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 질주 원동력은 놀라운 발상과 시장 창출 능력”
  • 번역: 최미애 (일본어 통·번역 전문가) ()
  • 승인 2009.12.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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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이 분석한 ‘한국 기업 강함의 비결’ / 한국, 일본이 석권해 온 분야에서 잇달아 추월

 

▲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에 자리한 현대차 광고 전광판. ⓒ현대자동차

 


▒ 인재를 키워 세계 구석구석으로…LG, 5만6천명이 ‘뿌리’ 내리다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있는 최대 규모 쇼핑몰 ‘바순다라 시티’. 11월 초순, 쇼핑몰 내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벽면까지 한국 삼성전자의 휴대전화 광고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한국 대기업의 가전제품이 신흥국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 주변의 거리에서도 “한국 제품은 반드시 눈에 띈다”(일본 대형 전자기기회사 간부). 브라질 초박형 TV 시장에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톱을 다툰다.

일본세가 우세했던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LG전자가 액정 TV나 냉장고에서 시장 1위이다. 중국에서는 삼성전자의 휴대전화가, 톱인 핀란드의 노키아를 추격하고 있다.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가격 경쟁력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 제품은 디자인도 향상되어 브랜드 파워에서 일본 제품을 앞서는 시장도 많다.

 


 

 

▲ LG전자 세탁기 생산 라인. ⓒLG전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연결재무제표상 매출에서 해외 부문이 차지하는 비율은 85%(2008년)나 된다. 47%(2008년도)에 불과한 파나소닉보다 훨씬 높다. 한국은 인구 5천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출산율이 떨어지는 속도도 일본을 웃돈다. 국내에서 머물러서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감이 강하다. “중국에 (싼 코스트로) 추월당하고 일본은 (기술로) 앞서간다. 한국은 샌드위치이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해외에서도 선진국에서 일본세와 정면으로 격돌하기보다는 아직 손이 닿지 않은 변경부터 공략해 선진국으로 치고 올라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런 선제 전략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철저한 글로벌화를 밑받침해주는 것이 인재이다.

“잘 놀다 오도록.” 삼성전자 글로벌 DMC 무선사업부 신재영 과장(35)은 2006년 봄, 회사에서 이런 지시를 듣고 단신으로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부임했다.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이가 세계 각지에서 1년간 자유롭게 지내는 지역 전문가 제도이다. 그 지역에 뿌리를 내려서, 문화나 습관을 이해한다. 신씨도 스페인어를 습득해서 ‘친구와 안데스 산맥을 말을 타고 여행했다’. 카자흐스탄, 나이지리아, 칠레. 전세계의 거리마다 신씨와 같은 젊은 삼성맨이 있다. 1990년 이 제도를 시작한 이후로 그룹에서 3천8백명을 파견했다. 대부분은 주재원으로 다시 그 땅으로 보내진다.

LG전자는 현지가 원하는 상품 개발에 철저하다. 중동에서는 이슬람교의 성전 ‘코란’을 읽어주는 TV를 판매한다. ‘101’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인도인용으로 101종류의 레시피(조리법)를 도입한 전자렌지도 대히트했다. 제품 판매처는 해외 1백60개국이다. 해외 종업원은 5만5천8백명, 전 종업원의 66%에 이른다. 이에 비해 파나소닉은 55%에 불과하다.

“글로벌 전개력으로 큰 차이가 벌어졌다.” 파나소닉의 오오츠보 후미오 사장은 출발이 늦어졌음을 인정하고 신흥국을 중시하는 것으로 노선을 변경하기 시작했다. LG전자에서 백색가전을 총괄하는 이영하 디지털어플라이언스 사업본부장은 “파나소닉에는 우수한 환경 기술이 있기 때문에 시장으로의 침투도 빠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냉장고를 실제로 사용해보고 평판이 퍼지려면 10년 걸린다”라고 덧붙인다. 한국세를 추월하려면 시간 차이를 메우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국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그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앞서가던 일본 기업은 왜 제 몫을 빼앗겼는가. 강함의 비밀을 파헤쳐 본다.


