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당의 통합 제의, 취지는 좋지만 ‘과거 회귀형’이기에 수용 어렵다”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09.12.15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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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인터뷰 “개선·혁신 노력 앞세워 모든 진보 세력 아우르는 ‘신당 창당’으로 가야”

ⓒ시사저널 유장훈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일상뿐만 아니라 열띤 토론장에서도 항상 여유로운 표정을 잃지 않은 채 맛깔난 말솜씨를 발휘하곤 한다. 하지만 12월9일 오후 <시사저널> 인터뷰 자리에서의 노대표는 평소 때와 사뭇 달랐다. 다소 상기된 표정이 역력했다. 전날인 8일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을 향해 다시 통합을 제안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세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진보신당으로 쏠렸고, 이에 대한 입장을 요구하는 언론들의 인터뷰 요청이 노대표에게 쇄도했다.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11월29일)하고 ‘삼성 X파일’ 사건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12월4일)을 받으면서 뉴스메이커로 떠오른 그에게 ‘진보 진영 통합 문제’라는 또 하나의 과제가 주어진 셈이다.

민노당에서 진보 진영의 통합을 제안했다.

내가 2010년 지방선거에서 전면적인 선거 연합을 하자고 제안했더니 그에 대한 대답으로 통합하자는 말이 돌아왔다. ‘데이트하자’라고 했는데 ‘결혼하자’라고 한다. 이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민노당과의 통합은 과거 회귀형이다. 흘러간 물로 물레방아를 돌릴 수는 없다. 양당 통합 문제가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깨진 화분의 조각을 맞추듯이 복원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오히려 큰 화분을 새로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 진보 정당 사람들이 과거의 것 가운데 개선할 것은 개선하고 혁신할 것은 혁신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더 크고 강하게 새 집을 지어야 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진보 정당들이 선거 연합, 진보 대연합을 이루어내면 득표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 이후에도 진보 세력의 결속과 신뢰로 나아갈 수 있다. 통합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두를 문제가 아니다.

‘더 크고 강한 새 집’은 신당 창당을 의미하나?

그렇다. 거기에는 여러 진보 정치 세력들이 함께해야 한다. 과거의 민노당도 모든 진보 정치 세력이 모였다고 볼 수 없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유럽식으로 보수와 진보가 양대 축으로 서는 것이다. 

진보 정치 세력이라면 어디까지를 포함시키나?

크든 작든 민주노동당과 한국사회당 등이 있고 시민운동, 각계 전문가 계층도 있다. 민주당에도 진보적 색깔을 지닌 정치인들이 있다. (친노 진영의) 국민참여당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국민참여당이 민주당을 리모델링해서 들어가려고 하는지 아니면 진보 세력으로 갈 것인지 지켜보고 있다.

국민참여당과 접촉하고 있나?

만나지는 않았다. 그쪽은 아직 창당한 것도 아니고 지향점이 확실하지도 않기 때문에 앞으로 그것을 보고 판단할 것이다.

민노당은 창당 10주년인 내년 1월30일에 통합 로드맵을 발표한다는 계획까지 내놓았다.

‘누구를 중심으로 해서 통합하자’라고 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세력들이 함께 참여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우고 열어놓아야 한다. M&A(합병·매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갈 수는 없다.

지난해 2월 민노당과 헤어졌을 때와 현재의 상황이 달라졌나?

진보 세력 운동은 국민들로부터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한때 지지율이 20%였으나 2007년 대선에서는 3%로 떨어졌다. 그래서 혁신을 제안했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 18대 총선을 한 달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치적 이해를 따졌으면 나오지 않았다. 지금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이해를 내세워서 판단하지 않는다. 단순 통합을 해서는 안 된다. 진보를 재구성하는 당을 만드는 것이어야 의미가 있다. 진보신당도, 민노당도 반성해야 한다. 진보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이념을 설파하는 데 치우쳤고, 오해든 아니든 간에 민생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것으로 비쳤다. ‘운동권 정당’ ‘민주노총당’으로 비친 것이 사실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정당이라고 비치지 못했다면 우리가 활동하는 방식에 문제가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 통합 문제도 세력과 세력이 변화 없이 합쳐지는 식은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감정이 나빠져서 헤어지고 지금은 감정이 좋아져서 합치는 것밖에 안 된다.

진보 조직들이 통합하려면 최소한의 합의점이 있어야 한다고 보는데.

