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오른 3D 콘텐츠 산업 새 우주가 열린다
  • 김진령 (jy@sisapress.com)
  • 승인 2010.01.12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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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영화 <아바타>에 대한 열기는 돌풍을 넘어서 거대한 태풍으로 바뀌었다. <아바타>의 성공은 CG 기술력에서 아시아 최고임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에도 크나큰 자극이다. <아바타>가 촉발시킨 3D 콘텐츠에 대한 수요


# 1

외국계 기업의 부장인 윤명원씨(38·여)는 지난 1월9일 아침 8시에 일곱 살짜리 아들, 남편과 함께 조조 영화를 보러 갔다. 1년에 영화 한 편도 볼까 말까 하던 그녀가 영화를 조조로 본 것도 대단한 일이지만, 같은 영화를 두 번이나 본 것은 그녀 인생의 일대 사건이나 다름없었다. 영화 제목은 <아바타>. 12월 말에 윤씨는 직장 동료의 추천으로 <아바타>를 가족과 함께 관람했다. 가족들은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쉽게도 그녀가 본 것은 2D(Dimensions, 차원) 버전. ‘3D가 그렇게 좋다’라는 말에 호기심을 참을 수 없었던 그녀는 3D 효과를 극대화시킨다는 아이맥스 상영관에서 또 보고 싶었지만, 수도권에 3곳밖에 없는 아이맥스 상영관은 이미 한 달 정도는 예매가 꽉 차 있었다. 그녀가 찾아낸 대안이 아침 8시 조조였다.

#2

국내 영화계에서 특수효과의 대표 주자로 떠오르는 모팩스튜디오의 장성호 대표는 <아바타> 개봉 첫 주에 직원 전원을 이끌고 왕십리에 있는 아이맥스 전용관에서 <아바타>를 관람했다. <해운대>나 <형사> 등의 작품을 통해 한국 영화의 컴퓨터그래픽(CG)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주인공으로 꼽히는 장대표는 “<해운대>가 수류탄이고, <2012>가 네이팜탄이라면 <아바타>는 핵폭탄이다.
<해운대>가 욕조의 물이라면 <2012>는 수영장이고, <아바타>는 태평양이다. 나는 바다를 지금 처음 본 것이다”라며 <아바타>의 컴퓨터그래픽 규모와 완성도에 놀라움을 표시했다.

#3

<아바타>가 개봉 20일 만에 7백만 관객을 동원할 때 <시사저널>은 영화 예매 전문 사이트인 맥스무비에 흥행 추이와 예매 관객에 대해 분석해달라고 요청했다. 맥스무비는 외화 처음으로 1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것은 무난해 보인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오히려 관심사는 1천2백만명의 관객을 넘겨 역대 흥행 1, 2위를 기록한 <왕의 남자>와 <괴물>의 기록에 얼마만큼 바짝 다가서느냐, 또는 넘어설 것이냐 여부이다.

맥스무비의 분석에 따르면 <아바타>는 개봉 4주차에도 예매율의 낙폭이 크지 않고 여성 관객이 50%를 넘어서면서 갈수록 증가하고, 1년에 영화 1편을 본다는 40대 이상의 관객이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패턴은 전형적인 ‘1천만 관객 영화’의  흥행 추이와 비슷하다.

‘돌풍’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아바타 열기’의 근원은 무엇일까. 영화계뿐만 아니라 산업·문화 지도까지 바꿀 만한 파괴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는 <아바타>의 성공은 <아바타> 이전과 그 이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커다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일부 보수파들이 “이라크 전쟁을 비판한 정치 영화이다”라고 비판하면서 정치 논쟁까지 일고 있다.

 <아바타>는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른 흥행 속도를 보이고 있다. 세계 박스오피스를 집계하는 ‘박스오피스모조닷컴’에 따르면, 1월8일 현재 11억3천만 달러(약 1조2천8백억원)의 매출을 올려 18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던 <타이타닉>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 영화 전문가들은 <아바타>가 조만간 <타이타닉>의 매출 기록을 앞지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타이타닉>도 캐머런 감독의 작품이다. 캐머런 감독은 세계 최고의 흥행 실적을 올린 두 작품을 모두 연출함으로써 세계 영화사에 큰 획을 그었다. <아바타>는 이미 제작비를 제외하고 두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등 제작사의 수입 또한 엄청날 것으로 보인다.

