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실 문 앞에서 주저앉은 강정원 ‘보이지 않는 손’에 덜미 잡혔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10.01.0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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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관치 금융’ 논란 거세…“금감원 조사 내용에 부담 느낀 것 아니냐” 해석도

 

ⓒ연합뉴스·시사저널 이종현

 


강정원 국민은행장 및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가 금융 당국에 ‘항복 선언’을 했다. 강행장은 지난해 12월31일 오후 3시, 서울 명동 사옥에서 가진 긴급 이사회 간담회에서 “회장직을 사퇴한다”라고 밝혔다. 금감원이 강행장과 국민은행을 상대로 강도 높은 조사에 나선 지 불과 보름 만에 사퇴 입장을 밝힌 것이다. 강행장은 지난해 12월 초 이사회를 통해 차기 회장으로 내정되었다. 오는 1월 중순 임시 주주총회를 통해 회장에 취임할 예정이었다. 때문에 국민은행 직원들은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강회장이 취임을 코앞에 두고 돌연 사퇴를 선언하면서 그 배경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강정원 행장은 “은행과 고객을 위해 회장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강행장이 금융 당국에 백기 투항을 한 것이 아니냐”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감원은 지난해 12월16일부터 1주일 동안 KB금융을 상대로 조사를 벌였다. 오는 1월 중순으로 예정된 종합검사를 위한 예비 조사 성격이었다. 이 경우 보통 조사 기간은 3~4일이다. 조사에 투입되는 인원도 네 명 안팎 정도였다. 하지만 KB금융에 동원된 조사 인원은 평소의 세 배가 넘는다. 국민은행 담당 조사관뿐 아니라 신한 및 하나은행 담당 팀장까지 동원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부담을 느낀 강행장이 사퇴를 선택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금감원 조사가 지나쳤다”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금감원은 이번 사전 조사에서 해외사업부장 등 주요 부서장 10여 명의 컴퓨터 본체를 봉인해서 가져갔다. 다음 날 당사자들을 불러 봉인을 떼고 내용을 확인했다. 이사회 녹취록도 모두 수거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사 내용 일부를 언론에 흘렸다. 일부 사외이사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외이사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이미 지난해 2월 금감원이 한 차례 조사를 벌인 바 있다. 당시 금감원은 뚜렷한 혐의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업계 안팎에서는 “KB금융을 상대로 금감원이 표적 조사를 벌이는 것이 아니냐”라는 의혹이 일반화되었다. 이른바 ‘신 관치 금융’의 부활론이다.

국민은행 내부에는 “올 것이 왔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특히 강행장의 사퇴로 경영 공백이 장기화될 것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이미 이 은행은 연말에 진행하던 본부장급 인사를 무기한 연기한 상태이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연말에 본부장 및 부행장 인사가 있고, 1월 초에는 지점정 승진 인사를 한다. 금감원 감사가 진행되면서 이같은 인사가 연기되었다. 강행장까지 물러날 경우 이같은 인사는 물 건너간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라고 토로했다.

금감원측은 이번에도 “일상적인 조사였을 뿐이다”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지난 4월에 16개 은행을 상대로 조사할 때도 비슷한 강도였다. 관련 규정에 어긋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지난 9월 문제가 된 8백5명의 은행원들을 이례적으로 강하게 제재했다. 정용근 전 농협중앙회 신용부문 대표와 신상훈 신한지주 사장에 대해서도 각각 문책 경고와 주의적 경고를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이번 금감원 조사에 대한 업계의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공정해야 할 금융 당국의 조사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곽노은 KB금융노조 정책국장은 “2007년까지만 해도 사외이사는 스톡옵션을 포함해 수억 원의 연봉을 받았다. 당시 이 문제로 금감원장과 금융위원장의 면담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라고 지적했다. 황영기 전 회장 역시 재임 시절 제왕화되는 사외이사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나섰다가 적지 않은 반발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미 사외이사 문제는, 업계는 물론이고 금감원 입장에서도 새로울 것이 없다는 얘기이다. 이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금감원이 이제야 제기한 데 대해 의혹의 시선이 여전하다. 

