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주’ 마실까, ‘약주’ 마실까
  • 이은희 | 싸이컴 대표집필·과학저술가 ()
  • 승인 2009.12.2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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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 때문에 한 해 국가 총 예산의 10%에 해당하는 사회 비용 발생…연말연시 사건·사고 급증 원인이기도

▲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컴퓨터 자판에 쏟은 물이 컴퓨터 본체와의 정보 전달에 교란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위험을 일으킨다. ⓒ시사저널 사진 자료

송년회가 한창이다. 송년회에 술이 빠질 리 없으니 이는 곧 개인별 술 소비량이 연중 최고치에 달하고 있다는 의미도 된다. 지난 12월8일 발표된 국민건강영양조사 제4기 결과발표회(질병관리본부)의 보고에 따르면 국내 성인들의 음주 비율(월 1회 이상 음주)은 남성 74.6%, 여성 44.9%로 나타났다. 성인들이라면 거의 대부분 술을 즐긴다는 이야기이다.

조사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손실액은 연간 20조9백90억원에 달한다. 정부가 제시한 2010년 국가 총 예산안이 2백91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해마다 국가 예산의 10%에 이르는 막대한 비용이 음주로 인해 손실되는 것이다. 이렇듯 음주로 인한 폐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전히 술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교통사고 중 음주 운전 비율 줄었는데 연말에는 증가세

사람들이 술을 마시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취하기 위해서 술을 마신다고 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답이 될 것이다. ‘취한다’라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뇌가 알코올에 의해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현상이다. 체내로 흡수된 알코올이 간의 처리 용량을 넘어설 경우, 남아도는 알코올은 뇌까지 흘러들어가 신경세포에 영향을 미친다. 마치 컴퓨터 키보드에 물을 쏟은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자판 사이에 스며든 액체는 자판의 압력 감지 시스템과 컴퓨터 본체와의 정보 전달에 교란을 일으켜 입력한 것과는 다른 엉뚱한 문자가 입력되게 만든다. 우리의 뇌에서도 동일한 일이 발생한다. 즉, 술이 신경세포의 정보 전달을 교란시켜 의도와 다른 결과를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이처럼 술은 뇌의 정보 처리 능력에 영향을 미쳐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못하게 만든다. 이로 인한 폐해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분야가 바로 음주 운전이다. 술을 마시게 되면 평소에 비해 돌발 상황에 대한 반응 속도가 2배 이상 느려지므로 운전할 때 사고를 낼 확률이 높아진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음주 후 운전대를 잡는 이들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도로교통공단이 지난 2003년부터 2007년까지 5년간 교통사고 비율을 조사한 결과, 전체 음주 운전 비율은 연평균 2.3%씩 줄어들었으나, 12월24일부터 12월31일에는 오히려 5.5%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음주 운전은 곧 대형 인명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키운다. 알코올에 젖은 뇌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몸을 굼뜨게 만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연말 운수 사고의 사망률이 평소에 비해 30% 정도 높은 수치를 나타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방에서는 술을 ‘백약지장(百藥之長)이자 백독지원(百毒之原)’이라고 한다. 잘만 먹으면 유익할 수 있으나, 잘못 먹으면 모든 악의 근원이 된다는 뜻이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기는 유난히 술과 접할 기회가 많아지는 때이다. 이는 곧 술을 약으로 쓸지, 독으로 사용할지 잘 생각해보아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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