얽히고설킨 ‘파워 게임’ 마침내 곪 아 터졌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12.01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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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률 전 청장-안원구 전 국장 ‘2년 전쟁’ 풀스토리 / 국세청 내 주도권 다툼과 정권의 권력 갈등 엮여

▲ 한상률 전 국세청장(왼쪽),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오른쪽). ⓒ일러스트 장재훈


안으로 곪던 것이 마침내 터졌다. 정권의 권력 관리에 균열이 생겼다. 국세청 2급 고위 공무원이 권력 핵심부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것이 그 반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산적해 있는 각종 난제를 처리해야 하는 것과 함께 권력의 기본축을 다듬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직면했다. 한 번 금이 가면 메우기 위해서는 두 배, 세 배의 노력이 가는 반면, 균열이 확대되기는 쉽다. 이것이 권력의 생리이다.

폭로 정국의 핵인 안원구 전 서울지방국세청 세원관리국장은 키가 작은 편이고 치밀한 성격이다. 1999년부터 2005년까지 6년간 청와대에 근무했다. 이 때문에 권력의 생리와 정보에 밝다. 대구·경북 지역과 청와대에 근무하면서 다져진 인맥도 두텁다. 게다가 그는 국세청 요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대구지방국세청장을 지냈다.

그가 지금 정국을 흔들고 있다. 그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전형적인 권력형 게이트이다. 안씨는 자신이 이상득 의원을 만나 한 전 청장의 유임을 청탁했다는 내용 등을 민주당에 넘겼다. 안씨의 부인인 가인갤러리 대표 홍혜경씨는 “한상률 전 청장이 실세에게 건네야 한다며 안씨에게 3억원을 요구했다”라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호재를 만났다. 진상조사단을 꾸리는 등 대대적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다. 한나라당은 안씨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며 파장을 축소하기에 바쁘다.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 사건이 느닷없이 정국의 핫이슈로 급부상한 것은 지난 11월18일부터였다. 그는 이날 새벽 0시30분,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관들에게 체포되었다. 신분이 확실하고 도주할 우려도 거의 없고 급박한 사건이 아닌데도, 검찰이 한밤에 긴급 체포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정황으로 보면 안씨의 체포에는 정치적인 맥락이 있음이 다분하다. 안씨는 당시 한 시사 월간지와 인터뷰를 한 상태였다. 그는 평소 친분이 있던 기자에게 민주당이 공개한 녹취록에 나와 있는 것과 비슷한 내용을 폭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어떤 사정인지 인쇄된 월간지에서는 기사를 볼 수 없었다.

이후 안씨 주변에서는 ‘기자회견’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월간지 보도가 무산되자 안씨가 기자회견을 하거나 야당측과 접촉하려고 했던 것으로 안다. 기자회견을 막기 위해 검찰이 긴급하게 그를 잡아넣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검찰은 “필요가 있어서 긴급 체포했다”라고 해명했지만, 보도 무산-기자회견 움직임-안씨 긴급 체포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 않는다. 이 과정에 권력이나 국세청이 깊숙하게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시기나 형태 등으로 판단할 때 안씨의 체포 과정 자체에 미스터리가 있다. 국세청에서 안씨에 대한 ‘처리’를 담당했던 이현동 국세청 차장과 권재진 청와대 민정수석이 경북고 선후배로서 남다른 관계라는 것도 주목된다.

‘안원구 사건’이 터진 것은 최근이지만 물밑에서 잉태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이다. 2008년 초부터 한상률 전 국세청장과 안씨는 사활을 걸고 전쟁을 벌였다. 한 사람은 사실상 해외로 도피했고, 한 사람은 감옥에 있지만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두 사람이 벌인 싸움의 막후에는 국세청 내의 주도권 다툼과 정권의 권력 게임까지 얽혀 있는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가 있다. <시사저널>은 지난해 말부터 국세청 안팎에서 벌어진 이전투구 파워 게임을 취재해왔다. 이 과정에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경주 골프 사건’을 특종 보도했고, 이것은 한 전 청장의 낙마로 이어졌다.

