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나무 카드’ 들고도 허기진 아이들
  • 강애란·이경희 인턴기자 ()
  • 승인 2010.01.12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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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 금액 적고 사용하는 데 제한 많아…방과 후 학습·복지 시설 프로그램에 결식 지원 보태는 방안 시급

ⓒ시사저널 임영무


서울이 온통 하얀 눈에 뒤덮여 있던 지난 1월5일 점심 무렵. 서울 구로동에 있는 한 중국음식점 앞에서 만난 초등학교 4학년생 김인성군(가명)은 잔뜩 풀이 죽어 있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자장면이 먹고 싶어서 중국집에 갔는데, 메뉴판을 보니 자장면 가격이 4천원이었다. 다른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급식 카드로는 한 끼에 3천5백원 이상을 먹지 못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돌아 나왔다”라는 것이다.

인성이는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곳에서 삼각 김밥 하나와 흰 우유로 점심을 대신했다. 편의점에서도 인성이가 먹을 수 있는 품목은 제한되어 있었다. 한참 먹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이지만 인성이가 선택할 수 있는 음식은 별로 없었다.

인성이 같은 결식 어린이를 돕기 위한 ‘무료 급식 제도’는 배고픈 아이들의 허기를 얼마나 채워주고 있을까. 서울시는 지난해 7월부터 결식 어린이에 대한 무료 급식을 위해 종이 식권 대신 꿈나무 카드(전자카드)를 도입했다. 종이 식권을 사용할 때 느끼는 수치심을 덜어주겠다는 의도이다. 하루 한 끼에 3천원이던 지원 금액도 3천5백원으로 올렸다. 꿈나무 카드는 결식 어린이가 거주하는 지역의 주민자치센터에서 발급한다. 지원은 어린이들의 가정 환경에 따라 하루에 한 끼나 두 끼가 지원되는 경우가 있고, 세 끼 모두를 지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무료 급식을 받는 배곯는 아이들의 사정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현재 서울 시내 결식 어린이는 4만6천여 명. 이 중 67%가 꿈나무 카드를 이용하고 있다. 급식 카드 이용이 가능한 곳은 서울 시내 음식점과 편의점 그리고 제과점 등 2천3백여 곳(2009년 12월 말 기준)이다.

꿈나무 카드를 시행한 지 6개월째가 되면서 급식 카드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꿈나무 카드의 사용 금액이 최대 이틀밖에 적립되지 않아 급식 어린이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이전의 종이 쿠폰은 사용 기간이 한 달이어서 쿠폰 개수를 임의로 조정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런데 꿈나무 카드는 1일 사용 한도가 3천5백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사용 횟수도 1회로 제한되어 있다. 최대 결제액도 이틀분인 7천원이다. 그나마 이 기간을 넘기면 돈이 자동 소멸된다.

서울시 전자민원 홈페이지에도 사용액 기간을 한 달로 연장해달라는 민원이 올라와 있다. 기초생활 수급자이자 급식 어린이를 둔 엄마라고 소개한 민원인은 “최대 이용 가능한 7천원으로는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대로 섭취할 수 없다. 먹고 싶은 음식이나 질 좋은 음식을 먹이기 위해서는 한 달 사용 금액을 임의로 사용할 수 있게 해달라”라고 요구했다. 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금액을 소멸시키는 것도 고쳐달라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청소년담당관 이정희 팀장은 “어린이들이 매일 끼니를 챙겨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최대 적립 기간을 이틀로 제한했다. 이틀 이상으로 기간을 연장할 경우 어린이들이 상당 기간을 굶다 돈을 모아 한 번에 폭식을 하는 패턴이 반복될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이 제한되어 있고, 음식 메뉴도 한정되어 있다 보니 영양 결핍 등이 우려되고 있다. 일례로 24시간 편의점인 훼밀리마트에서는 언제든지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먹을 수 있는 품목이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우유 등으로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음식점 체인 김밥천국의 경우 대체로 김밥류는 1천~2천5백원이어서 급식 카드로 먹을 수 있다. 분식류는 라면 종류가 2천~2천5백원이지만 식사류는 거의 4천원이 넘었다. 돈까스류도 4천~5천원대, 죽류도 4천원이 넘었다(지점마다 다름). 따라서 한 끼 급식비(3천5백원)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김밥과 면 종류 등에 한정되어 있다. 만약 3천5백원 이상의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이틀 중 한 끼를 굶어야 할 판이다. 배달이 되지 않는 것도 불편한 점이다. 종이 식권을 사용할 때는 배달이 가능해서 식당에 찾아가지 않아도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다. 식당에서 먹을 때보다는 수치심도 덜했다. 하지만 꿈나무 카드로 바뀌면서 일일이 식당에 찾아가야 한다. 꿈나무 카드 가맹점 중에는 카드 단말기를 들고 배달 오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앞에서 예를 들었던 김인성군도 사용 기간이 지나 카드를 사용하지 못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했다. 인성이는 “설날 연휴에는 문을 연 음식점이 없어 사용하지 못한 적도 있다. 또한, 요즘은 날씨가 추워져 밖에 나가기가 싫다. 이틀이 지나면 카드 사용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 아깝다”라고 말했다. 

혼자 식당 찾아야 하는 아이는 잘 쓰지 않아

▲ 서울시에서 저소득층 자녀에게 발급해주고 있는 무료 급식 카드인 ‘꿈나무 카드’를 주로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구매하는 데 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사저널 박은숙

서울 마포구 ㅈ초등학교에 다니는 이새롬군(가명·10)은 기초생활 수급자로 카드를 발급받았지만 사용을 잘 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새롬이는 부모님이 이혼한 후 어머니와 단둘이서 살고 있다. 어머니는 소일거리로 근근이 월세와 생활비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새롬이의 식사를 챙길 수 없는 상황이다. 새롬이는 “음식점에서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것이 부끄러워 잘 가지 않는다. 만약 사러 가게 되어도 포장을 해서 집에 가지고 온다”라고 말했다. 

꿈나무 카드는 어린이의 수치심을 줄여주고 사용 가능한 음식점을 확대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카드 사용에 따른 문제점 역시 노출되고 있다. 결식 어린이 지원을 위한 제도에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해 서울시 청소년담당관인 이정희 팀장은 “꿈나무 카드의 문제점은 계속 수정·보완하고 있는 중이다. 꿈나무 카드가 발급되기 전인 지난해 4월부터 6월까지 임시 시행하는 과정에서 문제점을 발견하고 보완한 후 발급했으며, 그 후에도 서울시의 평가담당관을 통해 문제점을 시정하려고 노력했다”라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전문대학원의 정익중 교수는 서울시의 지원 확대 노력은 인정한다. 정교수는 꿈나무 카드의 가격이 적게 책정된 것도 문제이지만 제공하는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교수는 “어린이의 결식 상태를 보면 그 가정의 문제점을 훤히 알 수 있다. 가정이 안고 있는 결핍의 문제를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이는 데 급급한 시스템은 근시안적인 해결책이다. 그냥 밥을 주기보다 어떤 서비스나 프로그램, 예컨대 방과 후 학습이나 복지 시설의 프로그램 등을 받다가 자연스럽게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교수는 또 “결식 어린이에 대한 지원은 빈곤 가족에 대한 지원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가장 효과적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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