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비리 선거에 찌든 우리들의 일그러진 총학’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12.15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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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박은숙


법정 소송, 무단 감청, 대리 투표, 공약 베끼기, 후보 자격 박탈 논란…. 2009년 대학 총학생회 선거의 열쇳말이다. 이쯤 되면 기성 정치인 뺨치는 수준이다. 이제 선거 결과를 놓고, 당선인이 ‘운동권’ 후보인지 ‘비운동권’ 후보인지를 논하는 수준이 아니라, 과연 투표가 무탈하게 끝났는지 아닌지를 살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지금 전국 곳곳의 캠퍼스는 총학 선거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무난하게 마무리된 곳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이다. 부정으로 더럽혀지고 있는 캠퍼스의 선거 현장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얼마 전 최영찬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는 같은 학교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교수들에게 e메일을 보냈다. “요즘 참 참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라는 내용이었다. 최근 빚어진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의 파행도 최교수에게 참기 어려운 일 중 하나였다.

서울대는 이번 총학생회 선거 과정에서 유례 없는 몸살을 앓고 있다. 투표함 봉인이 훼손된 데다가, 무단 감청 사건까지 일어났기 때문이다. 11월26일 오후 1시. 선거본부장 모임에서는 녹음 파일 하나가 공개되었다. ‘Yes, We Can’ 선거본부(이하 선본)가 녹취한 녹음 파일 안에는 11월20일 금요일 밤 총학생회실 안의 대화가 담겨 있었다. 박진혁 선거관리위원장(현 총학생회장)을 포함한 세 명의 선거관리위원이 등장했다. 당시 총학생회실 안에는 투표가 끝난 뒤 봉인된 투표함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후 투표함은 봉인이 훼손된 채 발견되었고, 곧 부정 선거 의혹으로 이어졌다.

녹음 파일 안에는 “38 대 25 대 22…” “‘리본’애들은 완패다, 완패” 등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선거관리위원들(현 총학생회 집행부)이 투표함을 미리 열어보고 표 계산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었다. ‘리본’ 선본은 현재의 총학생회 계보를 잇고 있기에 의문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박진혁 위원장은 녹음 파일이 공개된 당일, 선거관리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이후에 열린 진상조사위원회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서울대 교내 언론사 기자들로 구성된 진상조사위원회 2차 결과 보고문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전(前) 선관위원회가 조사위의 편파성과 공정성을 문제 삼은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바임. 또한, 조사위의 조사 방향에 대해 일방적으로 불신임을 선언하고 청문회에 불참한 전 선관위측에 유감을 표명함.”

경남 진주에 위치한 경상대에서는 지금도 총학생회 부정 선거 논란이 한창이다. 선거 결과는 캠퍼스를 벗어나 법원의 손에 맡겨졌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는 당선 무효 소송을 법원에 제기했다.

경상대는 전통적으로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접전이 치열한 대학이다. 올해도 그랬다. 비운동권인 기호 1번 ‘2010 함께하는’ 선본과 운동권인 기호 2번 ‘천하무적’ 선본은 치열한 선거 운동을 진행했다. 사건은 11월20일에 벌어졌다. ‘천하무적’ 선본은 기자회견을 열어 “공대 5투표소에서 부정 투표가 발생했기 때문에 선거가 무효이다”라고 주장했다. 투표한 사람이 다른 옷을 갈아입고 재차 투표하는 사례를 적발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공대는 비운동권의 지지율이 높은 반면 투표율이 낮았는데, 유독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70%에 육박했다는 주장이 뒤따랐다.

경상대 중앙선관위는 진상조사위를 꾸리는 대신에 11월25일 ‘천하무적’ 선본 후보의 자격을 박탈했다. 부정 투표 의혹을 부당하게 제기했고 개표를 방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선거는 기호 1번 ‘2010 함께하는’ 후보를 놓고 찬반을 묻는 단일 후보 선거로 진행되었고, 1번 후보는 4천3백86표(53.5%)를 얻어 무난하게 당선되었다.

현직 총학생회장이 선거관리위원장 맡는 관행이 공정성 시비 불러

서울대와 경상대 이외에도 용인대,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부경대, 부산대, 동아대, 울산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선거 결과를 두고 시끄러운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가장 흔한 것은 공정성 시비가 벌어지는 경우이다. 이는 임기 중인 현직 총학생회장이 선거관리위원장이 되는 관행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차기 총학생회장에 출마한 후보 중 현재 총학생회장과 같은 노선일 경우, 상대 후보들은 선관위를 더욱 불신하게 되고 선거 자체도 혼탁해진다. 서울대의 파행도 여기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녹취 파일에서 언급된 ‘리본’ 선본의 총학생회장 후보는 실제 현 총학생회의 간부였다. 동아대는 한쪽 후보가 상대 쪽 후보의 성추행 의혹을 제기하자 선관위가 의혹을 제기한 후보의 자격을 박탈해 단일 후보 선거로 진행되기도 했다.