한 전 청장, 막판에 협력자로 안원구 대신 이현동 선택

▲ 수뢰 혐의로 징역형을 살고 있는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청장 재임 시절 뇌물로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최욱경 화백의 그림 . ⓒ연합뉴스

안씨는 정치적인 맥락에서 볼 때 한마디로 김대중·노무현 정권 사람이다. 대구 영신고와 경북대를 졸업했다. 노무현 정권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교수가 그의 은사이다. 줄곧 대구 지역에서 근무한 그는 1999년 단숨에 청와대에 들어갔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있던 김중권씨가 당시 대구지방국세청장으로 있던 황 아무개씨에게 “좋은 인재를 추천해 달라”라고 했고, 황씨가 대구청 총무과장이던 안씨를 추천했다. 청와대에 있으면서 그는 초고속으로 승진했다. 행시 26회인데도 행시 21회 선배를 제치고 승진했을 정도였다. 6년간의 청와대 근무를 마친 뒤 2005년 국세청 요직 가운데 하나인 총무과장으로 복귀했다. 2006년 대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청 조사1국장과 국세청 국제조사국장을 거친 뒤 2007년 7월, 대구지방국세청장이 되었다.

정권 교체는 대구청장으로 있던 그가 계속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기회였다. 원래 대구·경북 지역에 발이 너른 데다 이른바 ‘실세’들과 남다른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안씨는 올여름 기자와 만났을 때 “내가 한상률 전 청장에게 박영준이라는 존재를 알려줬고, 소개도 해주었다”라고 말했었다.

이처럼 2008년 초까지만 해도 두 사람의 관계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기를 거치며 틀어지기 시작했다. 안씨는 당시 상황과 관련해 “원래 인수위에 내가 파견되기로 되어 있었다. 한 전 청장이 ‘나를 가까이서 도와 달라’라고 해 스스로 파견을 취하했는데 뒤통수를 맞았다. 내게 국세청 차장을 맡아달라고 했는데 나중에 보니 여럿한테 비슷한 이야기를 했더라. 언론플레이를 했는지 언론에 차장 후보로 내 이름이 오르면서 내부에서 ‘어린 사람이 차장을…’ 하는 소리가 나왔다. 내부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갔다. 당시 강하게 거부하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라고 털어놓았다.

인수위에는 안씨의 행시 선배이자 대구·경북 세력의 경쟁자였던 이현동 당시 서울청 조사3국장이 들어갔다. 이국장은 이후 조사국장-서울청장-국세청 차장이라는 초고속 승진 가도를 달리고 있다. 충남 출신으로 권력에 기반이 취약했던 한 전 청장은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해가는 한편, 자신을 도울 협력자로 ‘안원구 대신 이현동’을 대구·경북 세력의 차세대 주자로 선택한 셈이다.

▲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있는 개인갤러리(오른쪽)와 안원구 전 국장의 부인인 홍혜경 대표(왼쪽).< ⓒ연합뉴스(왼쪽), 시사저널 임영무(오른쪽)

“안 전 국장이 ‘MB와 도곡동 땅 내막 알고 있다고 했다”

이런 흐름과 함께 안씨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2008년 4월1일 인사에서 서울청 세원관리국장이 된 것이 시작이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방청장을 지낸 인사의 경우 본청 국장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안씨는 본격적으로 한 전 청장에 대해 ‘칼’을 갈기 시작했다. 2008년 5월 터진 ‘신성해운 세무조사 무마 로비 사건’이 불을 당겼다. 2004년 서울청 조사4국장으로 있던 한 전 청장이 신성해운측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었다. 청와대 검찰 등 권력 기관에 이와 관련한 투서가 쏟아졌다. 한상률 국세청장을 겨냥한 대공세였다. 그러나 한 전 청장은 건재를 과시했다.

안씨는 기자와 만났을 때 “2008년 11월 말에 한 전 청장이 나를 불러 ‘청와대의 뜻이니 나가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청와대에 나도 아는 이들이 있어 알아본 뒤 구명 로비를 해 간신히 살아났다. 2008년 말에 한 전 청장으로부터 전화가 와 ‘교육을 가야 한다. 해외와 국내가 있는데 선택을 하라’고 해서 국내를 선택했더니 해외로 가라고 했다. 준비도 안 되어 있었는데…”라고 주장했다. 이런 얘기들은 모두 이번 사건이 표면화되기 전인 올 초부터 중반까지 나눈 대화들이다. 당시에도 안씨는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만났다고 말한 바 있다.

