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왜 ‘속편’만 줄줄이 나올까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 ()
  • 승인 2010.01.1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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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드라마의 ‘시즌 2’ 제작을 가로막는 걸림돌들

▲ 화제를 모은 드라마 (위)는 주인공이 죽는 결말이지만, 비밀 조직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아 ‘시즌 2’를 기대하게 했다. ⓒKBS


드라마가 끝날 때마다 심심찮게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시즌 2’에 대한 기대감이다. 지난해 화제작이었던 <선덕여왕>이 끝날 때 작가들은 미실(고현정)이 죽고 선덕여왕이 즉위한 후, 삼국 통일까지의 이야기를 이른바 ‘시즌 2’로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적인 영상 연출로 블록버스터 드라마로서는 꽤 괜찮은 시청률로 종영한 <아이리스>는 아예 ‘시즌 2’를 겨냥한 결말을 내놓았다. 의문의 총성과 함께 주인공인 김현준(이병헌)이 죽음을 맞이하는 반면, 아이리스라는 비밀 조직의 정체는 끝내 드러내지 않고 종영했다.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는 공공연히 <아이리스>의 시즌 2와 ‘스핀오프’를 모두 제작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시즌 2’에 대한 요구는 이처럼 큰 성공을 거둔 작품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정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못내 종영이 아쉬울 정도로 남은 이야기에 대한 기대감이 큰 작품들에도 ‘시즌 2’에 대한 요구는 이어진다. 지난해 지진희의 연기 변신이 돋보였던 <결혼 못하는 남자>도 종영에 즈음해 ‘시즌 2’에 대한 요구가 있었고, 황정민과 김아중이 출연한 착한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나 아이돌의 이야기를 만화적인 터치로 그려내 호평을 받은 <미남이시네요>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시즌 2’에 대한 요구가 줄기차게 있었다고 해서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진 경우는 드물다. 왜 그럴까. 여기에는 미국 드라마들이 갖고 있는 제작·방송 환경 및 시청 행태가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먼저 엄밀한 의미의 ‘시즌 2’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시즌 2’는 미국 드라마들이 갖는 이른바 ‘시즌제’에서 비롯된 용어인데, 통상적으로 미국 드라마는 가을에서 시작해 봄에 끝난다. 그것이 한 시즌으로 구성되는데, 이 시즌에 드라마가 성공하면 다음 시즌에 ‘시즌 2’가 제작되는 식이다. 물론 시즌 드라마들은 이야기의 맥락이 이어지거나 일관되고 출연자들도 대부분 동일 인물들이 된다. 미국 드라마는 우리와는 달리 배급망이 넓기 때문에 일단 성공한 드라마의 연작은 성공 가능성이 더 크다. 따라서 ‘시즌 1’에서 대박을 터뜨리면 ‘시즌 2’에서는 배우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진다. 즉, 시즌제는 배우들에게도 하나의 기회 요소로 작용한다.

바로 이 부분은 우리네 드라마 풍토에서 왜 ‘시즌 2’가 어려운가를 잘 말해준다. 예를 들어
<아이리스>가 만일 ‘시즌 2’를 만들면서 똑같이 이병헌을 주인공으로 세운다면 그 배우 개런티는 1편보다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다.

물론 조연급들은 그 폭이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에 큰 부담은 아닐 수 있지만, 주연급은 다르다. 이것은 제작사의 초기 부담을 가중시킨다. 미국 드라마라면 배급망을 넓혀가는 방식으로 수익률을 더 높이고 그것을 통해 배우들의 개런티도 같이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한정적인 우리 드라마 시장에서 ‘시즌 2’가 또 시청률 40%를 달성한다고 해서 수익률이 두 배가 되지는 않는다. 제작사의 이런 초기 부담은 성공 확률보다 실패 확률을 더 높여준다. 

미국·일본과 제작 여건 크게 달라 

▲ 1월20일 첫 방영될 예정인 MBC 새 드라마 (위)는 2004년 인기작 의 속편이다. ⓒMBC 제공

그렇다면 ‘시즌 2’는 우리 드라마 풍토에서는 정녕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만, 미국이나 일본식의 ‘시즌 2’ 개념을 꼭 우리가 따라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굳이 ‘시즌 2’라고 하지 않더라도 ‘속편’이나 ‘2탄’ 정도로 가볍게 접근한다면 해법은 있다. 실제로 <종합병원 2>는 엄밀한 의미에서 시즌제 드라마라고 하기는 어렵다. 주인공도 다르고 1편이 제작된 지 무려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시즌 개념이 용이하지 않다. 오히려 이것은 2탄 정도가 어울린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올해 이른바 ‘시즌 2’로 불리며 제작될 일련의 드라마들에도 해당되는 것이다. 2004년 방영되어 인기를 모았던 MBC의 <결혼하고 싶은 여자>가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로 시즌 2를 제작한다고 밝혔지만 작가가 같을 뿐, 배우들은 다른 이 드라마는 엄밀히 말해 속편이다. 이것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MBC의 자존심을 세워줄 것으로 기대하며 제작이 추진되고 있는 <내조의 여왕> 속편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기서 우리가 ‘시즌 2’라고 부르는 드라마들이 사실은 엄밀한 의미에서 시즌제 드라마가 아니라는 비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같은 우리 식의 접근 방식이 가진 유연함이 가능성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몇몇 시도는 있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시즌제’라는 미국식의 제작 시스템(여기에는 사전 제작제나 공동 집단 집필제 개념까지 포함된다)에 대한 지나친 선망으로 현실적으로 우리 식의 ‘시즌제(속편 개념)’를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의 것이 선진적인 시스템이라는 점은 분명하지만, 우리가 가진 방송 환경의 특수성이 분명 감안되어야 한다. 속편 개념을 가진 우리 식의 시즌제는 분명 현실적이면서도 확실한 가능성을 가진다. 전작의 아우라를 이어가면서도 제작 측면에서 부담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성공적으로 종영한 드라마가 가진 그 스토리의 구조나 연출 스타일은 이 다양한 콘텐츠들이 경쟁력이 되는 사회 속에서 단 한 편으로 놓아두기에는 아까운 것들이다. 따라서 그것들을 연작이든 속편이든 제작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간단한 마케팅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우리의 현실과 맞춰가면서 할 것인가이다. 꼭 미국 드라마나 일본 드라마식의 ‘시즌 2’일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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