실제로 선거를 치른 학생들은 이처럼 독립적이지 못한 선관위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올해 고려대 총학생회장 당선인인 전지원씨는 “선관위와 선본 간에는 견제가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중앙운영위원회 등을 통해 개선을 논의해보겠지만 학생 사회의 규모가 작아서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강장묵 세종대 정보공학과 교수는 “정보가 넘치는 시대가 되면서 소문이 사실로 드러난다. 학생들이 선거를 치르면서 (기존 정치인들의 행태에서) 보고 배운 대로 (당선을 위해) 쉬운 선택을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가장 쉬운 선택은 선심성 공약을 남발하는 것이다. 일명 ‘뿌리기 전략’이다. 과거 선본원들이 골방에 모여 밤샘 토론을 하며 준비했던 공약의 추억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는 이제 USB 메모리 등이 메우고 있다. 경희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이전부터 USB 메모리, 프랭클린 플래너 등이 선거 공약으로 등장했다. 올해 경희대 당선인인 유승현씨(24)는 “이제까지 경희대에 선심성 공약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무엇을 주겠다는 것이 꼭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학우들을 수혜의 대상으로 본 것은 잘못이다”라고 설명했다.

‘공약의 가벼움’은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하지만 선거 이후에는 이내 금권 선거 논란에 휩쓸렸다. 선거 운동에 쓰인 돈의 출처를 두고 스폰서 의혹이 제기되거나 ‘당선 뒤 학생회비로 채우려는 것 아니냐’라는 의심도 뒤따랐다. 사회에서 벌어지는 선거라면 후보자는 금품 살포 혐의로 선거법 위반에 걸리고 받은 사람 역시 가격의 50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물어야 할지도 모를 사건들이 대학 내에서는 아무 제약도 없이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는 다른 학교의 공약을 베끼는 경우도 있다. 경남 지역 한 대학의 선본은 ‘학점 삭제 제도’를 제안하면서 ‘연세인’이라는 단어를 지우지 않아 연세대 공약을 베낀 것이 탄로나기도 했다. 지난해 동아대에서 한 선본은 MP3를 나누어주겠다는 공약을 내세웠고 당선되었는데, 이 공약은 1년 뒤인 올해 경상대에서 또 부활했다.

올해 봇물 터지듯 쏟아진 총학생회 선거 문제를 하나의 틀로 분석해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학내 자정 능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만은 명확하다. ‘총학생회=도둑놈’이라는 표현은 학생회 게시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댓글 중 하나이다.

학생들에게 총학생회장은 더 이상 숭고한 자리가 아니다. 국민이 정치인을 바라보는 시선과 비슷하다. 반면, 학생들은 손가락질만 할 뿐 바꾸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 선거에 대한 무관심이 그것이다. 개표에 필요한 투표율인 50%를 연장 투표 없이 넘기는 학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최영찬 교수는 “지난해 서울대 총학생회 간부가 위조 식권을 만들어 유통시켰다. 형벌을 받을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학생들 모두가 냉소적이다. 학생들이 법적인 문제나 절차상의 하자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일들을 오히려 과감히 배우고 있다. 오류나 범죄 앞에 냉소적인 사회의 시선과 무엇이 다른가”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최교수가 보낸 e메일에 대한 반응에서도 학내 교수들은 잠잠하다. 최교수는 “학생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생들의 문제가 교수들에게도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고려대 고대신문 최창순 기자는 “지금의 대학은 같이 고민하는 문화가 없다. 모두 개인화되어가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과거 공동체를 위해 고민하던 ‘총학생회장’이라는 직책 역시 개인을 만족시키는 감투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총학생회장’이라는 스펙을 위해서, 혹은 운영 예산이라는 경제 권력을 노리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부정 선거 논란 역시 쉽게 수그러들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총학생회가 구설에 오를수록 ‘총학생회 무용론’은 고개를 든다. 경주에 위치한 서라벌대학은 지난 3월 총학생회를 아예 폐지했다. 대신 학생 자치기구로 ‘학생연석회의’를 만들었다. 2007년 총학생회장이 이벤트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고, 2008년에는 총학생회장이 허위 영수증을 제출해 학생회비를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자정 능력이 떨어지는 대학 사회에서 잿밥을 노리고 덤벼드는 총학생회장 후보가 늘어나면서 총학의 안녕 역시 위협받고 있다.


