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 들어올린 금호아시아나 ‘벼랑 끝 승부’ 성공할까
  • 이철현 기자 (lee@sisapress.com)
  • 승인 2010.01.05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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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단에 오너 일가 지분 내놓고 주력 기업은 ‘워크아웃’ 제외…경영 정상화까지는 ‘산 넘어 산’

▲ (왼쪽)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12월28일 신문로 금호아시아나그룹 본사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른쪽)지난해 12월30일 산업은행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영기 산업은행 수석부행장과 오남수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전략본부 사장(오른쪽 첫 번째)이 경영 정상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아시아경제(왼쪽),시사저널 이종현(오른쪽)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하 회장)이 지난해 12월30일 백기 투항했다. 박회장은 지난해 12월30일 오후 2시까지 채권 금융 기관으로부터 금호산업, 금호타이어와 함께 금호석유화학까지 기업 개선 작업(워크아웃) 대상에 포함시키고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은 처분할 것을 종용받았다. 박회장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금호석유화학은 워크아웃 대상에서 빼줄 것을 부탁했다. 금호석유화학은 그룹 지주회사이다. 박회장 일가는 그룹의 주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금호석유화학의 지분 48.5%를 소유하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을 통해 그룹 계열사 전체에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금호석유화학마저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되면 박회장 일가는 그룹 경영권을 잃을 수 있다. 박회장은 또 대한통운 매각 방안을 완강히 거부했다. 

박회장은 12월 셋째 주부터 민유성 산업은행장을 만나고, 오남수 금호아시아그룹 경영전략본부 사장은 김영기 산업은행 수석부행장과 접촉하면서 워크아웃 조건을 완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주 채권 은행인 산업은행의 입장은 완강했다. 금호석유화학까지 워크아웃에 포함시켜 그룹 경영권을 담보로 잡고 대한통운을 조기 매각해 채권을 확보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박회장은 완강하게 버텼다. 박회장의 장남인 박세창 금호아시아나그룹 경영전략본부 상무는 산업행장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읍소까지 했다고 한다. 

시간은 박회장 일가 편이 아니었다. 버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올해 1월15일 대우건설 재무적 투자자가 풋백옵션을 행사하게 되면 금호산업은 자본 잠식 상태가 되어 부도를 피할 수 없다.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제외하면 주력 계열사인 금호산업, 금호타이어,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이 부채 과다로 인해 현금 흐름이 악화되고 있어 그룹 전체가 공중 분해될 위기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 2006년 재무적 투자자에게 3조5천억원을 지원받아 대우건설을 주당 2만6천2백원에 인수하면서 대우건설 주가가 3만2천5백원에 미치지 못하면 그 차액을 보상하는 풋백옵션을 재무적 투자자에게 부여했다. 지금 대우건설 주가는 1만3천원 안팎에 불과하다. 재무적 투자자가 풋백옵션을 행사하면 4조원가량이 소요된다. 이 와중에 금호산업이 올해 1분기까지 상환해야 할 부채는 1조3천5백80억원이나 된다. 금호석유화학(5천7백50억원), 대우건설(1조5천6백50억원), 아시아나항공(5천8백50억원), 금호타이어(4천4백50억원), 대한통운(2천억원)이 자기 자본을 웃도는 부채를 안고 있다. 전체 계열사가 올해 1분기까지 갚아야 할 초단기 부채만 4조7천억원이 넘는다.

박회장은 채권단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다만, 투항 조건을 보기 좋게 다듬어야 했다. 금호석유화학은 워크아웃 대상에서 빼고 대한통운은 바로 매각하지 않되 박회장 일가가 소유한 금호석유화학 지분 48.5%와 그룹 계열사 지분을 채권금융단의 처분에 맡기는 조건을 받아들여야 했다. 채권단은,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는 워크아웃 대상에 포함시키고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을 자율협약 대상으로 분류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채권 금융 기관이 부실 징후 기업으로 선정한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금을 자본금으로 전환하거나 채무 변제를 유예한다.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이 그 대상이 된 자율협약은 기업구조조정촉진법에 없는 용어이다. 양자가 합의한 자율협약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상 주요 내용이 적용된다는 점에서는 워크아웃과 비슷하나 출자 전환이 유예되었다는 점에서 다르다. 출자 전환을 제외하면, 워크아웃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채무 변제가 유예되나 경영권은 언제든지 채권단 뜻에 따라 박탈할 수 있다. 더욱이 박회장 일가의 지분은 채권단이 담보로 잡고 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제7조(부실징후기업 관리) 3항에 따르면, (채권단은) 출자 전환 또는 담보 등으로 취득하거나 처분 위임을 받은 주식을 제3자에게 매각해 경영 정상화를 추진할 수 있다. 명칭만 자율협약이라고 했지 워크아웃과 다를 바가 없다. 다만, 채권단은 박회장 일가에 워크아웃 대상 기업의 경영권을 3~5년 맡기고 경영 성과를 두고 보겠다고 밝혔다.

구조조정 등 계획 세우고 1년 안에 이행해야

박회장 일가는 3개월 안에 경영 정상화 계획을 채권단에 제출해야 한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이라는 지표로 경영 목표를 설정하고 인원·조직·임금 감축이라는 구조조정 계획과 재무 구조 개선 계획을 제출하고 이를 1년 안에 이행해야 한다. 채권단은 경영 정상화 계획을 보고 회생 여부를 판단해 지원 수준을 결정한다. 이와 함께 주요 계열사를 팔아야 한다. 대우건설을 산업은행 사모 펀드에 주당 1만8천원에 팔면 1조원이 넘는 매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재무 구조 개선이 최우선이다 보니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지난해 6월부터 금호렌터카, 금호생명, 금호오토리스, 아시아나IDT를 비롯해 10여 개 계열사를 팔아치우고 있다.

계열사를 팔아 재무 구조를 조금이라도 개선한다고 하더라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경영이 정상화될 전망은 밝지 않다. 그룹 주력사인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의 경영 실적은 악화 일로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자산이 3조5천억원이나 부채는 2조6천억원이나 된다. 지난해 3분기까지 이자 비용만 8백억원이다. 그러다 보니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9백40억원이지만, 당기순이익은 4백억원가량 적자이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2천7백72억원과 비교해 3분의 1로 줄어들었다. 아시아나항공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자산은 5조6천억원이지만 부채가 4조8천억원이나 된다. 이로 인해 지난해 3분기까지 이자 비용이 1천5백53억원이다. 영업 수지는 적자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영업적자는 2천8백억원이다. 그나마 대한통운이 흑자를 내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나 채권 확보가 최우선인 채권단이 언제 대한통운을 매각할지 모르는 실정이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껐지만, 박회장 일가의 처지에 별다르게 나아진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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