일단 <아바타>는 기존의 3D 기술을 활용한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평가된다. 이미 3D 기술을 사용한 영화인 <폴라익스프레스>나 <베오울프>는 전면적으로 3D를 도입하고 사람의 겉모습을 재현하는 데 공을 들였지만 ‘이물감이 느껴진다’ ‘기괴하다’라는 평가를 받았을 뿐, 상업적인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나비라는 외계인을 CG로 처리해 주연급으로 등장시킨 <아바타>에서는 ‘기괴하다’라는 반응은 전혀 없고 ‘신기하다’ ‘낯설지 않다’라는 반응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CG 전문가인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노준용 교수는 “사람들이 입체 영화는 어지럽고 색감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아바타>를 보고 난 뒤에는 화면도 예쁘고 두 시간 반짜리 영화인데도 어지럽지 않다는 점에 놀라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영화평론가 김봉석씨는 “<아바타>는 2D로 만들어졌다면 그저 그런 ‘재미있는 영화’ 정도로 끝났을 익숙한 소재인데, 3D로 만들어지면서 관객에게 완전히 새로운 체험을 선사했다. 형식이 내용까지 규정한 경우이다”라고 분석했다.

새로운 기술과 형식으로 무장하고 있음에도 관객의 거부감을 없애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의 대표적인 특수효과 회사인 모팩의 장성호 대표는 “캐머런의 영화에는 언제든 모든 기술이 이야기를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기술만 놓고 보아도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라고 덧붙였다. 최첨단의 기술력을 선보였지만 결코 기술을 과시하려고 장면을 설계하고 연출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장대표는 “흥행에 성공한 <국가대표>의 마지막 점프 장면은 영화 제작에서 CG의 모범 답안이다”라고 말했다. 그 장면에 쓰인 기술이 고난도는 아니지만 그 장면에 쓰여 감동을 배가시키며 영화 자체의 완성도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얘기이다. 즉, 어떤 장면에 어떤 효과를 쓰는지 결정하고 설계하는 연출력과 안목이 제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 테크놀로지 제일주의자였다면 그의 작품은 여전히 아카데미에서 특수효과상, 음향상만 받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CG로 범벅한 타이타닉호의 침몰 장면을 재현한 <타이타닉>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탔다. 작품에 대한 비전과 연출력이 CG 만능 시대에도 여전히 으뜸가는 가치인 것이다. 그러면 국내에서는 <아바타> 같은 3D 영화나 CG가 주가 되는 판타지 영화 장르는 나올 수 없을까.

국내 영화도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흥행작 <해운대>나 최근 흥행작 <전우치>는 시각적 쾌락의 꼭짓점을 철저히 CG 효과에 의존한 판타지물이다. 또, 국내 CG 기술력은 아시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고, 일본이나 중국의 영화 제작에 초청받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3D 영화를 보려면 올해 말이나 내년까지 기다려야 할 듯하다. 현재 실사 부분을 뉴질랜드에서 촬영 중인 <한반도 공룡>이나, 괴물 캐릭터 작업 등 기초 작업이 진행 중인 <제7광구>, 시나리오 작업이 거듭되고 있는 <로보트 태권V> <괴물 2> 등이 대기하고 있다. 이런 영화를 제작하는 데 새해 벽두에 돌출한 <아바타>의 상업적 성공은 펀딩 등에서 우호적인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또, 정부에서 3D 콘텐츠 사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는 점도 올해 안에 결과물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아직 3D를 통한 성공적인 사업 모델이 없다는 점, 영세한 자본 규모 등 현실적인 문제도 많다. 박물관 등에 3D와 4D 영상물을 제작해 납품하는 여금스튜디오의 유동환 대표는 “대형 프로젝트를 통해서 협업도 하고 기술력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원천 기술도 확보하고 인력도 키울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진작부터 3D 영화 제작이 시도되었지만, 한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감독은 교수로 가고, 팀장급은 학원으로 가는’ 풍토여서 프로젝트의 연속성이나 기술력이 쌓일 바탕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 이렇다 할 일자리도 없는데 애니메이션 학과가 전국에 100개가 넘는 기형적인 구조이다. 때문에 CG 기술 개발 등 원천적인 부분부터 다져나가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물론 “기술력보다는 연출력 등 크리에이티브 능력이 먼저이다(모팩의 장대표)”라는 지적도 많았다.

정부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해 산학 협동 모델을 통해 기술도 개발하고 그 기술을 영화에 적용시키는 결과물까지 끌어내려고 하고 있지만, 아직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아바타>의 성공은 국내 영화 산업 종사자들에게 3D 콘텐츠 개발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과제로 삼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사나 극장은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관객은 더 새로운 자극과 시각적 쾌락을 위해 <아바타> 같은 3D 콘텐츠를 찾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뿐 아니라 전자업계에도 ‘기회’…‘3D 혁명’ 가속화할 듯

