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공장 한 번 공개된 적 없이 베일에 가린 ‘신종플루 백신’의 안전
  • 노진섭 (no@sisapress.com)
  • 승인 2009.12.22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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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십자측, “두 차례 걸쳐 양계장·부화장 실사” 주장…유재중 의원 “정식 GMP 실태 조사 아니었다”

▲ 전국 초·중·고등학교에 백신 접종이 시작된 11월11일 서울 신당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백신을 접종받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신종플루와 같은 바이러스성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백신이 필요하다. 백신은 인위적으로 약한 바이러스를 증식시켜 만든다. 바이러스를 증식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계란을 사용한다. 태아 상태의 병아리가 바이러스 증식에 좋은 환경이므로 유정란이 필요하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유정란은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에게 접종하는 백신인 만큼 오염되지 않은 유정란이 필요하다. 이것을 청정란(clean egg)이라고 한다.

신종플루 백신에 필요한 청정란은 양계장 세 곳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정란을 생산할 암탉은 전염병에 감염되지 않도록 온도와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특수 양계장에서 길러진다. 청정란은 포르말린으로 훈증 소독을 하는 과정을 거친 후 전라남도 화순과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부화장으로 운반된다.

부화장에 입고된 청정란은 재차 포르말린 훈증 소독을 하는 과정을 거친다. 부화 8~9일째 불빛에 계란을 비추어보는 캔들링 검사를 통해 건강한 청정란을 걸러낸다. 부화한 지 10일째가 된 청정란은 전남 화순에 있는 녹십자 백신 생산 공장으로 운송된다. 녹십자는 무작위 샘플링 검사 1회, 전수검사 7회 등 모두 8회 검사를 통해 백신용 청정란을 최종 선별한다. 이 청정란에 바이러스를 주입하고 3일 동안 증식시킨다. 이후 청정란에서 수확한 바이러스를 약하게 만들면(불활화 단계) 백신 원액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백신을 생산하는 이유는 백신이 오염될 가능성을 처음부터 봉쇄하기 위해서다. 문제는 이같은 일련의 백신 생산 과정이 국민 앞에 공개된 바 없다는 점이다. 특히 백신의 재료인 청정란을 취급하는 양계장과 부화장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어떤 과정과 방법으로 청정란이 취급되는지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이런 상황은 청정란이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야기시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권장하는 우수 의약품 제조 관리 기준(GMP)에 맞추어 청정란이 관리되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지난 8월부터 이들 시설을 공개할 것을 정부와 녹십자측에 요구해왔지만 안 된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이유는 ‘위생’ 때문이었다. 그동안 정부와 녹십자측은 줄곧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지난 9월부터 두 차례에 걸쳐 양계장과 부화장을 실사했다. 이를 통해 적합 판정을 받았다”라고 주장해왔다. 가이드라인을 통과한 청정란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유재중 의원은 녹십자의 백신 생산 공장 실태 보고서를 통해 “식약청장이 국정감사에서 9월에 실태 조사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개인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정식 GMP 실태 조사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실태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청정란 검사 항목, 선진국의 반도 안 돼…검사 방법도 불명확

유일한 백신 생산 업체인 녹십자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정부의 입장을 감안하면 보건 당국과 녹십자의 주장이 객관성을 갖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또, 실사 과정과 내용이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도 않았다. 정문현 인하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녹십자는 백신 생산을, 질병관리본부는 그 효능을 책임지고 있는 기관이다. 정부는 녹십자 외에 대안이 없다. 정부가 주관하는 회의에 가보면 두 기관은 홍보하기 좋은 정보만 공개하고 나쁜 자료는 내놓지 않는다. 전체 백신 생산 과정을 정부와 녹십자 외에 알고 있는 사람이 없어 아쉽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최준묵 녹십자 홍보팀장은 “양계장과 부화장을 공개하는 것은 불가하다. 관리하는 인원도 최소로 줄이면서 위생에 신경 쓰는 곳에 외부인들을 출입시킬 수 없다. 다만, 국제적으로 손색없는 설비와 관리를 유지하며 청정란을 취급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청정란 관리 실태는 <시사저널>이 입수한 검사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닭에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질병 11가지와 세균성 질병 13가지에 대한 검사 결과이다. 미국 등 선진국에 공급되는 청정란은 이들 24가지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녹십자에 납품되는 청정란은 여덟 가지 검사만 거쳤다. 검사 방법도 명확하지 않다. 이 검사표를 확인한 서울대병원의 바이러스 전문가는 “닭 세균성 질병 13가지 중에 녹십자는 다섯 가지만 검사한 청정란을 사용하는 것 같다. 그런데 여러 살모넬라균 중에서 A라는 살모넬라는 검사하고 B라는 살모넬라는 검사하지 않은 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떤 검사 방법을 적용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물론 조류에 발생하는 질병이므로 사람에게는 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선진국은 돈과 시간을 들여 모든 질병 유무를 검사한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부가 국민의 안전을 담보로 일방적인 정책을 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런 의혹과 문제 제기에 대해 이병건 녹십자 부사장은 지난 11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오염된 청정란에서는 바이러스가 증식하지 못한다”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의견은 조금 다르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병원의 한 교수는 “물론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오염 물질이라면 바이러스가 자랄 수 없다. 하지만 그 외의 일반적인 오염 물질에서 바이러스는 자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국민들은 지난 11월부터 백신을 맞았다. 백신 접종 외에 별다른 차선책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백신에 대한 불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 핵심에 부작용 문제가 있다. 모든 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신종플루 백신도 가벼운 이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이상 반응이 백신 부작용인지 아닌지를 확인조차 할 수 없다는 점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다. 부작용은 크게 두 가지 방법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하나는 임상시험 단계에서 의료진이 부작용을 확인하는 것과 접종 후 환자로부터 보고를 받는 것이다. 전자가 적극적인(active) 방법이고, 후자는 소극적인(passive) 방법이다. 소극적인 방법으로 파악한 이상 반응이 백신에 의한 부작용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는 점이 아쉬운 것이다.

이에 따라 백신 부작용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인천에 있는 한 대형 병원의 의사는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정부는 이상 반응을 백신 부작용으로 보지 않는다. 일반 독감 백신의 부작용과 비교해서 그것에 해당하지 않으면 아예 부작용으로 쳐주지 않는다. 예를 들면, 백신 부작용으로 결막염이 생길 수 있는데 정부는 이를 부작용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정해놓은 부작용에 해당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아니라는 논리에는 문제가 있다. 외국처럼 부작용을 점검하는 독립적인 전문 기관이 필요하다. 보건 당국이나 백신 생산 업체와 무관한 제3의 기관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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