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만의 손님 ‘약대’ 모셔라”
  • 신하영 | 한국대학신문 기자 ()
  • 승인 2010.01.1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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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의 ‘약학대학 증원’ 발표 이후 전국 33개 대학 유치 경쟁 나서…‘신약 개발’에 심사 기준 맞춰질 듯

ⓒ일러스트 허경미

대학가가 약대 유치 전쟁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6월 보건복지가족부(이하 복지부)가 무려 28년 동안 묶여 있던 약대의 정원을 늘리겠다고 밝히면서, 전국적으로 33개 대학이 약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복지부가 결정한 약대 증원 규모는 3백90명이다. 대구·인천·경남·전남·충남 등 약대가 없는 지역에 각각 50명씩 배정된다. 나머지 1백40명은 경기도(100명)·부산(20명)·대전(10명)·강원(10명) 지역의 기존 약대에 할당될 전망이다. 이미 약대가 설치된 부산대·경성대·충남대·강원대에 정원 10명씩이 할당되기 때문에 나머지 3백50명을 놓고 33개 대학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되었다.

정원 100명이 배정된 경기도에서는 2~3개교가 신설 인가를 받을 전망이다. 정원 일부를 약대가 설치된 성균관대에 배정할 가능성도 크다. 성균관대는 교육과학기술부(약칭 교과부)에 증원 10명을 신청해놓은 상태이다. 만약 교과부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경기도에서는 총 90명의 정원을 놓고 동국대·아주대·한양대 등 9개 대학이 경쟁을 벌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경기도에 2~3개교, 대구·인천·경남·전남·충남 지역에 각각 1개교가 약대 신설을 인가받을 전망이다. 총 33개 대학이 격돌해 7~8개교가 ‘승자’가 되는 치열한 게임이다. 일각에서는 지역별로 할당된 정원을 반으로 쪼개 2개 대학에 나눠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역량이 부족한 대학에까지 약대 신설을 인가해줄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정원을 배정받을 대학은 많아야 10개교 안팎에 머무를 전망이다.

대학들은 약학대학설립위원회를 발족하고, 지역 사회의 지지 성명을 받는 등 약대 신설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노동일 경북대 총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약대 유치에 실패하면 낙동강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다”라고 읍소했다. 약대 유치전에 임하는 대학의 절박함을 잘 드러내주는 말이다.

이처럼 대학 간에 약대 유치전이 뜨겁게 전개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총 정원제로 운영되는 약학대학은 대한약사회 등 이익 단체의 동의 없이는 정원을 늘리기가 어렵다. 법학전문대학원의 총 정원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변호사 단체의 의견이 반영되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기존 20개 약대 1천2백10명 정원이 1천6백명 규모로 늘어나는 데에도 28년이 걸렸다. 우리나라에 임상·산업·연구 약사가 턱없이 부족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또, 정부가 국가 신성장 동력 분야로 신약 개발 부문을 선정했지만, 이를 담당할 연구 인력이 거의 없다. 2009년 대한약사회에 신고된 약사 2만8천7백명 가운데 제약 산업에 종사하는 약사는 전체의 4.6%인 1천3백45명에 머물렀다. 약대 증원 결정은 이러한 이유에서 내려졌고, 대학들은 이를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호기로 보고 있다. 

2011학년도부터 약학대학 학제가 6년제로 바뀌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그간 4년제였던 학제가 ‘2+4’체제로 바뀜에 따라, 일반 학부 2년을 마친 이공계 인재들이 대거 약대에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 입장에서는 △우수 인재 확보 △취업률 제고 △대학 인지도 상승을 동시에 노릴 수 있다.

대학의 연구력을 높이는 효과도 만만치 않다. 약대 신설을 노리는 고려대의 한재민 기획처장은 “기초 학문에 해당하는 생명과학과 응용 학문에 해당하는 의학을 연결하는 고리로서 약대 설립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기존 의·생명과학 분야를 갖춘 대학이 약대를 유치할 경우 연구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교과부 심사 2월 중 결론…의대·병원 갖춘 대학이 유리할 수도

현재 이공계에서 가장 관심을 받는 분야는 생명과학 분야이다. 그만큼 사회적 수요가 증대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지난해 5월 관훈포럼에서 약대 신설 계획을 밝힌 김한중 연세대 총장의 말에서도 확인된다. 김총장은 “생명공학 분야가 각광받고 있음에도 약학대학이 없어 대학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고려대와 공동 보조를 취해 현재 조성 중인 송도 캠퍼스에 약대를 신설하겠다”라고 밝혔다.

대학의 연구력도 끌어올리지만 국가적으로도 이른바 ‘돈’이 되는 분야가 신약 개발이다. 우리나라의 신약 개발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연간 수십 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신약이 하나도 없다. 전체 제약 산업 규모는 약 1백10억 달러로 화이자제약의 ‘리피토’ 하나의 매출액보다 조금 많은 수준이다. 때문에 대학 입장에서는 약대 유치 이후 신약 개발 부문에서 연구 성과를 내면, 특허 등록이나 제품화로 재정 확충까지 노릴 수 있다.  

교과부가 10월 발표한 약대 정원 배정 계획안에서도 약대 신설 심사 기준이 ‘신약 개발’에 맞춰져 있다는 분석이다. 약대 신설 평가 지표는 ▲교육·연구 여건과 역량(18%) ▲6년제 약대 설립 기반과 약학 관련 분야 발전 가능성(22%) ▲약학대학 운영계획(30%) ▲교수·학생 충원 계획(10%) ▲교육·연구 시설과 기자재 확보 계획(20%) 등 총 5개의 평가 영역으로 구성되었다.

배점의 40%를 차지하는 교육·연구 역량과 발전 가능성 등에서 승부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교과부는 심사 기준을 통해 이에 대한 구체적인 실적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대학들은 약대 설립을 신청하며 최근 3년간 이공계 분야 정부 연구비 수혜 실적을 제출했다. 연구비 수혜 실적은 해당 대학의 연구력을 가늠하는 지표이다. 아울러 이공계 교수들의 논문 실적도 요구했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연구 성과에 점수를 더 주겠다는 의지이다. 의대와 병원(교육·연구 여건)을 갖추고, 이공계 분야의 연구 실적까지 좋다면 약대 유치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대학가에 “의대와 부속병원을 갖춘 메이저 대학이 약대를 유치할 가능성이 크다”라는 관측이 돌고 있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교과부는 현재 약대정원 배정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있다. 심사위에는 약학·의학·이공계 전문가와 산업계 인사 등이 포함될 전망이다. 심사위원회는 1월 중순쯤 구성된다. 이후 1·2차 심사에는 약 한 달의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33개 대학 중 마지막에 웃을 대학이 어디인지는 2월 중순께면 가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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