어디까지를 같이하느냐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다. 단일한 이념과 사상을 강조한다면 다 따로 해야 한다. 기본적인 철학과 방향이 같다면 다양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 공존도 고도의 정치이다. 기본적으로 강자 중심인 신자유주의 노선을 반대하고, 남북 평화를 중시하며, 공존의 논리로 다원주의가 보장되는 당 운영 방식을 채택하면 된다고 본다.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서울시장이 왜 노회찬이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면?

▲ 지난 8월9일 야권 4당 대표가 모여 쌍용차 사태와 관련해 경찰의 과잉 진압 등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 서울시장 자리는 더 높은 자리를 향해 가는 중간 자리 쯤으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까지 전시 행정에 너무 치우쳐 있었고, 시민들의 삶을 돌보는 데 소홀했다. 지금은 어느 때보다 삶의 질, 행복지수와 관련된 문제가 중요하다. 이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법을 가진 사람이 서울시장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도로나 하천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를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다 바꾸겠다. 보육·결혼·장례 문제 등은 공공 서비스를 확대해 저렴하게 만들겠다. 무선인터넷 사용률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가장 낮은데 인터넷 접속 기본권을 시 당국이 책임지고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 이 부분에 대해 준비를 많이 하고 있다. 

이번에 ‘삼성 X파일’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는데.

안기부 X 파일 사건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하나는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 제기한 사람을 오히려 기소하고 책임을 물으려 했다는 것이다. 내가 무죄 선고를 받고 끝날 일이 아니다. 판결문을 보면 ‘수사해야 할 사람을 불러서 수사하지 않았다’라고 나와 있다. 안기부 X파일의 진실은 무엇인지, 법적으로 책임이 있다면 그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 것인지가 숙제로 남아 있다. 특별검사를 임명하거나 테이프 공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과 관련해 (진보신당이) 단독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 관심 있는 의원들과 논의할 생각이다.


진보 진영 ‘통합 먼저’ 가능할까

민노당·진보신당 상호 불신 여전해…민주당·국민참여당은 별다른 반응 보이지 않아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야권의 대통합 움직임이 다시 꿈틀대는 것일까. 노무현·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이후 민주당 안팎에서는 한때 ‘범민주 대연합론’이 불거졌다. 민주당과 ‘친노(親盧)’ 그룹, 옛 동교동계 및 무소속 정동영 의원 세력 등이 한 지붕 아래 합쳐야 한다는 논리였다. 여기에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까지 ‘범민주’ ‘반MB’ 세력으로 한데 아우르자는 논리도 담고 있다. 이 문제는 세종시·4대강 문제 등 대형 이슈에 묻혀 최근 다소 소강 상태이지만,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를 수 있는 정치권의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와중에 진보 진영에서 먼저 ‘통합론’이 고개를 들었다.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12월8일 “진보 진영이 분열된 모습에서 벗어나 힘을 모으고 통합을 해나가야 할 때이다”라며 민노당 창당 10주년이 되는 내년 1월30일 통합 로드맵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핵심은 진보신당과의 통합 추진이다. 진보 진영에서는 “각 정당과 단체들이 대통합 원칙에는 합의하겠지만, 실제로 통합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당장 진보 세력의 양대 축인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입장 차이가 현격하기 때문이다. 

양측은 이미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보신당은 원칙적으로 민노당하고만 통합하는 것은 반대한다. 민주당 내의 진보 성향 의원들과 친노 진영까지 포함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노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그들을 통합 대상으로 설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라며 선을 그었다. 반MB 전선에서 연대할 수는 있으나 통합 파트너로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얘기이다.

‘통합 시기’와 관련해서도 미묘한 온도 차이가 감지된다. 민노당은 지방선거 이전 통합을 강하게 바라는 분위기이다. 우현욱 민노당 공보국장은 “지방선거 이전에 급물살을 타면 대통합이 실현되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최소한 ‘선거 이후에 통합하겠다’는 것을 전제로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는 “통합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두를 문제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통합을 논의하는 과정 역시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은 민노당-진보신당 통합을 촉구하다 지난 11월 초부터 정당뿐 아니라 단체들까지 대통합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꾸었다. 12월9일부터는 조합원 10만명을 목표로 ‘진보 정당 통합 촉구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엄미경 민주노총 조직국장은 “각 정당과 단체 내부 일부에서 통합에 회의적이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통합을 바라는 노동 현장의 목소리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2월까지는 대통합을 위한 추진 기구가 구성될 것으로 예상한다”라고 말했다.

진보 진영의 통합 논의를 바라보는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친노 정당)측은 별다른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통합’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국민참여당은 기존 정치 세력과의 차별화를 강조하고 있다. 진보 진영을 동등한 정치 파트너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인식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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