‘사외이사들 의혹’도 불거져

 

▲ KB금융지주회사 강정원 회장 내정자의 사퇴설이 기정사실화되던 때에 기자들이 KB금융지주 현관 앞에서 이사회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특히 금감원은 지난해 2월 같은 문제에 대해 이미 ‘면죄부’를 준 상태이다. 당시 국민은행 사외이사 ㄱ씨가 대표로 있는 업체가 국민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 “사외이사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혹이 제기되었지만, 금감원 조사에서 ‘혐의 없음’으로 마무리되었다. 또 다른 사외이사 ㄴ씨가 대표로 있는 업체가 국민은행에 IT 용역 서비스를 공급한 것 역시 특별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사전 검사 이후 금감원이 문제를 제기한 차세대 전산 시스템 선정 과정 역시 별도 조치가 없었다. 국민은행은 최근 차세대 전산 시스템을 UNIX에서 IBM으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 ㄷ씨의 입김이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와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금감원은 ㄷ씨가 시스템 변경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조담 KB금융 이사회 의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황 전 회장을 뽑을 때는 이사회가 살아 있다고 칭찬했다가 강정원 회장 내정자를 뽑을 때는 문제가 많다고 한다. 동일한 절차대로 했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가 터진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고 토로했다.

때문에 이번 금감원의 조사 강행에 대한 뒷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건 의원(무소속)은 “여러 정황으로 볼 때 KB금융 사전 검사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다. 이같은 의혹에 대해 금감원의 해명이 있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신 관치 금융’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른바 감독 당국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금융권 CEO를 교체하는 일련의 과정이 코미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감독 당국 내부에서도 이례적이라고 평가할 만큼 논란의 소지도 다분하다. 김상조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는 “회장 선정 과정에서 강정원 행장의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을 빌미로 개입하는 것은 새로운 관치 금융 트렌드이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정부 입김으로 물러난 금융권 인사는 강정원 행장이 처음은 아니다. 황영기 전 KB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2007년 우리은행장 재직 당시 투자에 실패한 책임을 지겠다는 이유로 회장직을 스스로 반납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이미 2008년 6월 예금보험공사 산하 예금보호위원회(약칭 예보위)를 통해 마무리된 건이었다. 이같은 문제는 <시사저널>이 입수한 예보위 비공개 의사록(2008년도 제6차)과 2007년도 4/4분기 MOU(경영 정상화 이행 약정) 이행 실적 점검 결과 보고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예보위는 당시 부행장급 3명에 대해 징계 조치를 내렸다. 하지만 황 전 회장과 이종휘 당시 수석부행장(현 우리은행장)을 상대로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포괄적 경영 책임으로 연임되지 않았다는 것이 면책 이유였다. 예보위는 당시 “황 전 회장과 이수석부행장은 ‘경고 상당’의 책임은 있지만 연임하지 않은 점 등을 감안해 제재 조치는 취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그런 예보가 뒤늦게 입장을 뒤집어 황 전 회장에 대한 투자 실패 책임론을 거론하자 뒷말이 나왔다. 황 전 회장도 최근 기자에게 “우리은행의 파생상품 투자 부실 문제는 지난해 예보위에서도 책임이 없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공’은 내팽개치고 ‘과’만 부각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정환 한국거래소 이사장도 지난해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사퇴한 적이 있다. 이 전 이사장은 지난해 10월 사퇴한 이후 직원들에게 보낸 고별 서신에서 “취임 이후 직·간접적인 사퇴 압력을 받았다”라고 주장했다. 진동수 금융위원장은 즉각 “사퇴 압력을 가한 적이 없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금융권에서는 이런 해명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이다. 지난 2008년 4월 취임한 이 전 이사장은 적지 않은 홍역을 치러야 했다. 취임 직후인 5월 검찰 압수수색을 당했다. 효과가 없자 감사원은 100% 민간 자본인 거래소를 공공 기관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중순에는 금감원이 예정에도 없는 감사에 착수하면서 ‘표적 감사’라는 지적이 일었다. 결국, 이이사장은 이같은 정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강행장 역시 위의 두 인사들과 마찬가지로 정부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물러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영화 투자·카자흐스탄 BBC은행 인수 등이 ‘아킬레스건’ 될 수도

