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찮은 연예인-조폭 ‘커넥션’
  • 정락인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09.12.29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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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바람 타고 연예기획사 중심으로 번성…배후 세력 비호까지 받으며 ‘악어와 억어새’ 관계 이어가

유명 연예인과 연예기획사 대표가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한밤에 치열한 난투극을 벌였다. 2009년 12월14일 새벽 서울 송파구 문정동 가든파이브 1층에서는 드라마 <아이리스>의 촬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때 방송인 강병규씨(36)가 촬영장에 나타나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이하 태원) 정태원 대표(44)와 심하게 다툰 후 난투극이 벌어졌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 연예인과 연예기획사 대표 사이에서 실제로 연출된 것이다. 양측은 “상대방이 조폭을 동원해 폭행을 가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강씨는 지난 12월21일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출두해 “조폭 10여 명으로부터 30분간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다”라며 붕대로 감은 팔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날 ‘폭행 사주 및 협박’ 등의 혐의로 정태원 대표를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태원도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제작사측이 조폭을 사주해 폭행하거나 협박했다는 강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현재 <아이리스> 제작진도 강씨를 폭행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양측의 말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누가 조폭을 동원하고 폭행을 했는지가 여전히 의문이다. 경찰은 현장에 설치된 CCTV를 확보하고 분석 작업에 들어갔다.

▲ 지난 12월21일 방송인 강병규씨가 촬영장에서 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했으며, 야구 방망이를 막느라 손을 다쳤다고 말하고 있다. ⓒ뉴시스

연예인과 연예기획사 그리고 조폭의 밀월 관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연예인과 폭력을 상징하는 조폭이 겉으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현실은 다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면서 이른바 ‘악어와 악어새’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기획사의 불평등 조약과 조폭의 폭력에 시달리며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연예인들도 있다. ‘연예인-연예기획사-조폭’의 ‘검은 커넥션’ 실상은 어느 정도일까.

지난 2009년 1월 스타급 PD 출신의 연예기획사 대표인 은 아무개씨가 검찰에 의해 불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은씨는 MBC에서 부장급 PD로 근무할 때 <일요일 일요일 밤에> <남자 셋 여자 셋> 등 인기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는 PD 시절부터 몇 차례 구설에 휘말렸다. 2002년에는 연예기획사 대표 등으로부터 연예인들의 방송 출연 대가로 수천만 원의 금품과 향응을 받았다가 구속된 적이 있었다.

이후 방송사를 나와 정상급 연예인들이 소속된 연예기획사의 대표를 맡았다. 이런 은씨가 조폭들과 검은 거래에도 나섰다. 폭력 조직의 두목이 운영하는 불법 카지노 바에 수억 원을 투자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현재 은씨는 ㅅ엔터테인먼트사의 대표를 맡으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스타 PD 출신의 연예기획사 대표와 조폭 두목과의 ‘검은 거래’는 연예계와 조폭의 밀월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밤의 황제’로 불리는 조폭들은 우리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이다. 음습한 곳에서 사회를 좀먹는다고 해서 흔히 ‘곰팡이’에 비교되기도 한다.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조폭들의 주요 사업은 나이트클럽, 룸살롱 등 주로 유흥업소를 운영하거나 관리하는 데에 집중되었다.

그러다가 점차 입지가 좁아지자 새로운 탈출구를 모색했다. 그중의 하나가 ‘연예기획 사업’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은 조폭들에게 구세주나 마찬가지였다. 연예인들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던 조폭들에게 이만큼 ‘궁합’이 잘 맞는 일은 없었다. 이때부터 조폭들의 연예 사업 진출이 러시를 이루었다. 

조폭들이 연예기획사에 진출하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이다. 우선 기획사를 직접 차리거나 기존 기획사에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으로 사업에 뛰어드는 것이다. 국내에는 현재 수백 개의 연예기획사가 있지만,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하다. 상위 몇 개 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구멍가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연예기획사의 세포 분열도 영세성을 부추기는 원인이다. 보통 매니저 일 몇 년을 하면 기획사를 차려 독립하는 것이 연예계의 일반적인 현상이다.

조폭들, 영세 기획사에 자금 대주면서 연예계 진출

▲ 2006년 권상우(오른쪽) 협박 사건으로 떠들썩하게 했던 서방파 두목 출신 김태촌(왼쪽). 사진은 사건이 있기 전의 두 사람. ⓒ뉴시스

지난해까지 연예인 ㅊ씨의 매니저였던 정 아무개씨는 최근 신인 가수와 배우 몇 명을 데리고 독립해서 기획사를 차렸다. 정씨는 소속 연예인 중 한 명만 히트시키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며 큰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는 “처음부터 큰 자본을 가지고 매니지먼트 일을 하는 곳은 별로 없다. 언제까지 매니저만 할 수 없어서 독립했는데, 여기저기서 펀딩을 좀 받고 한 사람이라도 히트하면 성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씨의 구상은 연예계의 현실상 ‘모험’에 가깝다.