▒ 싼 가격에 의존하던 것에서 탈피해 종합적으로 승부…현대자동차, 포드 제치고 5위

세계 자동차 판매 순위에서 역사적인 역전이 일어났다. 한국 현대자동차의 2009년 1~9월의 판매 대수(기아자동차 포함)는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한 3백41만대나 된다. 미국 포드 모터(3백37만대)를 제치고 5위로 부상했다.

 

▲ 현대차 울산공장 차체 자동 조립 라인. ⓒ현대자동차

 

미국 디트로이트 교외. 기아차 딜러업체 서밋플레이스의 제리 다우트 부사장은 “소형차 리오가 유례 없이 잘 팔린다”라고 말한다. 배기량 1천6백cc인 리오는 1만1천4백96달러(약 1백2만 엔). 그보다 작은 혼다 ‘피트’보다 20% 싸다. 미국 오토 데이터에 따르면, 11월 판매 대수는 피트가 전년 동월 대비 30% 가까이 줄고 리오는 64% 늘었다. 현대자동차는 2008년 말 실직하게 되어 차를 반납하면 그 후 지불을 면제하는 캠페인을 도입했다.

도요타자동차의 간부는 당시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고 불량 재고 과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얼굴을 찌푸렸으나, 지난해 1~11월의 미국 신차 시장에서 전년을 웃돌았던 것은 현대, 기아, 후지중공업 3사뿐이다.

 

 

현대자동차의 미국 판매 담당 데이빗 즈쵸브스키 부사장은 “석유 위기로 저연비 일본차가 미국에서 약진했다. 그와 같은 일이 리먼브러더스 쇼크 후, 한국차에게 일어나고 있다”라고 지적한다. 한국 원화 가치(달러 대비)는 2년 전보다 20% 낮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이나 기발한 판촉만이 약진의 원동력은 아니다. 미국의 시장 조사업체 JD 파워 앤드 어소시에이츠가 실시한 2009년 초기 품질 조사에서 현대자동차의 ‘엘란트라’가 소형차 부문에서 혼다 ‘시빅’ 등을 누르고 1위를 차지했다. 현대차 브랜드는 2008년 13위에서 4위로 떠올랐다.

 

일본이 경쟁 우위를 지켜온 소재 분야에서도 추월은 급격하다. 한국의 대형 철강회사 포스코의 철강재를 가져다가 품질을 조사해 온 일본의 철강 메이커 간부는 놀랐다. 자동차용에서는 특수한 전자강판 등 고급 철강재를 빼고 “90% 이상이 일본제에서 포스코제로 교체해도 문제 없는 수준에 도달했다”라고 한다. 포스코의 연구개발비는 연 3백억~4백억 엔으로, 연 4백50억 엔인 신일본제강에 육박한다.

DRAM, 프레시 메모리, 액정 패널처럼 전자업계에서는 기술 개발에서 일본 기업이 선행하고 있는 시장은 한국 기업에게 빼앗기는 패턴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한국 기업의 무기는 오로지 과감한 투자력이었지만 시장을 창출하는 힘도 길러왔다.

삼성전자가 3월에 발매한 LED(발광 다이오드) TV는 액정 화면을 비추는 광원을 형광관에서 LED로 교체했다. 화질과 전력 절감 성능이 향상되고 보통 액정 TV보다 약 50% 비싼 가격으로 팔렸다. LED TV는 실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3분기(7~9월) 연결재무제표상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9배인 4조2천3백억원(약 3천2백50억 엔)이다. 2010년에는 지난해 예측치의 네 배인 1천만대를 전세계에 판매할 계획이다.

실은 LED를 탑재하ㄴ TV는 소니가 2004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발매했다. 소니는 2008년 가을 새 모델을 투입했으나 액정 TV의 상위 기종으로 위치해 보급되지 않았다. 어느 일본 기업 간부는 “같은 액정 TV인데 LED TV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버리다니…”라며 삼성의 판매 방식에 혀를 내두른다.

싼 가격에만 의존하다가 품질과 마케팅을 겸비한 종합력으로 승부하는 한국 기업의 실력을 얕보다가는 일본 기업은 이익의 원천으로 삼아온 시장과 제품을 또다시 잃게 될 수밖에 없다.


