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구하고 자신은 불행해진 ‘의인’들
  • 이은지 (lej81@sisapress.com)
  • 승인 2010.01.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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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허덕이는 의사상자, 정부·사회 모두 외면…우울증과 가족 불화로 가정 파탄에 이르는 경우도

▲ 1. 2008년 5월 조병남씨는 경기도 여주군 친구의 집에 가스가 폭발하면서 화재가 발생하자 불 속으로 들어가 친구를 구하려다 전신 화상을 입고 지체 4급, 안면 3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2. 환경미화원을 돕다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상해를 입은 김동필씨가 다친 부위를 보여주고 있다. ⓒ시사저널 임영무·박은숙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다 목숨을 잃거나 다친 의인들을 ‘의사상자’(義死傷者)라고 부른다. 정부가 금전적인 지원을 실시한 1970년부터 지금까지 총 5백76명이 의사상자로 인정받았다. 이 중 3백85명이 현장에서 사망했고, 1백71명이 부상당했다. 의사상자에게는 등급(1~9등급)에 따라 1천만~1억9천7백만원까지의 보상금이 지급되고 있다.

그렇다면 의사상자들은 사고 이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의인들의 삶은 한마디로 비참했다. 이들 대부분은 사고 후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리며 정상적인 삶에서 멀어져 있다. 입에 풀칠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는가 하면 우울증과 불화로 가정 파탄에 이른 경우도 많았다.

‘한국의사상자협회’ 설립을 준비 중인 양용구씨(47)는 “의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각본을 짠 것처럼 하는 말들이 똑같다. 비참한 세상살이로 후회와 한숨만 남았다”라며 씁쓸해했다. 지난 2003년 8월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양씨의 아들은 물에 빠진 친구를 구해낸 뒤 자신은 웅덩이에 빠져 사망했다. 양씨의 아들은 의사자로 인정받았지만, 양씨는 우울증 등을 겪으며 하던 개인 사업까지 접어야 했다.

어선 선장이던 박성원씨(59)는 지난해 4월 퇴근길에 불에 타고 있는 차량 옆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여성을 발견하고 돕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박씨는 한쪽 눈을 잃었고, 다리도 심하게 절게 되었다. 두 번 뇌수술을 하며 기억력도 나빠져 했던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이 사고로 박씨는 꼬박 여섯 달을 병원에서 지냈다. 정부에서 받은 지원금은 7천8백만원. 하지만 병원비를 낸 후 박씨 손에 남은 것은 3천만원 정도였다. 후유증에도 시달렸다. 신경질이 부쩍 늘어 부부 싸움도 잦아졌다.

박씨의 아내 김삼순씨(59)는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해 하루하루를 눈물로 지낸다고 했다. 김씨는 “사고 전에는 자상한 남편이었다. 연봉도 4천만원이 넘었고, 가정에 충실한 1등 신랑감이었다. 하지만 사고 이후 큰소리로 짜증을 내고, 심지어 욕도 한다. 속으로 삭이다 보니 스트레스성 안면악관절 장애까지 생겼다”라며 힘들어했다.

가정의 근간이 흔들리며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사는 의인들도 있다. 지난 1995년 12월, 택시기사였던 최광석씨(54)는 강도가 운전하는 버스를 택시로 가로막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최씨는 당시 1천2백90만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에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몸이 아프고 돈도 없어서 택시를 팔아야 했다. 최씨가 사고를 당하던 해에 그의 아내는 위암 수술을 받고 지금까지 투병 중이다. 가족 간의 대화도 끊긴 지 오래다.

의사상자 개선안 나왔지만 예산 못 받쳐줘

최씨는 “그동안 의상자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텨왔다. 하지만 병원에 가서 1종 의료급여 카드를 꺼내면 ‘왜 1종 의료급여 혜택을 받느냐’라고 묻기 일쑤이다. 의사상자는 국가유공자와 달리 증명할 수 있는 신분증이 나오지 않아 증빙 서류를 내보여야 한다. 꾸깃꾸깃한 종이 서류를 내보이다 보면 내가 마치 구걸하러 온 사람 같다는 기분이 든다”라고 말했다. 

개인 사업을 하던 남영식씨는 지난 2005년 2월 퇴근하는 도중에 “강도야!” 하는 소리를 듣고 강도와 대적하다 칼에 찔려 전치 4주의 부상을 입었다. 남씨는 당시 사건을 맡은 경찰관에게 “병원비는 어디서 보상받느냐”라고 물었다가 “피의자인 강도에게 받을 수밖에 없다”라는 어이없는 답변을 들어야만 했다. 나중에 검찰에 가서야 ‘의사상자’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남씨는 어렵게 6천7백만원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당시 상황이 떠올라서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건 당시 다리를 크게 다친 탓에 육체 노동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남씨에게 더 큰 짐은 아이들 교육이다. 지금은 정부 지원금으로 중학생인 두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이마저도 대학생이 되면 중단된다. 남씨는 대학 등록금을 마련할 생각만 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의사상자들을 가장 괴롭히는 것은 생활고이다. 의사상자들은 “혜택이 없어도 너무 없다”라고 한목소리로 말한다. 정부는 의사상자에게 보상금과 1종 의료급여, 자녀 교육, 취업 보호 및 장제 보호 혜택을 주고 있다. 의사상자 대부분이 보상금은 병원비로 날리고, 취업 보호는 말 뿐이다. 태반이 실업자로 살아간다.

권혁녀씨(42)는 지난 1999년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다가 남편을 잃었다. 권씨는 최근 경기도 안산시가 실시한 환경미화원 채용 2차 심사에서 떨어졌다. 그녀는 “현재 의사상자가 평생 받는 혜택이라고는 1종 의료급여가 전부이다. 만약 국가유공자처럼 가산점만 있었어도 환경미화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었다. 앞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라며 울먹였다. 

조병남씨(53)는 지난해 5월, 가스폭발 사고로 화재가 발생하자 친구를 구하기 위해 불 속으로 뛰어들어 갔다가 전신 화상을 입었다.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쓰고 있는 조씨는 “노후는 자식들에게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 같다”라며 씁쓸해했다.

지난 1995년 환경미화원을 돕다 음주 운전 차량에 치여 중상을 입은 김동필씨(38)는 의사상자로 인정받지 못했다. 김씨는 최근 복지부에 의사상자에 대한 심사 조건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보건복지가족부측은 “급박한 위해에 있는 사람을 도와줘야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요건이다. 이것마저 없으면 할머니를 부축하다가 발이 삐끗한 것조차 정부가 지원해줘야 할 판이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국민권익위원회는 2009년 12월23일 의사상자에 대한 개선안을 내놓았다. 자녀 교육을 대학까지 지원하고, 의상자 본인에 한해 지원되던 의료급여를 가족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난색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 사회서비스자원과 관계자는 “의상자 가족들에게 2종 의료급여를 지급하는 정도의 일부 수용만 가능하다. 취업 보호는 역차별 소지가 있어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국가유공자에 준하는 혜택을 달라는 의사상자의 요구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내 의사상자들이 찬밥 신세라면 해외에서 숨진 한국인 의인들은 어떨까. 지난 2001년 일본 지하철역에서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다 사망한 이수현씨는 일본에서 국민적인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이씨를 추모하는 영화가 만들어졌고, 일본 왕이 시사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매년 1월26일에 이씨를 기리는 추모 행사가 열리고 있다.

고 이수현씨의 아버지 이승대씨는 “남을 위해 목숨을 던지는 행위는 우리 특유의 민족성이다. 국가 차원에서 이들을 보호하고 배려해야 좋은 일이 자꾸 퍼져나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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