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통신 시장 흔드는 아이폰의 막강 막강 ‘파괴 기술’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09.12.15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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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출시 후 서비스 가입자 10만명 돌파…제품과 서비스 품질·가격 혁신으로 경쟁 양상 근원적으로 바꿔…국내 이통사·단말기 제조업체들 긴장

▲ 11월28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아이폰 런칭쇼’에서 고객들이 개통을 하기 위해 줄을 길게 서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아이폰은 파괴(disruptive) 기술이다. 파괴 기술은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제품이나 서비스 품질과 가격을 혁신해 시장의 경쟁 양상을 근원적으로 바꾸어버린다. 아이폰 신드롬은 현상이다. 지금까지 국내 이동통신 사용자가 지닌 잠재 수요는 통신 서비스업체와 단말기 제조업체 사이에 형성된 카르텔 탓에 억눌려 있었다. 아이폰은 지난 20년 동안 이동통신 시장에 견고하게 굳어진 통신 카르텔에 균열을 내고 있다.

아이폰이 지난 11월23일 예약 가입을 시작으로 출시되자 지금까지 아이폰 서비스 가입자가 1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 11월23일 예약 가입을 개시한 지 닷새 만에 6만5천명이 가입했다. 본격 출시와 함께 2주 동안 3만5천명이 가입했으니 하루평균 4천명가량이 가입한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폰 판매량은 경이적이다. KT는 아이폰 출시 이전에 블랙잭이나 미라지 같은 스마트폰 5종을 출시했다. 지금까지 단말기별 판매량은 2년 동안 2만〜3만대에 불과했다. 아이폰은 닷새 만에 이것의 다섯 배가 넘는 판매량을 기록한 것이다. 김우식 KT 개인고객부문 사장은 “애플 사의 MP3플레이어 아이팟 국내 사용자가 50만명가량이다. 아이폰도 그 정도는 쓸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출시 초기 20만명 안팎이 되리라는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치이다. KT 단말사업 관련 부서 관계자는 “이 정도까지 시장이 폭발적으로 반응할지는 예상치 못했다”라고 말했다.

아이폰은 사용자 편이성(User Interface)이 탁월하고 디자인이 팬시하다고 평가받는다. 전세계에서 아이폰은 3천5백만대 가량 팔렸다. 애플 제품이면 무조건 사고 보는 애플 마니아는 전세계 곳곳에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이유로 국내에서 일고 있는 아이폰 신드롬을 설명하기는 미흡하다. 데이터 이동통신에 대한 갈망을 곁들여야 아이폰 신드롬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무선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 갈증 해소

▲ 아이폰의 응용 프로그램인 핑거 피아노 게임은 터치스크린의 기능을 100% 활용한 게임으로 합주도 가능하다. ⓒ시사저널 이종현

국내에서 아이팟과 넷북 같은 휴대용 정보처리 기기가 보급되면서 무선인터넷 사용이 활발해졌다. 아이팟 사용자 50만명 가입과 넷북 열풍은 무선인터넷에 대한 갈망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게 해준다. 국내 이동통신 사업자들은 무선인터넷에 대한 소비자 갈증을 외면했다. 무선인터넷 통신 요금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해 10분 분량의 동영상을 하나 내려받으려면 3만~4만원이나 지불해야 했다. 월정액을 지불하고 무선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와이팟 무선랜은 아예 단말기에 장착하지 않았다. 소비자에게 무선인터넷 서비스는 그림의 떡이었다.

국내 무선 콘텐츠 개발업체들은 데이터나 응용 소프트웨어를, 통신사 업자를 거쳐야 서비스할 수 있다. 통신사업자는 소비자에게 정보 이용료와 소프트웨어 사용료를 징수해 60~70%는 챙기고, 나머지 30~40%만 개발업체에게 건넨다. 애플은 소프트웨어 수입 가운데 30%만 챙기고 나머지 70%는 콘텐츠 업체들에게 할애한다. 휴대전화에서 실행되는 갖가지 프로그램이나 멀티미디어 콘텐츠는 통신사업자가 철저하게 통제해 개발업체가 휴대전화 단말기용 콘텐츠를 개발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통신사업자마다 운영하고 있는 앱스토어에는 쓸 만한 프로그램이나 콘텐츠가 올라 있지 않다. 통신사업자가 자초한 일이다.

