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바래는 ‘종편’ 판타지 회색 물든 2010년 미디어 산업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1.05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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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유력 신문사들과 기업들이 신경전과 탐색전을 벌였던 종합 편성 채널 사업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사업자 선정이 무기한 미뤄진 가운데 기업들이 사업성이 없다며 발을 빼는 정황?

ⓒ일러스트 허경미


마침내 ‘미디어 빅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2010년은 미디어계의 판도가 크게 소용돌이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방송 시장의 재편이 주목된다. 지상파 방송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종합 편성 채널(종편)과 보도 전문 채널 사업자가 새롭게 선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독점하던 방송 광고 판매 대행 시장도 경쟁 체제로 바뀌어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될 예정이다. 이러한 미디어 환경 변화는 지상파 방송과 지역·종교 방송, 케이블TV, 신문사, 광고계 등 미디어업계 전반은 물론 정·관·재계와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향후 ‘우리나라 미디어 지도’의 대대적인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디어계가 올해 ‘대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장밋빛’으로 치장했던 미디어계의 앞날에 ‘회색빛’ 암운이 몰려오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선 종편 사업 자체가 오리무중이다. 2009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종편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신문사와 기업들의 신경전과 탐색전이 치열했다. 오래전부터 방송 진출을 꿈꾸었던 조선·중앙·동아일보 등 대형 신문사들은 ‘별동대’를 꾸려 종편 사업에 뛰어들었다. 신문사 사주들도 직접 대기업 오너들과 접촉하며  컨소시엄을 짜기 위해 움직였다. 신문업계와 재계에서 ‘종편 붐’이 크게 일어난 것이다. 자본력과 관계 없이 일단 대외적으로 “종편 사업에 진출하겠다”라고 선언했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 YTN, CBS 등도 종편 사업에 눈독을 들였다. 종편 사업자 공고조차 나오지 않았는데 방송 기자와 연출자(PD)를 모집하며 선수를 치고 나온 신문사도 있었다.

몇몇 신문사는 지면을 통해 사업자 선정권을 쥐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를 향해 “종편의 초기 안정을 위해 세제 혜택이나 앞자리 채널을 부여해야 한다”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이에 화답하듯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처음 출범하는 방송에 ‘나 몰라라’ 하면 안 된다”라며 세제 지원 등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기자와 만나 당시의 종편 사업 흐름을 이렇게 설명했다. “종편 경쟁이 조선·중앙·동아일보·매일경제(매경) 이렇게 4파전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메이저 신문사인 조·중·동 3파전이나 마찬가지다. 매경은 조·중·동 가운데 한 곳과 컨소시엄을 구성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방통위가 보수 언론과 유착한다는 식의 주변 시선을 의식하는 차원에서라도 조·중·동 가운데서 한 곳만 선정하고, 나머지 한 곳은 매경 등 다른 데서 찾을 수도 있다”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2009년 가을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 10월 헌법재판소 판결로 종편 사업이 더 탄력을 받을 법한데 되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디어 사업에 종사하는 대기업의 한 간부는 “지난해 7월 국회에서 미디어법이 통과된 이후 종편 사업은 아무런 진전이 없다. 방통위는 향후 계획을 제시하지 못한 채 오히려 내부 직원들에게 종편 사업과 관련해서는 함구령을 내렸다는 말까지 들린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종편 사업이 답보 상태에 빠진 까닭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크게 두 가지로 그 요인을 꼽는다. 우선 방통위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시중 위원장은 2009년 말까지 사업자를 선정하겠다고 했다가, 2010년 상반기로, 다시 하반기쯤으로 계속 말을 바꾸고 있다. 최위원장이 구상했던 대로 사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방통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미디어 관련법의 국회 처리와 헌재 판결을 지켜보느라 일정이 불가피하게 늦춰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유력 신문사들과 대기업의 컨소시엄 불발이 원인이라는 분석 나와

