기획재정부, 농협과 보험업계 간에 갈등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농협 안’과 ‘농림부 안’에 따르면 우선 농협중앙회는 향후 기능이 대폭 축소된다. 교육, 지도, 감사 등 고유 목적 사업만 담당하게 된다. 기존의 경제 및 신용 부문은 각각 ‘NH경제’와 ‘NH금융’ 등 지주회사 형태로 분리된다. 이로 인해 농협중앙회는 지난 1961년 옛 농협과 농업은행이 통합된 지 50년만에 다시 신용 부문과 경제 부문이 갈라지게 되었다. 박진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농협 개혁은 역대 정부의 주요 과제 중 하나였지만, 온갖 논란과 진통만 거듭해왔다. 이번에 농림부와 농협이 지주회사 체제 전환에 나서면서 해묵은 논란은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부적인 쟁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당장 중앙회 명칭부터가 걸림돌이다. 농림부측은 “권위적이고 중앙 집권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중앙회 명칭을 연합회로 변경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농협측은 신경 분리가 합의된 상황에서 단순히 명칭을 변경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시각이다. 농협 관계자는 “농협 사업의 70%를 신용 부문이 차지하고 있다. 이 신용 사업이 중앙회에서 떨어져나가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중앙회를 연합회로 변경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라고 설명했다.

명칭 변경에 따른 가시적인 이익이 없는 상황에서 단순하게 명칭만 바꾸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농림부가 ‘연합회’ 사용을 고수하는 이유에 대해 “일종의 ‘전시 행정’이 아니겠느냐”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 다른 농협 관계자는 “지난 50년간 축적된 중앙회 이미지가 있다. 이를 무시하고 연합회로 변경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 농림부가 이번에 연합회를 강행하는 데는 명칭 변경을 통해 개혁이라는 상징성 등 홍보 효과를 노리는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농림부측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농협 개혁과 관련된 부처와 논의 중인 만큼 기다려 달라”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12월 중순에 국회에 개정안을 제출해야 한다. 또 그에 앞서서는 법제처 심사나 차관회의, 국무회의 등을 거쳐야 한다. 사실상 조율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명칭 변경·금융지주 개편 시기·정부 지원 자금 등에서 큰 시각차

▲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6월8일 청와대에서 최근 국회와 국무회의를 통과한 농협법 개정 공포안에 대한 서명식을 갖고 있다. ⓒ연합뉴스

현재 양측이 부딪치고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 및 금융지주의 개편 시기나 지원 자금을 놓고도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리고 있다. 농림부와 농협은 농협 개편을 위한 정부의 자금 지원 필요성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를, 어떻게 지원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농협이 추산한 사업 구조 개편에 따른 필요 자본금은 23조4천억원. 분사 예정인 경제 부문과 신용 부문에 각각 7조1천억원과 15조2천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나머지 1조1천억원은 교육 지원 사업에 쓰이게 된다. 문제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한 자기자본은 13조8천억원 규모로 9조6천억원 정도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농협측은 비용 절감과 생산성 향상 등 자구 노력을 통해 3조6천억원을 조달하고, 부족한 6조원은 정부가 전액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토대로 오는 2012년에 금융지주를 독립하고, 경제 부문은 2015년 이후 분리한다는 복안이다.

농협 관계자는 “농협의 경제 사업은 그동안 소비자보다 농업인을 상대로 한 비영리 사업이 주를 이루었다. 금융지주와 달리 주식회사로 전환되게 되면 득보다 실이 많다. 이같은 상황에서 금융지주와 같이 분리될 경우 자칫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라고 토로했다. 자립을 위한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는 시각이다. 홍준근 전국농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도 “농림부의 입법 예고안은 신용 사업 완전 분리에 급급한 안이다. 경제 지주가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뒤에 분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농림부의 시각은 다르다. 농협이 사업 구조를 개편한다고 공짜로 5조~6조원을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또, 자금을 지원하더라도 중앙회가 아닌 금융지주를 통해 지원함으로써 회수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윤석원 중앙대 교수는 “금융지주를 먼저 분리하려는 농협 안은 ‘먹튀’ 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사업 분리는 시기가 지연되더라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농협은 앞으로 기존 공제 분야를 개편해 보험 자회사인 ‘농협보험’도 설립할 예정이다. 문제는 농림부가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농협 안 및 농림부 안에는 전속 보험 대리점 인정 및 방카슈랑스 10년 유예 등의 조항이 언급되어 있다.

보험업계는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생명보험사 사장단은 지난 11월17일 서울의 모처에서 조찬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주요 보험사 사장들은 농협법 개정안에 문제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이를 바탕으로 개정안의 철회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정부와 국회 등에 전달할 예정이다. 이에 앞선 12일에는 손해보험회사 사장단이 회동을 했다. 이날 회의에서도 농협법 문제가 화두에 올랐다. 그 자리에 참석했다는 한 보험업계 인사는 “농협에 방카슈랑스 규제 적용 배제 등 특혜를 주면서 보험업 진출을 허용하는 것은 보험 산업의 안정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농협보험에 대한 특례 적용은 한·미 FTA나 한·EU FTA에서 정하고 있는 금지 조항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개정안이 강행될 경우 무역 마찰 등 국가신인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농협 개혁이라는 기치 아래 반세기 만에 신·경 분리가 단행되는 농협중앙회. 하지만 개혁으로 가는 길에 만만치 않은 진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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