하지만 이같은 내용만으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국민은행 내부에서는 강행장의 입장이 급선회한 데는 금감원 조사 내용에도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털어서 먼지 안 날 사람은 없는 법이다. 강행장은 한 번의 연임까지 한 터라 먼지가 날 확률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금감원은 이번 사전 검사에서 이례적으로 홍보부장의 컴퓨터 본체까지 봉인해 가져갔다. 이는 강행장이 지난 2007년 계열사인 KB창투를 통해 투자한 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의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강행장은 KB창업투자를 통해 15억원을 3회에 걸쳐 투자했다. 또 마케팅·상품그룹이 3억5천만원을, 신용카드사업그룹이 5천5백만원을, KB자산운용이 5천5백만원을 후원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 실무자들의 반대가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강행장이 투자를 강행하면서 뒷말이 나왔다. 국민은행 노조의 경우 배임 행위에 대한 법적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곽노은 노조 정책국장은 “세 곳의 법무법인으로부터 자문을 구한 결과 배임 혐의가 될 수 있다는 결과를 회신받았다”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이 홍보부장의 컴퓨터 본체를 봉인한 것도 이같은 문제를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금감원 조사 과정에서 문제가 드러날 경우 강행장은 작지 않은 난관에 봉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사퇴’라는 무리수를 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카자흐스탄 BBC은행 인수와 관련해서도 현재 논란이 일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해 8월 카자흐스탄 BBC의 최대 주주와 은행 인수 계약을 맺었다. 계약 체결 직후 국민은행은 23% 지분을 샀고, 넉 달 후 지분율을 30.5%로 늘렸다. 여기까지 모두 6억4천만 달러가 소요되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이 회사 주가가 급락했다. 지난해 1분기 기준으로 10분의 1 수준까지 폭락했다. 2분기 들어 주가 회복으로 투자 손실이 많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3분의 1 수준으로 하락한 상태이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상반기까지 8천억원에 가까운 인수 대금을 지출해 2천5백억원의 평가손이 발생했다. 은행 관계자는 “BBC은행 인수 과정에서 절차상 문제가 드러날 경우 황영기 전 회장처럼 명예롭지 않게 퇴진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라고 지적했다.


▲ 지난해 4월1일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은행연합회에서 은행지주회사 및 은행권의 사외이사들을 초청해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 기관의 건전성 제고를 위한 선제적 조치 방안과 주요 개혁 입법의 추진 배경 및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금감원 조사를 계기로 사외이사 문제 또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외이사 제도는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1998년 경영진의 독주를 막기 위해 마련되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이같은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 오너의 방패막이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제개혁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사외이사의 실질적 독립성 분석(2009년)> 보고서를 보면 확연해진다. 오너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의 비중이 26.19%에 이르기 때문이다. 특히 두산·LS·한화·하이트맥주 그룹 등의 경우 오너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사외이사가 대부분이다. 이수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원은 “이해관계가 있는 사외이사의 비중이 조금씩 낮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전체 사외이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한국상장사협의회가 최근 현직 사외이사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도 비슷했다. 전체 응답자 1백24명 중 48%가 ‘대주주의 영향력으로 인해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제한되고 있다’라고 응답했다. 사외이사와 기업 경영 투명성 개선 관계를 묻는 질문에도 상당수가 ‘미약하다’라고 답했다. 정순현 상장사협의회 조사2팀 조사지원파트장은 “현직 사외이사들조차 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공감한 점은 의미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문제가 되었던 국민은행 사외이사 역시 회장뿐 아니라 본인들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강정원 행장의 경우 회장 선임을 앞두고 사외이사 선임권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김진욱 변호사는 다른 의견이다. 국민은행의 경우 이례적으로 사외이사의 권한이 강력하다. 하지만 상당수 대기업의 사외이사는 이사회에서 사실상 ‘꿀 먹은 벙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때문에 안건에 대해서도 100% 찬성하거나 내부 비리를 적발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사외이사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개별 사외이사들의 의지만으로는 독립성 확보가 쉽지 않다. 사외이사들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통해 경영진을 감시하는 방법이 적절하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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