▲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그런데 이보다는 메이저 신문사들의 컨소시엄이 제대로 구성되지 않으면서 삐걱대고 있다는 분석이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보도 전문 채널 및 종합 편성 채널 제도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상파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 비용이 연간 2천억~3천억원 수준임을 감안할 때 막대한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이 아니면 뛰어들 수 없다. 각종 분석 결과를 보더라도, 종편 사업의 초기 투자비는 3천억원에 달한다. 이처럼 막대한 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신문사와 대기업이 종편이나 보도 채널 지분을 각각 30%까지만 소유할 수 있기 때문에 컨소시엄 구성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재 이 필수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형 신문사들은 그동안 KT, SK, 포스코, 롯데, 현대자동차 등에 러브콜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 취재 과정에서, 일부 대형 신문사들이 대기업과 접촉했던 사례가 포착되었다. 신문사 두 곳이 각자 KT와 SK에 컨소시엄을 제안했던 것으로 확인된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컨소시엄을 제안받았던 기업의 한 관계자는 “신문사들이 사업 기획안을 들고 와서 제안했지만 ‘한번 생각해보겠다’라고만 했다. 우리 자체 분석 결과, 사업성에 강한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신문사 몇 곳은 종편 사업을 함께하자며 컨소시엄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CJ미디어와 온미디어 등 복수 방송 채널 사용 사업자(MPP)들도 신문사로부터 사업 제안을 받았지만 역시 ‘노(no)’라고 답했다. 대형 신문사들의 ‘짝짓기’가 제대로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기업들이 종편 사업에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 까닭은 자명하다. 사업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비가 수천억 원인 데다 몇 년 동안 운영비로 수천억 원을 더 쏟아부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무래도 수지 타산이 맞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한 미디어 그룹의 관계자는 “신문사와 컨소시엄을 하게 되면 ‘돈’은 기업이 대고, ‘경영’은 언론사 운영 경험이 있는 신문사가 맡게 될 것이다. 문제는 초기 투자 비용과 운영비만이 아니다. 신문사 경영이 힘들 경우 별도로 그 신문사에 광고까지 주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무리한 종편 특혜 논란 거듭하며 기존 시장 죽이는 ‘악순환’ 우려도

언론 관계법이 헌재로 넘어갔을 당시 재계에서는 정부의 종편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도록 헌재가 위헌 판결을 내려주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들렸다. 특정 매체와 컨소시엄을 구성했을 경우 자칫 다른 매체들로부터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재계가 우려하는 부분이다.  

방송사의 주 수입원인 광고 시장 역시 꽁꽁 얼어붙어 있는 상황이다. 연간 7조~8조원 규모인 우리나라 광고 시장에서 종편이 등장했다고 해서 광고 시장이 얼마나 커지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제일기획은 올해 광고 시장이 지난해(7조5백억원)보다 8% 정도 성장한 7조7천억원 정도가 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이는 예년 수준을 회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최근 들어 일부 신문사는 대기업과의 컨소시엄이 여의치 않자 중견 기업들에게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지난 9월쯤, 대형 신문사 두 곳에서 지상파 방송국의 유명 PD 출신들을 영입하려 했으나 본인들이 손사래를 치면서 무산되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현재 종편 사업이 정체 현상을 보인다 해도 ‘언젠가는’ 항해의 돛을 올릴 것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그렇게 되면, 당장 지상파 방송사의 경영을 위협할 것으로 보인다. 종편은 보도뿐 아니라 연예·오락 프로그램 등을 종합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 케이블 또는 위성 등 송출의 차이일 뿐, 프로그램 내용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이다. 가뜩이나 줄어든 광고를 종편과 나눠먹기 해야 하는 지상파 입장에서는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자본력이 떨어지는 지역 민방들은 존폐의 기로에 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그나마 지상파 방송사는 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되면 광고 단가가 높아지는 것 등으로 다소 숨통이 트일 수 있다. 특히 “1공영 다(多)민영 미디어렙이 도입되면 직접 영업을 통해 광고량을 늘릴 수 있는 지상파 방송사가 광고를 독점할 것이다”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상대적으로 시청률이 낮은 지역 방송과 종교 방송 등은 광고 판매가 더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광고를 독점해 온 코바코(KOBACO)를 비롯해 지역·종교 방송과 케이블TV, 신문사 등이 ‘1공영 1민영’을, KBS를 제외한 지상파 방송사들이 ‘1공영 다민영’ 체제를 선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 지역 방송의 한 간부는 “심각한 경제 위기와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으로 이미 지역 방송의 경영 환경은 충분히 약화되어 있다. 여기에 복수 미디어렙이 허용되어 약육강식의 시장 환경이 조성되면 지역 방송의 생존은 그야말로 장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전망이 불투명하지만, 신문사나 대기업 등이 지상파 방송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은 여러 갈래이다. 민영화 논란이 일고 있는 MBC나 KBS 2TV의 지분을 인수할 수 있다. 더불어 2012년 이후 멀티 모드 서비스(MMS; 지상파 다채널 방송) 채널을 할당받는 방식으로도 방송에 진출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는 지상파 방송의 민영화보다 MMS 사업을 추진할 가능성이 더 크다. 다만, 2012년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지도 모르는데 누가 정부의 약속을 쉽게 믿겠느냐는 것이 관건이다”라고 말했다.

깊은 상흔을 남긴 채 언론 관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사업 앞길은 불투명하다. 방통위와 일부 메이저 신문사들의 의욕은 강하지만, 정작 돈을 대야 하는 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사업에 뛰어들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방통위가 곶감 빼주듯 종편에게 ‘특혜성 지원책’을 하나씩 내놓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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