▒ 리스크 감수하고 성장 추구…삼성, 연 매출 36조 엔 선언

 

▲ 미국 뉴욕 맨해튼 타임스퀘어 한가운데 자리한 삼성전자의 광고 전광판. ⓒ삼성전자

한국 남동부 울산시. 나즈막한 언덕에 오르면 조선업계 세계 1위인 현대중공업의 조선소가 광활하게 펼쳐진다. 2008년 현대중공업그룹의 건조량은 6백49만 CGT(표준 화물선 환산 톤수). 일본 상위 10개 사를 묶어도 못 당한다. 1990년에는 한국보다 3배나 많은 건조량을 기록했던 일본이지만, 2002년에 역전당한 이후 그 차는 점점 벌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발상에서 일본 기업들을 놀라게 했다. 활황으로 주문이 이어져 도크가 꽉 찬 상태라면 일본 기업은 주문을 거절하겠지만, 현대중공업은 연관성이 없는 해양 브랜드의 조립 장소를 활용해 도크도 선대도 없는 육상에서 배를 조립했다.

한국 기업의 키워드는 ‘하면 된다’이다. 멈추지 않고 뛰면서 답을 찾는다. ‘육상 공법’은 그 상징이다. 일본 기업이 잊어가는 벤처 정신과 상의하달식(톱다운)의 돌파력이 경영을 견인한다. 지난해 9월 삼성전자의 태양전지 시험 생산 공장에서는 ‘새로운 신화의 시작’이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삼성전자는 이건희 전 회장 때 반도체와 액정 패널로 불황기에 대형 투자를 감행해 시황 회복기에 한 번에 회수하는 모델을 확립했다. 신규 사업에서도 ‘승리의 방정식’ 재현을 노린다.

성장 추구는 멈추지 않는다. 삼성은 2020년 매출 목표를 4천억 달러(약 36조 엔)로 설정했다. 지난해 10월 발표한 목표는 2008년 연결재무제표상 매출의 3.6배나 된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춘>이 발표한 2009년 순위에서 40위인 삼성이지만, 단숨에 ‘세계 톱 10’을 노리고 있다.

한국 기업에게는 내수 시장에 라이벌이 적다는 강점이 있다. 1994년까지 자동차 산업에 대한 참여를 사실상 규제했다. 김대중 정권하에서는 반도체 산업 등에서 정부 주도의 빅딜(대형 개편)을 감행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국내 점유율은 80%에 육박하며 독점 시장에서 벌어들인 이익은 해외로 투자한다.

한편, 일본은 자동차 10사 이상, 용광로도 5사가 난립하고 있다. 국내 시장은 체력 소모의 무대이다. 한국 기업들은 금융 위기에서 회복하는 데서도 앞서고 있다. 삼성전자의 2009년 3분기(7~9월) 연결 영업이익은 일본의 대형 전기회사 아홉 개를 합친 것의 두 배 이상이다. 한국 재벌 회사에서는 2세에서 3세로 경영권 계승을 노리는 인사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자동차에서는 정몽구 회장의 장남 정의선씨(39)가 부회장으로 취임했고, 12월15일에는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장남 이재용씨(41)의 삼성전자 부사장 취임이 발표되었다. 경영권 계승에 얽힌 부정 자금 사건으로 2008년에 사임한 이 전 회장이지만, 오너 경영에 구심력을 추구하는 방침에 변화는 없다. 다만, 차기 톱이 감당해야 할 책임은 막중하다. 1987년에 이 전 회장이 톱에 취임했을 당시 그룹 각사의 단체 매상고 합계는 13조5천억원이다. 현재 연결재무제표상 매출은 2백14배 증가했다. 일본을 따라가는 캐치업 경영으로부터의 전환이라는 난제도 안고 있다. “지금까지는 선진 기업이라는 등대가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망망대해를 스스로 나아가야만 한다.” 이 전 회장도 위기감에 대해 말했다. 거대 기업에 적절한 경영 판단을 앞으로도 보여줄 수 있을까. 강점이었던 권한 독점은 리스크가 될 수도 있다.

 

 

번역: 최미애 (일본어 통·번역 전문가) / 감수: <시사저널> 취재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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