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 시대의 보편성 그리려 했다”
  • 김진령·반도헌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09.12.29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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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박홍균 PD 인터뷰 / “특정 시대는 배경일 뿐…정치적 해석 나온 것에 부담 없었다”

▲ 박홍균 PD가 홍보용 포스터가 담긴 액자를 들고 웃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2009년에 시청자를 가장 많이 끌어 모은 드라마는 MBC <선덕여왕>이었다. 위작 논란이 있는 <화랑세기>라는 역사서에 등장한 미실이라는 인물은 우리나라 고대사에 대한 인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만한 폭발성을 가진 인물이다. 드라마는 제작진의 기대대로 지난해 5월25일부터 12월까지 안방극장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현실의 미실은 누구냐’라는 정치적인 논란까지 빚으며 화제를 끌어모았다. <선덕여왕>의 박홍균 PD(40)를 만나 <선덕여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한 박PD는 1996년 MBC에 입사했다.

어떻게 이 작품을 하게 되었나?

<뉴하트>를 2008년 2월에 끝내고, 2008년 4월 갑작스레 <선덕여왕> 팀에 합류했다. 준비하던 선배(이주한 국장)가 보임을 맡아 떠나는 바람에 맡게 되었다.

시청자들은 미실을 더 즐겼는데, 드라마 이름은 <선덕여왕>이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미실이 아니었다. 미실이 시청자들의 눈에 더 잘 띈 것은 캐릭터도 좋았고, 고현정씨가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미실 분량이 더 많았던 것은 아니다.

애초 기획 의도는 어떤 것이었나?

작가와 기획할 때는 정치 사극으로 사람을 얻어가는 리더십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미실이라는 캐릭터에 사람들이 더 열광했다.

드라마를 시작할 때 고현정씨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최대한 예쁘고, 최대한 쿨하게 보여주자는 것이었다. 대다수 여자 시청자는 악역을 욕하면서 본다. 하지만 미실은 ‘저이처럼 되고 싶다’라는 반응을 유도해보고자 했다. 또 한 가지는 미실이 이 시대에 보고 싶어 하는 여성상에 접근해 있었다.

여자가 나쁜 짓을 하는데 주눅 들거나 죄책감을 가질 이유가 없으면 요즘 시청자들은 반응한다. 토지 개혁과 관련해 미실이 ‘백성은 어리석은 놈이다’라며 성악설을 설파하는 장면이 있다. 미실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는 있지만, 시청자들은 그 장면이 요즘의 생존 경쟁의 틀과 비슷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착한 일만 하고 항상 정의가 승리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런 부분을 정확히 짚어내니까 대리 만족을 한 것 같다.

미실에 비해서 덕만의 캐릭터 파워가 약하지 않았나?

요즘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캐릭터는 선악이 공존하는 다면적인 캐릭터이다. 하지만 수십 회를 끌어가는 정극 주인공에게 그런 캐릭터를 부여할 수 없다. 시청자들이 혼란스러워 한다. 그런 점에서는 미실이 재미있는 캐릭터이다.

▲ 초반부 촬영 때 모습.

미실의 남편이 여러 명이라는 점을 놓고 유림에서 궐기하지 않을까 싶었다. 미실의 가족 관계가 파격적이다.

우리도 그런 부분을 걱정했다. 하지만 그런 면을 일부러 지우지도, 부각시키지도 않았다. 미실은 성을, 미실파의 일원을 컨트롤하는 수단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이들을 가족이라는 틀로 묶어냈다. 설원랑이나 세종, 미생에게 각각의 캐릭터와 역할이 있어서 마치 회사의 이사회 멤버처럼 보이게 했다. 다행히 시청자들도 이런 부분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주었다.

미실이 누구인가를 놓고 정치적인 논란도 있었는데.

우리가 그리려고 한 것은 특정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이 사는 시대의 보편성에 관한 것이다. 이 시대에도 맞고 다른 시대에도 맞는 그런 드라마가 잘 만든 드라마이다. 우리끼리는 후반부의 비담은 김재규, 알천은 차지철, 이런 식으로 농담하면서 찍었다. 그런 보편성을 확보해야 드라마는 반향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판에서 이런저런 해석이 나온 것도 부담스럽지만은 않았다. 

안방극장 드라마치고는 피가 튀고 목을 베는 등 수위 높은 장면이 많았다.

초반에 미실이 목을 베는 장면도 피가 튀었다. 그것을 안 보여주면 미실이라는 캐릭터의 무서움이 전달될 수 없기에 집어넣은 것이다. 시청자들이 사극을 보면서도 어느 정도 리얼리티를 느끼지 못하면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전쟁 장면이 과거 사극보다 스펙터클해졌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전적으로 김성실 무술감독의 덕이다. 이름 그대로 성실한 분이다.

캐릭터 중에서 제일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무엇인가?

제일 애정이 가는 것도, 제일 아쉬움이 큰 것도 덕만이다.

덕만의 캐릭터가 오락가락한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할 이야기가 많았는데 미실 죽음 이후 후반부가 급하게 진행되면서 이야기가 생략되었다. 그러면서 그런 비판이 커졌다.  시청자에게 죄송하다.

선덕여왕의 죽음에서 끝을 낸 이유는?

보통 대하 사극은 한 인물이 태어나서 정점을 이룰 때까지 다룬다. 선덕여왕의 인생 정점은 삼국통일의 시작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정점에서 끝낸 것이다.

<선덕여왕>도 형식상 외주 제작이었는데, 외주 제작 경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외주 제작이 대세라고 생각하지만 완전 외주 제작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고비용·고효율 장르이다. 방송사는 저비용·고효율을 추구할 것이다. 영화는 대박 나면 매표 수익이 끝없이 커지지만 드라마는 시청률이 대박 나도 광고 수입은 뻔하다. 회당 제작비가 10억원씩 들어가는 <아이리스> 같은 작품은 이제는 방송사에서 만들 수 없다. 그럼에도 드라마를 방송사가 직접 제작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있으니까, 아마 전체 아웃소싱은 되지 않고 부분 아웃소싱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 드라마 PD가 되었나?

어머니의 낙이 드라마 시청이었다. 아들이 만든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는 즐거움을 드리고 싶었다. 방송국에 들어온 뒤 드라마 PD나 다큐 PD가 되고 싶었지만 드라마를 택한 이유는, 드라마가 진정성이 큰 장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어떤 작품을 해왔나?

큰 작품을 한 것은 일일극 <얼마나 좋길래>, 수목드라마 <뉴하트>에 이어 <선덕여왕>이 세 번째이다. 아직 배워가는 단계이다. 젊으니까.

하고 싶은 작품은 어떤 것인가?

멜로를 제일 좋아하지만 아직 해보지 못했다. 멜로는 감정선이나 디테일을 구현하기가 어렵다. 지금은 다양한 장르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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