기획사가 영세할수록 조폭 자금이 들어오기 쉽다. 당장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검은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연예계에서는 ‘매니저 2명 이상이 모이면 매니지먼트 회사를 차리고 여기에 조폭 자금이 합쳐지면 연예기획사 하나가 만들어진다’라는 속설이 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조사 결과가 있다. 형사정책연구원은 수년 전 조폭 출신 재소자 1백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응답자의 약 30%가 ‘수감될 당시 조직이 연예 사업을 운영 중이었다’라고 대답했다. 조폭들의 연예 사업 진출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결과이다.

조폭들은 연예기획사를 차린 후 바지 사장을 얼굴 마담으로 내세우거나 자신들이 직접 대표를 맡는다. 이들은 비교적 규모가 큰 연예기획사를 인수한 후에는 주식의 우회 상장, 이벤트 행사 등 각종 이권에 개입하면서 부당 이익을 챙기기도 한다. 기획사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유명 연예인을 끌어들이고, 매니저 일은 조직원들에게 시킨다. 연예기획사를 운영하면서 얻은 연예인의 사생활 정보는 ‘노예 계약’을 맺는 데 악용되고 있다.

지난 2006년 4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권상우씨의 ‘협박 사건’도 이런 배경에서 터져나왔다. 서방파 두목 출신 김태촌은 권씨의 사생활과 관련한 약점을 잡고 수차례 전화를 걸어 ‘일본 팬 미팅’을 요구하며 살벌한 협박을 했다. 권씨가 김씨의 협박 내용을 녹취하고 검찰에 신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하지만 권씨는 연예계의 불문율을 깨는 ‘위험한 선택’을 했다.

실제로 조폭들의 협박에 견딜 수 있는 연예인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조폭들의 협박에 순순히 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당시 양은이파 부두목의 아들 백 아무개씨가 권상우씨의 매니저 일을 해 오다 사생활과 관련한 약점을 잡고 협박한 것도 조폭들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백씨의 협박을 견디지 못한 권씨는 ‘매니지먼트 일을 백씨에게 위임하고 이를 어길 경우 10억원을 백씨에게 지급한다’라는 내용의 각서를 쓰기도 했다.

조폭들은 또 흥행이 예고되는 영화에 자금을 투자해 원금과 흥행 수익을 챙기기도 한다. 충무로에는 “어느 영화에 조폭 자금이 들어갔다”라는 조폭 자금 유입설이 심심찮게 떠돌고 있다. 그러나 자금 흐름이 쉽게 드러나는 영화에 대한 투자보다는, 가요계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정상급 연예인이 ‘후환’ 두려워 조폭과 엮이기도

지난 2002년 ‘연예인의 성상납 사건’ 당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이던 김규헌 서울고검 부장검사는 지난 4월 <시사저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당시 사건을 이렇게 술회했다. “조폭들이 기획사의 실제 오너이거나 바지 사장을 앉혔다. 전국구인 서방파나 오비파에서 떨어져나온 세력들이었다. 부두목급이거나 조직책을 맡는 등 상당한 위치에서 브레인 역할을 했던 자들이다. 연예인과 가깝게 지낼 수 있어서 나이트클럽이나 디너파티, 기획 행사 등에 관여했다. 메이저급 기획사들은 아니었다. 일부 신생 기획사 가운데 갑자기 떠오른 기획사가 관찰 대상이었다”라고 말했다.

밤무대에 대한 조폭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무리 정상급 연예인이라고 해도 나이가 들고 인기가 시들해지면 밤무대로 퇴장하는 것이 연예계의 생리이다. 때문에 ‘인기’ 하나만을 믿고 섣부르게 행동하다가는 후환을 두려워해야 한다. 밤무대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조폭들이기 때문이다.

조폭들에게 밉보이면 밤무대에 설 수 없고, 결국 수입이 없어 배를 곯아야 한다. 한마디로 말로가 비참해진다. 연예인들에게 밤무대는 최고의 부업이자 미래를 보장받는 생업인 것이다. 때문에 연예인들은 싫든 좋든 조폭들과 엮일 수밖에 없다. 조폭들과 ‘호형호제’ 하고 ‘오빠 동생’ 하는 연예인이 많은 것도 이런 밑바닥의 생리를 반영한 것이다.

나이트클럽 등 신생 유흥업소들은 해당 지역을 관리하는 조폭들의 관리 대상 1호이다. 조폭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더라도 지역 조폭과 연계하지 않고는 문을 열기도 전에 영업을 포기해야만 한다. 때문에 신생 업소들은 관할 관청에 신고하기에 앞서 관할 폭력 단체에 우선 신고하는 촌극이 벌어지는 것이다. 폭력 단체는 신생 유흥업소에 파견 형식으로 조직원을 들여놓고 관리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하고 있다.

