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달 학교’ ‘시골 학교’… 꼴찌들의 눈부신 반란
  • 이경희 인턴기자 ()
  • 승인 2010.01.0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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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고 등 ‘사교육 없는 학교’들, 2010년 대입에서 괄목할 성적 거둬…특화된 방과 후 학습 등 ‘주효’

▲ 지난해 12월29일 오전 시흥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교정을 뛰어나오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정부는 지난해부터  ‘사교육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교육의 대명사인 ‘학원’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했고, 밤 10시 이후 심야 교습을 규제했다. ‘방과 후 학교’와 ‘사교육 없는 학교’를 지정해 공교육의 틀을 확대했다. 대학 입시에서 사교육에 의존해야 했던 전형 요소도 대폭 손질했다. 각 학교들도 ‘사교육 없애기’에 적극 동참하고 나섰다.

지난해 실시된 2010년 대학 입시에서는 사교육을 받지 않은 상당수의 학생들이 명문대에 합격하는 영광을 안았다. 학교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인 결과였다.

‘미달 학교’라는 오명을 썼던 시흥고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두 명의 학생을 서울대에 보냈다. 전남 장성군에 있는 장성고는 도내의 수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경남 밀양의 동명고와 경남 마산의 삼진고 등 시골 학교들도 개교 이래 첫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했다. ‘사교육 없는 학교’들의 반란이다. 도대체 이들 학교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기에 학원 문턱을 넘지 않고도 좋은 성과를 거둘 수가 있었을까. 그 비결은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경기도 시흥에 있는 시흥고는 ‘기피 학교’ ‘미달 학교’로 유명했다. 지난 2003년 개교한 이래 거의 해마다 학생들이 부족해 미달 사태가 일어났다. 우수한 학생들은 인근 지역의 고교로 빠져 나갔다. 이런 시흥고가 2010년 대학 입시에서 ‘꼴찌들의 반란’을 일으켰다. 3학년 5백23명 중 3백68명이 대학에 합격했는가 하면 개교 이래 처음으로 서울대 합격생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시흥에 있는 고등학교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다.

시흥고의 재학생들에게 ‘사교육’은 보기 좋은 떡에 불과했다. 가정 형편으로 인해 사교육을 받고 싶어도 받지 못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학교가 도심 변두리에 위치하고 있어 사교육을 받을 여건도 좋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학생들은 싫든 좋든 학교 교육에 의지해야만 했다.

지난해 3월 현 이은원 교장(53)이 부임하면서 학교가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우선 ‘방과 후 학습’을 확대했다. 방과 후 학습은 단순한 ‘보충 학습’에 머무르지 않고 학생들의 수준과 적성을 고려해 ‘등용문반’(우수 대학 진학 경쟁력 강화를 위한 프로그램), ‘M·E-Clinic반’(수학·영어 학습 치료 프로그램), ‘M·E-Basic반’ 등으로 맞춤식 교육을 진행했다. 교사들의 열정은 값진 열매를 맺었다. 개인 시간을 자진 반납하면서 방과 후 학습에 열정을 쏟았다. 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어 대입 전략을 짠 것도 주효했다. 교사들은 성적이 부진한 학생들에게는 ‘실현 가능한 목표’를 제시해주었다. 자격증을 딸 수 있는 학과나 전문대학을 추천해주는 식이다. 전국 각 대학의 수시 전략을 분석하고, 집중 공략한 것이 시흥고의 합격률을 높인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입학사정관제에도 철저하게 대비했다. 교사들이 예비 입학사정관이 되어 학생들이 실제 면접 때와 똑같은 체험을 하게 했다. 자기소개서 첨삭도 직접 담당했다. 학생들의 적성에 맞는 프로그램도 개발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매주 월요일마다 시행하는 ‘시월고사’(始月故事)이다. ‘고사성어 공부’의 줄임말인 시월고사는 논술시험에 대비해 어휘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시작되었다. 이은원 교장은 “우리 학교 3학년 선생님들은 거의 다 밤 10시까지 남아 있다. 교사들은 모두 학생들을 위해 능동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런 노력들이 있었기에 좋은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학습 동아리 활동·수준별 보충 수업도 효과

▲ 이은원 시흥고등학교 교장이 학교 교육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이번에 서울대에 합격한 학생들은 어땠을까. 사회과학부에 합격한 이상급 학생(여·18)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에 가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서울대 사범대에 합격한 이지료 학생(남·19)도 중학교 이후부터는 학교 교육에만 의존했다. 예습 위주인 학원에 다니면서 학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원에 가는 것을 포기했다.

이군의 고입 입학 성적은 최상위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서울대에 합격한 데에는 학교의 ‘동기 부여’가 원동력이 되었다고 한다. 이군은 “친구들 중에 꿈이 없는 얘들이 대부분이었다. 나 역시 꿈 없이 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선생님과 친구들의 조언으로 선생님이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목표가 생기니 열심히 노력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교사는 학생을 믿고, 학생은 교사를 믿는 교육 환경이 결국 꼴찌들의 반란을 성공시킨 비결이었다. 3학년 8반 담임인 남현욱 교사는 “우리 학교는 학생들과 교사들의 신뢰 관계가 돈독하다. 강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이것이 우리 학교의 큰 장점이라면 장점이다”라고 강조했다. 교사들의 열정으로 학교를 뒤바꿔놓은 것은 대전 한빛고도 마찬가지다. 한빛고는 대다수 학생이 사교육을 받지 않고 있다. 무명이던 한빛고는 평준화 전환을 계기로 우수 고교로 성장했다. 비결은 맞춤식 진학 지도였다. 학생의 적성과 진로를 고려해 2학년 때부터 개인 프로파일을 작성한다. 장래 희망, 자기소개서, 진학 계획서 등을 파일로 정리해 꾸준히 관리하면서 진학 지도를 했다. 입학사정관제 전형에 손쉽게 대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방과 후 수업이나 학습 동아리 활동을 통해 정규 교육 과정을 보완했다. 또한, 젊은 교사들을 영입해 기존의 경력 교사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어가게 했다. 교사들의 변화와 학생들의 믿음으로 한빛고는 2010학년도 대입 시험에서 3학년 학생들을 대거 대학에 합격시켰다. 전남 장성군에 있는 장성고등학교도 사교육 없이 눈부신 교육 성과를 냈다. 2010년 대학수학능력시험 자연계 전남 차석, 인문계 전남 여학생 수석을 배출했다. 2009년에는 인문계 전남 전체 수석을 배출하기도 했다. 사교육 혜택을 받을 수 없는 시골 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탄탄한 공교육 프로그램이 그 해법이었다. 중국어 회화, 영자신문 강독, 난타, 바둑 등 특기 적성 교육과 수준별 보충 수업이 이루어지고 한국사 인증 시험반, 국어 능력 인증 시험반, 토익, 텝스, 한국 수학 경시대회반 등 각종 시험 대비반도 운영한다. 경남 밀양 동명고, 경남 마산 삼진고 등도 개교 이래 첫 서울대 합격생을 배출하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사교육 없이 성공한 학교들의 공통점은 교육과 학습에 대한 열의였다. 그 밑바탕에는 교사와 학생들의 돈독한 신뢰 관계가 있었다. 교사의 열정과 이를 믿고 따르는 학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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