2008년 말이 되면서는 이른바 ‘4대 권력 기관장’들의 유임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가정보원·검찰·국세청·경찰 등의 수장이 갈릴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한 전 청장은 거의 유임이 확정되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2009년 1월, 터진 두 사건으로 그는 일거에 낙마했다. 그림 로비 의혹과 경주 골프 사건이 그것이다. 이 두 사건 막후에는 안씨가 있다. ‘그림 로비 의혹’에는 안씨의 부인 홍 아무개씨가 등장한다. ‘경주 골프 사건’에는 대구·경북 지역 기업인들이 대거 등장한다. 당시 한 전 청장이 움직인 모든 동선이 정확하게 파악되어 언론과 청와대에 흘러들어갔다. 한 전 청장은 한때 권력 핵심부를 상대로 버티기도 했으나, 결국 1월16일 국세청장에서 물러났다.

한 전 청장의 낙마가 안씨에게 생존의 길을 열어준 것은 아니었다. 그 또한 미국 유학을 위한 대기발령을 받고 보직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한때 안씨는 ‘재기’를 희망적으로 보았다. 당시 허병익 차장이 국세청장을 대행하면서 조만간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허병익-이현동-한상률 협업 체제로 국세청 후속 인사가 이루어지고, 권력 핵심부와 국세청 내부의 여론이 안씨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게 돌아가면서 상황은 다시 반전되었다.

올 7월 국세청은 안씨 대신 다른 사람을 미국 유학 대상자로 발표했다. 안씨는 미국 유학도 가지 못하고 보직도 받지 못하는 이상한 상태가 되었다. 당시 국세청 관계자들은 안씨에게 “명예퇴직을 하라”라고 권하던 상태였고, 안씨는 “절대 사표를 내지 않겠다”라고 버티던 중이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7월 부임한 백용호 청장은 안씨 문제를 이현동 차장에게 맡겼다”라고 전했다. ‘사퇴’ ‘사퇴 불가’로 팽팽하게 맞서던 ‘안원구-이현동’ 싸움은 지난 11월18일 검찰이 안씨를 체포하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안씨를 잘 아는 정부 기관의 한 관계자는 “안씨는 평소 자신도 대선 공신이라고 말하곤 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진행된 포스코건설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은 MB’라는 보고를 받고 덮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도 안씨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안씨가 말만 한다고 보지 않는다. 일부라도 자료를 갖고 있을 것이다. 내게 그렇게 말했다”라고 강조했다.

안씨의 폭로는 후폭풍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잖아도 ‘스테이트월셔 골프장 사건’과 관련해 한나라당 공성진 최고위원 등의 이름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이상득 의원 등의 이름이 폭로된 이번 사건은 여권에게 대형 악재이다. 안씨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추가 자료 등을 공개할 가능성도 있다. 국세청 내에서는 ‘차기 국세청장’이라고 불리는 이현동 차장에게 시선이 쏠린다. 안씨 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하지 못해 정권 차원의 부담을 안긴 것이 향후 그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시사저널 유장훈
안씨가 공개한 녹취록에 들어 있는 내용 중에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국세청에 ‘MB 뒷조사 자료’를 요구했다”라는 부분이 있다. <시사저널>이 보도했던 내용인데 이번에 다시 확인된 셈이다. 정의원은 이와 관련해 “인수위 시절에 국세청이 과거 정권에서 어떻게 정치에 개입했는지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요구했던 것인데 국세청이 주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정의원이 권력의 핵심에서 밀려나는 상황과 연관이 깊다.

이 일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정의원이 대통령의 약점과 관련이 있는 자료를 확보하려고 한다”라고 보고되면서, 정의원은 대통령에게 불려갔다. 박영준 현 국무차장 등이 있는 자리에서 한 시간 동안 “왜 쓸데없는 자료를 확보하려고 하느냐”라며 혼쭐이 났다. “인수위에 자기 사람을 심으려고 한다”라는 얘기가 나온 것과 함께 이 일은 정의원의 권력 내 위상에 변화를 가져왔다. 핵심에서 빠르게 배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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