국내 이동통신 1위 사업자 SK텔레콤은 안정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와중에 시장 경쟁 구도를 바꾸는 변수가 달갑지 않다. 데이터 통신이 확산되면 SK텔레콤이 지닌 치명적인 약점이 노출될 위험도 커진다. 이동통신 사업이 주축인 SK텔레콤은 무선인터넷망이 KT에 비해 부족하다. SK브로드밴드 같은 관계 회사가 있지만, KT와 비교하면 망 보급률에서 열세인 것은 사실이다. KT는 지금까지 초고속통신망을 전국 곳곳에 깔아 무선인터넷망이 촘촘히 퍼져 있다. SK텔레콤이 무선인터넷 분야에서 KT와 ‘맞장’을 떠서 이길 승산이 크지 않다.

국내 단말기 제조업체들도 아이폰 상륙을 꺼려했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이 보유한 아이튠스와 앱스토어만큼 갖가지 콘텐츠를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이 없는 상황에서는 아이폰과 대항 할 수 없다. 하드웨어 성능만 높여서 해결될 사안은 아니다. 스마트폰 성능과 비교해서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옴니아가 아이폰을 압도한다. 하지만 옴니아에서 실행되는 응용 프로그램이나 콘텐츠는 양적·질적으로 앱스토어나 아이튠스와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국내 휴대전화 단말기 제조업체로서는 아이폰 신드롬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KT 관계자는 “KT가 아이폰을 들여온다고 알려지자 삼성전자는 KT에 공급할 모델에 대해 경쟁사인 SK텔레콤에 비해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까지 하며 아이폰 상륙을 막았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국회·정부·언론 가리지 않고 로비를 벌여 아이폰 수입을 저지했다는 소문이 통신업계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는 펄쩍 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단말기 제조업체가 통신사업자를 협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통신사업자에게 단말기를 팔아야 할 제조업체가 어떻게 특정 단말기를 사라 마라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KT 단말전략담당 임원은 “아이폰 수입에 대해 삼성전자가 불쾌감을 표시한 것은 사실이나 라인업(KT에 공급하는 단말기 모델)까지 바꾸겠다고 협박하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아이폰은 이와 같은 국내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을 지배하는 모든 질곡을 깨뜨린다. 아이폰은 월정액을 내면 무선인터넷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KT는 이번에 자사 무선인터넷 서비스인 네스팟을 무료화했다. 아이튠스에 접속해 음악과 동영상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앱스토어에서 게임, 일정 관리, 인터넷 전화(VoIP) 같은 응용 프로그램을 사고팔 수 있다. 기존 통신사 회선이 아니라 인터넷 전화를 사용하면 국제 전화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 국내 통신 단말기 제조업체 관계자는 “스마트폰에서 인터넷 전화 서비스 스카이프의 아이콘만 클릭하면 국제 전화를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 이미 개발되어 있다”라고 말했다.

아이폰 신드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은 이동통신사들이다. SK텔레콤은 내년에 스마트폰 15종을 출시할 계획이다. 1분기에만 7종을 출시한다. SK텔레콤이 아이폰 대항마로 내세울 카드는 모토로라 드로이드폰이다. 모토로라가 최근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탑재해 출시한 드로이드폰은 한 달 만에 80만대 이상 팔려나갔다. SK텔레콤 관계자는 “안드로이드, 윈 아이폰이 출격하면서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 불이 붙었다. 국내 이동통신 3사에서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내놓고 있는 삼성전자 옴니아2 형제들이 저마다 아이폰과의 경쟁에서 선두 주자라고 나서고 있고, 아레나폰의 실패로 쓴잔을 마신 LG전자도 다음 라인업을 준비하고 있다.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경쟁 구도를 펼치고 있는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의 RIM, 타이완의 HTC 등에 대한 관심도 커져가고 있다. 내년에 국내 스마트폰 시장 규모가 성장할 것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지금 당장 소비자 선택지에 놓인 것은 아이폰 도모바일 심비안, 바다처럼 갖가지 운영 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KT는 내년에 10종을 출시한다. KT는 쇼옴니아 를 비롯한 국내 제품뿐 아니라 노키아 스마트폰 수입을 확대할 계획이다.

국내 스마트폰 사용자는 전체 휴대전화 사용자의 5%에 불과하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스마트 가입 비율이 11%를 웃돈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가 2천5백만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스마트 폰 가입자는 2백50만명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아이폰 열풍은 내년 스마트폰 시장에 춘추 전국 시대를 몰고 올 것으로 전망된다. 김형욱 KT단말전략 담당 임원은 “내년 스마트폰 시장은 국산과 외산 사이에 격전이 벌어지면서 안드로이드, 윈도모바일, 맥OS 같은 운영 체제 간 싸움이 본격화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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