업소와의 계약은 소속된 기획사가 맡는다. 연예인의 90%는 연예기획사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소속사와 업소가 출연료를 결정한다. 연예기획사에 따라 연예인들에게 돌아가는 출연료가 천차만별이다. 보통 출연료의 50%는 소속사가 가져가지만 60% 이상을 챙겨가는 곳도 있다. 계약은 일정 기간 동안 출연이 보장되는 전속 계약을 맺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출연료의 일정 정도는 해당 업소를 관할하는 조폭들에게 떼어주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다.

예를 들어 한 연예인이 대전 지역의 한 나이트클럽에 출연하면 출연료 중 최소 10%가 관할 조폭들의 몫이다. 연예인과 연예기획사가 조폭들과 어떤 관계이냐에 따라 밤무대 출연 횟수가 달라지고 수입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출연료는 대부분 ‘현금 지급’이 원칙이다. 연예인들의 ‘소득 탈루’도 여기서 발생한다. 일부 유명 연예인의 경우 야간 업소 매니저를 따로 두는 경우도 있다. 조폭이 직접 밤무대 매니저로 나서기도 한다.

서울 강남 지역의 한 강력계 형사는 “요즘 조폭들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옛날처럼 주먹이 앞서는 시대는 지났다. 만약 누가 유흥업소에서 연장을 사용해서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면 곧바로 우리 정보망에 걸린다. 자기들도 연장을 들면 교도소로 간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폭력 사용은 극히 자제한다. ‘연예인 누구와 조폭들이 가깝다’ ‘누가 뒤를 돌봐준다’ ‘어느 업소는 연예인 누가 주인이다’라는 말은 우리도 숱하게 듣고 있다. 실제로도 그렇다”라고 말했다. 

연예인들 사이에서는 조폭과의 관계가 ‘필요악’이라고 말한다. 독버섯인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먹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밀월 관계’를 핑크빛으로만 보지 말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전직 가수 출신인 ㄱ씨는 “연예인들은 기획사와 조폭 사이에 끼어 있는 샌드위치이다. 이들 사이에서 아무런 힘이 없다. 기획사의 살인적인 노예 계약에 시달리고 조폭들에게 착취당하고 있다. 그렇다고 독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일부 연예인들이 조폭들과 어울리며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이것이 전반적인 연예계의 모습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현행 우리 연예계의 구조상 연예인과 기획사 그리고 조폭과의 관계는 먹이사슬처럼 형성되어 있다. 이 구조가 쉽게 바뀔 수도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고 연예계를 조폭들의 세상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해마다 터져나오는 ‘연예인의 성상납 사건’을 보면 그 뒤에는 필연적으로 기획사와 조폭들이 연관되어 있다. 그런데도 사건이 유야무야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조폭들을 비호하는 배후 세력이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제2의 장자연’ ‘제3의 촬영장 폭력 사건’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세상 들썩인, 뿌리 깊은 ‘밀월 관계’

흔히 연예인들을 ‘팔색조’라고 부른다. 그만큼 변화무쌍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자기 모습을 바꾸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연예인의 본 모습은 늘 베일에 가려 있다. 때때로 일부 연예인이 조폭 흉내를 내다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아예 조폭들과 연계해 범죄에 가담하는 일도 있다.a 물론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조폭과 연예인의 검은 커넥션’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지난 2004년 10월 국내 최대 폭력조직인 서방파 행동대장 나 아무개씨가 세금 포탈 혐의로 구속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당시 최고 인기를 구가하던 최 아무개씨, 이 아무개씨 등 정상급 스타 12명이 담당 재판부에 나씨의 선처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들은 나씨가 ‘예술을 이해할 줄 아는 고마운 분’이라며 선처를 요청했다. 이때 이들의 실명이 알려지면서 누구 누구가 폭력 조직 ○○파와 친분이 있다는 것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2006년 4월 ‘조폭과 연예인들의 고리 사채업 사건’이 터지면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폭력 조직 ‘신촌 이대식구파’가 서울 명동 일대에 무허가 사채업소를 차리고, 유흥업소에서 갈취한 돈으로 연예인들에게 고리대금업을 하다 적발되었다. 연예인들과 조폭을 연결해준 인물이 바로 탤런트 ㅇ씨와 개그맨 ㅎ씨, 가수 ㄱ씨 등이었다. 제때 돈을 갚지 못하는 동료 연예인에게는 조폭들과 공동으로 운영하는 유흥업소에서 성매매까지 알선했다.

이밖에 조폭과 연예기획사가 짜고 정치인들의 홍보를 위해 연예인을 이용하는 등 조폭과 연예인 그리고 연예기획사 간의 커넥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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