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의 땅에서 ‘대박’ 캐낸 ‘틈새 뚫기’의 달인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12.2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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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어 무료 방문 장착·여성 전용 바 체인·폐전자제품 재활용·기능성 양말 등으로 ‘쑥쑥’

ⓒ시사저널 임영무

타이어 무료 방문 장착 서비스를 선보인 김동수 타이어드림 대표(47)에게는 금융 위기로 인한 불황이 남 일같이 들린다. 그는 지난 2008년 11월, 타이어 쇼핑몰인 ‘타이어드림’(tiredream.com)을 열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인해 전세계 경제가 신음하고 있을 때였다. 자영업자뿐 아니라 대기업조차 긴축 경영을 통해 투자를 보류하거나 줄이던 시기였다. 하지만 김대표는 과감히 창업을 선택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이 회사는 창업 1년여 만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현재 시범적으로 운영 중인 분당 지점에서는 타이어가 매월 6백~7백개 팔린다. 김대표는 “시중에서 판매되는 대다수 상품은 유통업체가 가격을 좌지우지했다. 하지만 타이어는 예외였다. 한국타이어, 금호타이어, 넥센타이어 등 제조업체가 가격을 결정했다. 소규모 업체가 파고들면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해 쇼핑몰을 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김대표가 차별화 전략으로 삼은 것은 저렴한 가격과 무료 방문 장착 서비스였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지 않다 보니 가격이 저렴한 것은 당연하다. 일부 이벤트 품목의 경우 공장도 가격보다 20% 정도 싸다. 이곳은 고객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서비스를 받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바쁜 직장인이나 주부들에게 인기가 좋다. “기존 타이어 관련 쇼핑몰들은 자택이나 가까운 장착점으로 물품을 배송한다. 때문에 이중으로 비용이 들게 된다. 타이어드림의 경우 고객이 주문하면 10분 이내에 전화를 걸어 서비스를 받을 시간과 장소를 약속한다. 이같은 점이 바쁜 직장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게 된 것으로 보고 있다.”

▲ 출장 타이어 교체 전문 업체를 운영하는 김동수 대표가 타이어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

메르세데스 벤츠, BMW, 아우디 같은 고급차의 수요가 적지 않다는 점이 눈에 띈다. 김대표는 최근 외제차 동호회와 잇달아 제휴 계약을 체결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최근에는 국내 최대의 외제차 동호회와도 타이어 부문 제휴를 추진하고 있다. 동호회 운영자들은 엄격하게 실사를 한 뒤 타이어드림을 제휴 업체로 인정했다. 현재 계약만을 남겨두고 있다. “수입차 오너들은 검증된 직영점을 이용한다는 것이 일반인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기존 외제차 센터의 경우 타이어 가격 이외에 수십만 원의 공임비를 부과한다. 우리는 공임비가 전혀 없고, 원하는 장소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금융 위기 이후 외제차 오너들도 우리 쇼핑몰을 자주 찾는다.”

소비자의 마음 꿰뚫은 아이디어·전략 ‘주효’

“글로벌 금융 위기? 우리는 뉴스로만 소식을 접했다. 직원들은 아직도 바깥 경기가 좋은 줄로만 알고 있다.” 지난 12월15일 만난 주류 창업 컨설턴트인 허남관씨(40·예명 김동이)의 첫마디이다. 허씨는 지난 2007년 말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여성 전용 바를 개장했다. 국내 유흥 문화가 남성 위주이고, 여성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많지 않은 데서 착안한 아이디어였다.

