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사업자 미끼로 신문 길들이나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1.05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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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자 선정 계속 미뤄져 논란…“2010년 지방선거 목전에 두고 결정하기 어려울 것” 전망

▲ 한나라당은 2009년 7월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방송법 등 미디어법을 의장 직권상정으로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가 물리적 충돌을 빚었다. ⓒ시사저널 유장훈


종합 편성 채널(종편) 사업과 올 6월 지방선거 사이에 어떤 함수 관계가 숨어 있기에 정치권의 목소리가 여기에 개입할까. 새해 예산안 문제로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던 지난 12월, 종편 사업자 선정 시기가 지연되는 것을 놓고 여야가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12월22일 국회 법사위에서 “(2010년) 상반기 중에 (종편) 사업자를 선정하기 어려울 수 있다”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 계기가 되었다. 최위원장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우선 미디어 관련법 시행령이 법제처에 아직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또한 새해 초에 사업자를 공고한다 하더라도, 사업 진출을 희망하는 신문사나 대기업들의 2~3월 주주총회가 끝나고 결산 보고서가 작성된 다음에야 신청 서류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류 심사 기간 등을 고려할 때 상반기를 넘어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최위원장의 논리이다.

민주당은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이다.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즉 “6월의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에 사업자 선정을 마칠 경우, 경쟁에서 탈락한 신문사들의 반발이 불 보듯 환하다”라는 것이다. 종편에 참여하려는 신문사들을 통해 여권에 유리하도록 여론을 계속 끌고 가려는 의도라는 주장이다. 한나라당은 “야당이 오버한다”라고 일축한다. 오히려 야당이 미디어 관련법이 통과되는 것을 막았기 때문에 전체 사업이 늦어진 것이 아니냐고 반박한다.

문제는 최위원장이 사업자 선정 시기를 두고 계속 말을 바꾸어 왔다는 데에 있다. 2009년 7월 국회에서 미디어 관련법이 강행 처리된 직후에는 사업자 선정 시점을 2009년 말쯤이라고 했다가, 이후 2010년 상반기, 다시 2010년 하반기 등으로 계속 미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정부 주변에서 나돌았던 “종편 사업자 선정이 상당히 늦추어질 것이다”라는 관측이 결과적으로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방송·통신 분야에 정통한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10월 초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종편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은 상당히 힘든 문제이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특정 언론사가 주도한 컨소시엄에 사업권을 줄 경우, 탈락한 언론사들이 이를 받아들일 것인가가 관건이다. 아마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방통위가 우선 한두 곳을 사업자로 선정하고, 추후에 한 곳 정도를 더 선정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꺼번에 사업자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1·2차로 나눌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정부가 지방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서 종편 사업자 선정 시점을 따져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치권과 언론계 일각에서는 특정 신문사에만 종편을 줄 경우 탈락한 신문사는 현 정권에 대한 비판적인 기조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12년 총선·대선 얽힌 시나리오까지 나돌아

방통위와 재계 주변에서는 종편 사업과 관련한 시나리오까지 나돌고 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방통위는 2010년 하반기에 종편 사업자를 한 곳만 선정한다. 그러면서 “향후 추가로 한 곳을 더 선정하겠다”라고 밝힌다. 1차 선정에서 탈락한 언론사들은 2차에서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현 정권에 대한 우호적인 입장을 계속 견지할 수밖에 없다. 2차 선정 과정에서도 탈락한 언론사에게는 “2012년 이후로 예상되는 ‘멀티 모드 서비스’(MMS; 지상파 다채널 방송)에서 사업자를 선정할 때 우선권을 주겠다”라는 입장을 밝힌다. 그렇게 가다 보면, 2010년 지방선거는 물론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모두 끝나게 된다.’

한마디로, 현 정권이 종편과 MMS 사업자 선정권을 미끼로 대형 신문사들에게 재갈을 물리려 한다는 시나리오인 셈이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디지털 방식으로 전환되는 2012년 이후에는 아날로그 방송 주파수를 방통위에 반납해야 한다. 그러면 새로운 지상파 방송 주파수가 두 개까지 생길 수 있다. 두 개의 신규 주파수를 특정 사업체가 할당받게 되면 새로운 방송국을 하나 세울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이 MMS 사업이며, 케이블 방식의 종편보다도 더 사업성이 크다는 것이 방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현재 종편 사업에 눈독을 들이는 조선·중앙·동아일보와 매일경제 등 유력 신문사들은 전반적으로 현 정권에 우호적이다. 위에서 언급된 언론사의 임원을 지낸 전직 언론인은 “아무리 ‘친정’이지만, 종편 사업이 시작된 다음부터 정부에 대한 호의적 보도 태도가 너무 노골화되고 있다. 방송 사업도 중요하지만, 언론 본연의 비판·견제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라고까지 말했다.

종편 사업은 사실상 안갯속에 있다. “방통위의 로드맵이 없다”라는 말까지 들려온다. 그럼에도 사업자 선정이 이런저런 이유로 계속 미루어지면서 갖가지 의문과 의혹들이 덧붙여지고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종편 사업자 선정이 지연되는 문제와 지방선거 등 정치적인 일정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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