“선물 줄까” “전자투표할까” “4학년 빼!” 각 대학 총학 선거 투표율 높이기 백태

대학 총학생회 선거에서 연장 투표는 기본 사양이다. 올해도 서울대, 서강대, 세종대, 중앙대, 성균관대 등 주요 대학들은 개표를 하기 위한 투표율을 채우지 못해 연장 투표에 들어갔다.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투표하고 가세요”라는 선거본부원들의 외침만으로는 한계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투표율 올리기’는 선거마다 최우선 고민거리이다. 투표율 달성을 위해 다양한 준비를 해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졸업을 앞두고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는 4학년들은 투표율을 떨어뜨리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심지어는 4학년생의 투표권을 박탈하자는 섬뜩한 이야기도 나왔다. 서울시립대에서는 4학년에게 투표권을 주어야 할지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대학의 선거철은 11~12월이지만 차기 당선인의 임기는 4학년이 졸업한 다음 해라는 이유에서였다. 논의 끝에 결정된 안은 4학년의 투표권을 이전처럼 인정하되 개표를 하기 위한 성사 투표율을 40%로 낮추는 방법이었다. 그리고 제도 시행 첫해인 올해 서울시립대는 47.24%의 투표율을 기록해 연장 투표 없이 당선인을 발표할 수 있었다.

전자 투표는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고려대학교는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모바일 투표를 실시했고, 숙명여대와 숭실대는 인터넷 투표를 병행했다. 대리 투표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투표율도 실제로 상승하는 등 실보다는 득이 많아 순조롭게 정착되고 있다.

전북대는 올해 77.63%라는 놀라운 투표율을 기록했다. 이유는 선물 공세였다. 전북대의 경우 투표 용지와 함께 2010년도 다이어리를 주었다. 보통은 새학기에 다이어리를 배포하지만 투표율을 높이는 일종의 고육지책으로 그 시기를 앞당겼다. 그러나 투표율을 높이는 데 가장 바람직한 것은 역시 학생들의 자발적인 참여 의식이다. 여기에 선거 양상이 초박빙의 접전으로 전개되면 금상첨화이다. 제주대의 투표일은 지난 11월17일 단 하루에 불과했고 하필이면 눈이 내려 날씨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75.1%라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고용희 ‘제주대학보사’ 기자(21)는 “경선으로 진행된 선거가 워낙 팽팽해 학생들의 열기가 뜨거웠다. 제주대는 전통적으로 학생들이 선거에 관심이 많아 별 다른 캠페인을 벌이지 않아도 투표율이 높다”라고 말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경희대 총학생회장 당선인 유승현씨

총학생회장이 가지는 장점은 무엇인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학우들을 맘껏 만날 자격이 보장되어 있는 점은 참 좋다.

내세운 공약이 궁금하다.

하나는 배움이고, 하나는 생활이다. 대학 내 교육에서 수동성을 벗어나 능동적인 배움을 하자는 측면에서 배움 학점제나 포인트 장학금 제도를 확대해나가려고 한다. 생활에서는 도서관 24시간 개방, 도서 대출 권수 늘리기 등이 중심이었다.

공약은 어떻게 만들었나?

선본이 직접 만들었다. 나를 포함한 선본원들이 학교 구석구석을 직접 돌아다니면서 필요한 것이 없는지 알아보았다. 그것을 모은 것이다.

선거에서 이긴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네 개 선본이 나와 우리가 49%의 득표율을 얻었다. 예상외로 많이 얻어 깜짝 놀랐다. 일단 공약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재미있고 신나게 선거 운동을 했던 것이 주요했던 것 같다. 지지 후보를 고르는 기준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아는 사람이거나 괜찮아 보이는 사람을 고르는 것 같은데 요즘은 공약이다. 학우들이 굉장히 똑똑하다. 온라인에서 정책과 후보자를 평가하고 토론한다.

어떤 총학을 만들고 싶나?

상식적인 총학이다. 미래를 전망하고 준비를 해서 학우들이 친근하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시사저널 임영무
중앙대 총학생회장 당선인 임지혜씨

중앙대 선거는 별 문제가 없었는가?

하루 연장 투표를 했을 뿐 별 잡음 없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안성캠퍼스에서는 한 선본의 후보자가 경고 3회로 자격이 박탈되면서 단독 선거로 당선인이 나왔다.

출마한 이유를 듣고 싶다.

나는 문과대 학생회장이었다. 지난 총학은 복지는 잘했지만, 사회 문제나 등록금 문제에는 소홀했다는 평가가 많다. 우리는 복지와 투쟁,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노력했다. 학내 구조조정, 통폐합, 단과대 이전 문제 등 학생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고 끝까지 관철시킬 사람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내가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의 구분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구분 자체가 많이 희석되었다고 하지만 운동권이든 비운동권이든 나름의 소신이 있다. 비운동권이 잘하는 분야가 있지만, 학내 굵직한 사안에서 학생들의 권익을 지켜내는 것은 운동권이 잘하는 것이다. 복지보다 권리 신장을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리 신장을 하면 복지는 자연적으로 따라온다.

학생회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

두산그룹이 인수한 뒤 학교가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취업 잘되는 학교’로 만들려고만 한다. 우리는 진실성과 진정성을 보여주며 복지와 투쟁을 병행할 것이다. 진보적 학생회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대한 노력해보고 안 되면 “끝까지 싸우겠다”라는 결심도 마다하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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