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마·카지노·룸살롱으로 회장님 ‘숨겨진 돈’ 샜다
  • 안성모 (asm@sisapress.com)
  • 승인 2009.12.29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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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청부’ 사건 수사 과정에서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차명 재산’ 드러나

ⓒ시사저널 임영무

재벌 그룹 회장의 ‘감춰진 돈’에 대한 소문은 늘 있었다.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개인 재산이 비밀리에 관리되고 있다는 이야기는 공공연한 비밀로 여겨진다. CJ그룹 이재현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범삼성가의 장손인 이회장의 ‘숨겨진 재산’ 규모가 어느 정도이며, 이 돈이 어떻게 운용되는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단서는 엉뚱한 곳에서 불거졌다. 2008년 9월 이 회사 재무2팀장을 지낸 이 아무개씨가 살인 청부 혐의로 경찰의 내사를 받으면서 그가 관리했던 이회장의 개인 재산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이후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돈의 규모와 일부 부적절한 운용 행태까지 속속 드러났다.

당초 자금 규모는 수백억 원 정도일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의 후임으로 이회장의 재산을 관리해 온 성 아무개씨는 2008년 9월께 운용할 수 있었던 자금 규모가 금융 상품 2백40억원, 주식 2백34억원, 펀드 63억원 등 합계 5백37억원 정도라고 밝혔고, 1심 재판부는 이러한 성씨의 진술 내용을 토대로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2009년 12월18일 항소심 판결을 내린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근거는 두 가지이다. 당사자인 이씨가 법정에서 자신이 관리하던 자금의 규모가 수천억 원에 이른다고 밝혔고, 차명 재산이 드러난 이후 이와 관련해 납부한 세금만 1천7백억원 정도라는 점이다. 물론 이것은 이씨의 주장이기 때문에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운용 자금 규모에 따라 배임 혐의에 대한 유·무죄 판결이 달라질 수 있고, 이씨 입장에서는 규모가 클수록 무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반면, 이씨의 진술대로 세금을 1천7백억원 넘게 납부했다면, 전체 자금 규모는 적게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에 이를 수 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4조5천억원의 차명 재산에 대해 납부한 양도소득세가 1천8백30억원이었다. 단순 비교만 한다면 이회장의 차명 재산도 비슷한 규모일 수 있는 셈이다. 물론 세금 항목과 기간이 다를 수 있어 단정 짓기는 어렵다.

CJ측은 정확한 자금 규모가 확인되지 않지만 수조 원과는 거리가 멀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자금을 실명으로 전환하면서 관련 세금을 모두 납부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CJ그룹의 한 관계자는 “삼성 특검 당시 차명 부분이 문제가 되어서 우리도 실명 전환을 준비해왔다. 이 과정에서 관련된 모든 세금을 자진해서 납부했고, 현재 정리가 다 된 상태이다”라고 밝혔다.

이씨는 2005년 4월부터 2년간 차명 주식이나 채권, 예금, 현금 등 이회장의 개인 재산을 관리하고 이를 투자해 운용하는 이른바 ‘관재 업무’를 맡았다. 퇴직한 임직원이나 횡령 사고의 가능성이 있는 계좌의 명의자는 정리하고 대신 신규 명의자를 등재했으며, 잔고 거래 내역이 명의 대여자에게 통지되지 않도록 거래 지점을 관리하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관리된 이회장의 ‘비밀 돈’은 어디에 쓰였을까. 이씨는 항소심 재판에서 “대부분 차명 주식이던 이회장의 재산을 주로 무기명 채권으로 현금화했다. 1천2백억여 원을 미술품을 사는 데 사용했고, 사채업자에게 빌려주거나 카지노에 투자하기도 했다”라고 진술했다. 기업 활동보다는 고수익이 예상되는 사채 등에 사용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사건에서 살해 대상으로 지목된 박 아무개씨에게 대여한 1백70억원의 경우 상당 금액이 도박과 유흥 등 불법 소지가 많은 사업에 쓰였다. 처음에는 재개발 분양 사업 등에 돈이 필요하다는 박씨에게 두 차례에 걸쳐 각각 20억원과 50억원을 차명 계좌로 송금했다. 그 다음 달에는 일명 ‘마떼기’로 불리는 사설 경마를 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50억원을 빌려주었다. 영어마을 사업에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10억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룸살롱을 인수해 운영하면 많은 수익이 남는다면서 투자할 돈이 필요하다는 박씨에게 40억원을 대여해주었다.

이회장이 알았는지 몰랐는지 확인 안 돼

이처럼 한 번에 수십억 원씩을 거리낌 없이 빌려준 대가는 월 2~3%에 이르는 고리의 이자 수익이었다. 이씨는 다달이 현금으로 이자를 받아 약 15억원을 이회장의 개인 재산에 편입시켜 관리했다. 무기명 채권과 차명 증권계좌의 주식을 매도해 마련한 재벌 회장의 개인 자금이 단지 높은 수익을 올릴 목적으로 무분별하게 운용된 셈이다.

인천 강화군 석모도의 온천 사업을 추진하면서는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시중 은행들로부터 총 1백50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대출받았다. 이회장과 자녀들이 개인 재산 1백90억원을 자본금으로 설립한 씨앤아이레저산업㈜ 명의로 국민은행에서 100억원, 우리은행에서 50억원을 각각 빌리면서 이 사업과는 무관한 굴업도 관광단지 조성 자금 용도로 신청한 것이다. 이회장의 명의로 된 연대보증 서류까지 작성해 제출하기도 했다.

그런데 개인 재산이 이렇게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이회장은 몰랐을까. 이씨는 항소심 법정에서, 자신의 사무실에서 회장 집무실로 통하는 전용 계단을 이용해 차명 재산의 관리 상황을 이회장에게 직접 보고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박씨와 관련한 사업의 경우 이회장에게 보고되었는지 여부는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이에 대해 CJ그룹 관계자는 “이씨가 보고를 하지 않은 채 독단적으로 투자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뭉칫돈’, 어디에서 나왔나

이재현 회장이 차명으로 관리했던 ‘거액의 뭉칫돈’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CJ측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이병철 전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선대의 유산이라는 이야기이다. 이재현 회장의 아버지 이맹희씨는 이병철 전 회장의 장자이다. 삼성그룹을 3남인 이건희 전 회장이 물려받으면서, 반대 급부로 상당한 유산을 상속받았을 것이라는 추측이 적지 않았다.

당시 유산은 삼성화재 주식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주식을 처분해 개인 자금을 마련했고, 임직원 명의의 차명 계좌를 통해 관리해 온 것이다. 이는 이건희 전 회장의 차명 재산이 만들어진 경위와 비슷하다. 과거 재벌가의 유산 상속이 대부분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차명 재산은 원죄와도 같다’라고 항변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세금 포탈 가능성이 큰 만큼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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