허씨의 생각은 적중했다. 여성 전용 바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2년여 만에 전국적으로 20개 체인점이 개설되었다. 현재 서울에 아홉 곳, 경기도에 일곱 곳, 부산 등 광역시에 네 곳을 운영 중이다. 올해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여파로 영세 자영업자들이 문을 닫는 경우가 잇따랐다. 하지만 허씨는 지난해 10월 이후에만 신규 지점을 여덟 개나 열었다. 현재도 서울 잠실과 경기도 의정부, 대전 지점을 개점하려고 준비 중이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허씨는 기존 프랜차이즈와 차별화한 전략을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첫 번째 필승 전략이 이른바 ‘꽃미남 마케팅’이다. 각 지점에는 신장 1백80cm가 넘는 15명 안팎의 꽃미남이 상주하고 있다. 허씨가 직접 면접을 통해 선발한 정예 멤버이다. 이들 중에는 모델 선발 대회 입상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여성 손님들로 하여금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도록 유도한 것이었다. 허씨는 “남자들은 보고 만지는 즐거움을 선호한다. 하지만 여성들은 말하고 듣는 것을 더 좋아한다. 여성들을 위한 공간에서 꽃미남 종업원들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전략은 효과가 좋았다”라고 말했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많았다. 정기적으로 종업원들이 무대에 서서 마술이나 댄스 공연을 벌이기도 한다. 현재 회원으로 가입한 여성 손님만 4만여 명에 이르고 있다. 이 중에는 단골 손님인 VIP 회원도 수천여 명에 이른다. 

영업이 폐쇄적이거나 퇴폐적인 것은 아니다. 레드모델바가 시장에 안착하면서 유사 업체가 우후죽순으로 난립했다. 겉모습은 ‘여성 전용 바’를 표방했지만, 사실은 룸으로 운영되는 호스트바 성격이었다. 허씨는 이같은 폐단을 막기 위해 종업원뿐 아니라 프랜차이즈도 ‘중앙 집중식’으로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서 일하는 종업원 3백50명(지점 포함)은 모두 정직원이다. 회사는 이들을 대상으로 3개월마다 한 번씩 교육을 실시한다. 승진하려면 별도로 시험을 치러야 한다. 회사 규율을 어기면 퇴사시킨다. 밖에서 개인적으로 고객을 만날 경우에도 퇴사 대상이다.

프랜차이즈 관리도 철저하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프랜차이즈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하지만 허대표는 프랜차이즈 설립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여자나 40세 이상은 기본적으로 프랜차이즈 자격에서 제외된다. 지점 승인이 나도 독자적으로 경영할 수는 없다. 본사가 파견한 대리 경영자와 종업원들이 모든 일을 처리한다. 점장은 단순한 투자자에 불과하다.

이같은 노력 때문에 레드모델바는 여성들의 새로운 놀이 공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일종의 광장 개념이다. 최근 인터넷 사이트인 레드모델바(redmodelbar.com)를 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곳은 인터넷 순위 사이트인 랭키닷컴의 주류 체인 프랜차이즈 분야에서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다. 허대표 역시 여대 축제에 초청을 받아 여성의 주류 문화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아직 국내에는 생소한 개념이다. 향후 여성 전용 명소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다. 한 장소에서 모두 즐길 수 있는 여성만의 문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영두 애강리메텍 환경·자원사업부문 사장(56)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격탄을 맞았다. 이 회사는 휴대전화 단말기, PC, TV 등 폐전자제품을 수집해 부순 후 국내외 제련소에 판매하는 재활용 전문 업체이다. 휴대전화 단말기를 분해하면 금 0.034g, 은 0.2g이 나온다. 대당 가치는 2천5백원에 이른다. t으로 따지면 3천5백만원의 가치가 있다. 하수 또는 폐수 침전물(슬러지)에서도 은이나 동이 나온다. 이 귀금속의 가치는 상상을 초월한다. 양질의 귀금속 슬러지 1kg에서는 금 20~100g이 추출된다.