<아바타>가 촉발시킨 3D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영화계의 테두리를 넘어 산업계 전반으로 번질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최근 IT업계의 화두인 아이폰 이슈와 비슷한 면이 있다. 아이폰은 그동안 통신사와 단말기 회사들의 담합으로 묶여 있던 모바일 인터넷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욕구를 폭발시켰다. <아바타> 또한 가능성으로만 머무르던 3D 산업의 미래를 현실화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당장 영화 스튜디오에서는 3D 영화 제작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극장업자들은 매표 수입이 2D 영화에 비해 50% 이상 많은 3D 상영관을 확보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 영화계보다 더 흥분하고 있는 곳은 전자업계이다. 최근 10여 년간 브라운관→평판→HD→LED로 마케팅 캠페인 구호를 바꿔가면서 가격 인상과 수요 확대를 쥐어짜냈던 세계 전자업계에 3D TV는 브라운관 TV보다 5~6배 비쌌던 평판 TV의 등장만큼이나 획기적인 수익 증대 아이템이다. 이들이 판매 신장과 매출 증대를 위해 3D 콘텐츠의 보급에 열성적으로 나설 것이기 때문에 문화와 산업 전반에 3D 붐이 거세게 일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3D의 우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3D 혁명의 파급 효과를 극대화시킬 것이다. 오는 3월 중학교 진학을 앞둔 김금태군은 방학 첫날 친구와 둘이 영화관을 찾아 조조로 <아바타>를 보았다. 부모의 동반 없이 친구와 영화관을 간 첫 번째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본 영화 중 제일 재미있었고, 화면이 입체적으로 보여서 좋았다”라는 것이 김군의 소감이다. 지금 10대 초반의 김군 같은 소비자들은 향후 20년 이상 문화 오락 콘텐츠의 핵심 소비자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들은 집에서 3D TV로 스포츠 경기를 시청하고, 휴대 단말기로 3D 동영상을 보고, 3D 대형 화면에 의자까지 흔들리며 오감 체험을 선사하는 4D 영화관을 상시적으로 이용할 첫 세대로 기록될 것이다.

 


<아바타>에 대한 궁금증 풀이

▶나비족 손가락은 왜 4개?

사람같이 생긴 나비족은 손가락이 4개이다. 인간과 나비족의 혼혈인 아바타 제이크 설리의 손가락은 5개이다. 인간과 혼혈을 통해 나비족이 손가락 하나를 더 받은 셈이다. 의인화된 캐릭터에서는 손가락을 4개만 그린다. 서울올림픽의 상징인 호돌이도, 미국 안방을 점령한 만화 캐릭터 심슨도 손가락이 4개뿐이다. 왜 캐릭터만 4개냐라는 질문에 관련 전문가들도 ‘원래 그렇다’라는 수준의 답변만 한다. 사람과 사람이 아닌 캐릭터의 분수령이 다섯 번째 손가락인 셈이다.

▶나비족의 육체적 교감은?

나비족은 머리채 끝에 꽃술처럼 달려 있는 부분을 통해서 짐승과 나무, 세상 만물과 교감한다. 호사가들은 극 중 제이크 설리와 네이트리가 초야를 지내는 장면에서 둘이 어떤 교감 의식(?)을 치를지 기대했지만 12세 관람가를 택한 캐머런 감독은 두 캐릭터가 꼭 끌어안는 장면으로 끝을 맺었다. 최근 영국의 한 대중지에서 향후 <아바타> DVD가 발매될 때 ‘삭제된 베드신’을 수록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캐머런 감독의 작품이 DVD로 발매될 때 삭제된 내용이 추가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카이스트 비주얼 미디어 랩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의 노준용 교수는, 할리우드에서 <슈퍼맨 리턴> <해피 피트> <나니아 연대기> 등에 참여한 CG 소프트웨어 개발 전문가이다. 그에게서 국내 3D 기술에 대해 들어보았다.

국내 CG 기술은 <디워>에서 보듯 굉장한 완성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3D 기술은 이제 시작 단계이다. 다행히 정부에서 국책 프로젝트로 지정하고 예산을 배정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이 시작되었다. 조만간 이를 활용한 콘텐츠가 동시에 제작될 것이다.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를 외국산에 의존해서 쓰고 있기 때문에 현장의 요구를 바로바로 수용해서 새로운 작업을 하는 데 문제가 있다. 필요한 표현을 위한 상용 프로그램이 없으면 숫제 그런 표현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그래서 먼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난 2007년부터 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카이스트, 매크로그래프 등이 함께 진행한 민관 합동 프로젝트 ‘디지털 크리쳐’ 작업은 오는 4월에 만료된다. 그 작업 성과가 <자명고> 등의 드라마에도 일부 쓰였고, <괴물 2>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아바타>의 CG 작업을 주도한 웨타디지탈과 카이스트가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 얼굴 표현을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도 지금 한창 개발이 진행 중이다. 올리브 스튜디오가 제작하고 있는 <한반도 공룡>이라는 작품은 올 연말쯤 개봉될 예정이다. 국내 첫 상업용 장편 3D 영화로 기록될 것으로 보이는 <한반도 공룡>에는 카이스트 개발진이 기술 개발에 참여해 특수효과를 위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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