정사장은 이같은 재활용 시장에 일찍부터 관심을 기울였다. 지난 1980년대 말부터 폐가전제품 등에서 귀금속을 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캐냈다. 폐기물에서 노다지를 만드는 사업인 것이다. 지난해 매출은 7백10억원에 이른다. “통상적으로 귀금속은 지하자원에서만 얻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폐전자제품에서 고부가가치의 귀금속을 추출할 수 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도시 광산’이라고 부른다. 사업 초기만 해도 도시 광산이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돈이 된다’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시장이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고철을 제외한 비철금속 시장 규모는 현재 1조원대에 이른다. 5년여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회사에 비상이 걸렸다. 주요 원료 공급처인 전자업계가 생산을 줄인 것이다. 소비자들 역시 전자제품을 버리지 않았다. 원료가 되는 가전제품의 PCB(인쇄회로 기판)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그 탓에 이 회사도 경영에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당장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수지 타산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난 1998년 발생한 외환위기 때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인원을 줄이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못했다. 때문에 원료를 공급하는 구조를 다변화하는 정책을 도입했다. 국내뿐 아니라 중국, 필리핀, 태국 등 해외에서 수입해 원료를 조달했다. 매입 시점과 판매 시점의 가격 등락을 이용한 선물거래를 도입하는 조달 방식도 대폭 개선했다. 새로운 거래처도 확보했다. 과거에는 제품을 납품하는 곳이 제련소였지만, 요즘은 홍콩 등 해외 업체에게 직접 판매해 이윤을 높였다.”

▲ 컴퓨터나 휴대전화 단말기에서 나오는 PCB에 있는 구리·은·알루미늄 등을 재활용해 판매하는 사업을 하는 애강리메텍의 정영두 사장. ⓒ시사저널 임영무

덕분에 이 회사는 올해도 10% 안팎으로 매출이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11월30일에는 환경·자원 부문에서 5천만 달러 수출을 달성한 공로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정대표는 지난 20여 년간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다. “최근 원자재를 원활하게 수급하기 위해 중국과 필리핀에도 법인을 설립했다. 특히 중국의 경우 현재 시장 규모만 10조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동안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중국에 진출할 경우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끝없는 도전 정신으로 일구어낸 ‘양말의 재발견’

기능성 양말 판매 업체인 J7양말(jung7.co.kr) 정이래 사장(43)도 틈새 시장을 공략해 금융 위기를 극복한 경우이다. 지난 1980년대 말까지만 해도 그는 서세원·김정렬·이경규 등과 함께 방송가의 개그맨 섭외 1순위로 꼽혔다. 그러다 1990년대 초 개그맨 선배와 함께 속옷 사업을 시작했다. 한동안은 좋았다. BMW 승용차를 끌고 다닐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거래처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았다. 정사장 역시 받아놓은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쓴맛을 보아야 했다.

10여 년이 지난 2008년 10월 정사장은 양말 사업으로 재기에 성공했다. 이런 와중에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쳤다. 시간이나 공간의 차이는 있었지만, 10년 전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사업은 달랐다. 정사장이 운영하는 J7양말은 경기 침체에도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거제도의 대우조선이나 삼성중공업, KT, 한화리조트 등으로부터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정사장은 올해 2백% 이상 매출이 상승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환위기 당시 겪었던 학습 효과가 컸다. 당시에는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한 경향이 있었다. 이번에는 제품에 승부를 걸었다. 발 냄새로 고생하는 직업군을 찾아 직접 양말을 신어보게 했다. 양말을 신어보고 효과를 본 사람들이 재주문을 하면서 매출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정사장은 지난 12월17일 기자와 인터뷰하는 와중에도 거제도에 납품할 양말 1천 켤레를 포장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인터넷 쇼핑몰 쪽에서도 꾸준히 매출이 나고 있다. 사업 초창기만 해도 J7양말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대형 쇼핑몰에 입점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삼성몰(AK몰) 입점을 계기로 현재는 H몰, CJ몰, 우체국쇼핑 등 웬만한 인터넷 쇼핑몰에서 모두 정사장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외환은행에는 고객 사은품으로 골프용 양말을 지속적으로 납품하고 있다. 정사장은 “대기업 쇼핑몰 입점은 인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특히 브랜드가 없는 영세 제품의 경우 더욱 입점이 어렵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구전 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 고객들이 직접 양말을 신어보게 한 뒤, 효과를 전파하게 하는 것이다. 이같은 노력으로 인해 현재는 웬만한 인터넷 쇼핑몰은 물론이고 오프라인 매장에도 우리 제품이 입점해 있다”라고 말했다.

▲ 실패를 딛고 일어서 지금은 대기업 여러 곳에 납품하는 등 경기 침체에도 잘 팔리는 기능성 양말을 만들고 있는 정이래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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