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 기사 폭행, 성접대·뒷돈 요구…청와대 행정관들, 왜 그랬을까
  • 김지영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0.01.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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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2년간 대통령실 직원 징계 내역 단독 입수 / 모두 8건으로 10명 징계…참여정부 수준 뛰어넘어


이명박 정부 출범 원년이었던 2008년 7월1일, 청와대 연설기록비서관실의 배 아무개 행정관이 이명박 대통령을 비하하고, 자료를 외부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감봉 1개월의 징계 조치를 받았다. 현 정권 들어 청와대 직원이 자체 감사를 통해 징계받은 첫 사례였다. 징계 사유는 품위 유지 의무 위반. 징계 기간이 풀린 다음 배행정관은 한 공기업으로 전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1월7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당시 배행정관이 근무를 태만히 해서 징계를 받았고 본인이 원하는 근무지로 전출되었다. 별 문제도 아니며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라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최고의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되는 청와대가 직원의 징계 조치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시사저널>은 ‘대통령실(비서실·경호처) 직원 징계 현황 자료’를 단독으로 입수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지난해 12월11일까지 임기 2년 동안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처 직원들은 8건의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되어 10명이 징계를 받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가운데 비서실의 경우 모두 6건의 비위 사실이 드러나 7명이 의원 면직되는 등 징계 조치를 받았다. 특히 2008년에는 앞서 언급했던 ‘배행정관 징계’ 한 건만 있었던 데 반해, 2009년에는 5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비서실 중 방송통신비서관실 소속 직원들은 3명이나 징계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호처는 2건으로 3명이 감봉 등의 철퇴를 맞았다. 2009년에 일어난 일이다(표 참조).

문제는 이처럼 MB 정부 초기만 해도 바짝 긴장했던 청와대 직원들이 시간이 가면서 서서히 나사가 풀린 듯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이대통령이 이런저런 회의 석상에서 공직자의 겸손한 자세를 자주 강조했다 해도 ‘안에서 새는 바가지’를 막지 못했던 셈이다. 일부 징계 사례들은 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지만, 이번에 입수된 자료는 아직 세간에 공개되지 않았던 내용들도 담겨 있어 주목된다.

우선 청와대 비서실의 징계 내역부터 들여다보면, 2009년 10월은 ‘최악’이었다. 비서실 전체 징계 건수 6건(7명) 가운데 4건(4명)이 이 시기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이대통령이 정운찬 국무총리 내정 등 ‘9·3 개각’으로 강력한 국정 운영을 예고한 지 한 달 정도 지난 시점에 봇물 터지듯 사건·사고들이 잇따라 터졌다.

성폭행·대통령 비하·욕설 소란 등 이유도 각양각색

▲ 청와대 전 행정관들의 성매매 혐의가 불거진 지난해 4월 여성단체들이 강한 처벌을 요구했으나, 해임이나 직위 해제 보다 가벼운 의원 면직 처분에 그쳤다. ⓒ연합뉴스

기획재정부에서 파견되어 청와대 인사비서관실에 근무하던 이아무개 행정관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택시 기사와 요금 문제로 시비를 벌인 끝에 폭행 혐의로 경찰에 입건되었다. 그는 ‘품위 유지 의무 위반’으로 10월13일 기획재정부로 전출되었다. 부서 전출 조치는 경고보다 더 수위가 높은 징계에 해당한다. 이 사건은 이후 검찰이 불기소 처분하면서 마무리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불과 나흘 뒤인 10월17일에는 총무기획관실 소속 기능직이었던 송 아무개씨가 성폭행 혐의로 의원 면직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30대인 송씨는 맞선을 본 뒤 한 달 정도 교제해 온 20대 여성을 전날(10월16일) 성폭행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후 성폭행당한 여성이 “송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라며 선처를 바랐으나 강간치상은 친고죄가 아니기 때문에 송씨는 경찰에 입건되어 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통신비서관실에서 근무한 박 아무개 행정관은 KT, SK, LG 등 통신 3사 임원들에게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KoDiMA, 코디마) 출연금조로 2백50억원을 요구했다는 의혹에 휘말려 큰 물의를 빚었다. 그는 정무수석실로부터 자체 조사를 받은 뒤 친정인 방송통신위원회로 10월19일 복귀 조치되었다. 징계 사유는 ‘업무 조정 미숙’이었다. 당시 코디마 회장은 이대통령의 언론 특보 출신이었던 김인규 현 KBS 사장이었다. 야권에서는 “‘청와대나 방통위 윗선의 개입’이 없이 박행정관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출연금을 요구했겠느냐”라며 배후에 누군가 있을 것으로 강하게 의심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자체 조사를 통해 박행정관의 ‘단독 비위 행위’로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인사는 “청와대가 행정관 한 명의 ‘오버액션’에 불과하다고 서둘러 매듭지었지만, 아직도 ‘도마뱀 꼬리 자르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징계 수위는 대부분 경고·의원 면직 등 ‘솜방망이’에 그쳐

고용노사비서관실의 이 아무개 비서관(1급)은 다른 비서관실과 원활하게 업무가 조율되지 않자 10월6일 해당 비서관실로 찾아가 욕설을 하고 소란을 피운 혐의를 받았다. 뒤늦게 소란 사실을 알게 된 이대통령은 이비서관을 직접 불러 호되게 질책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대통령은 10월1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서관이든 행정관이든 청와대 직원들의 불미스러운 행동은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엄중하게 행정적 징계 조치를 취하라”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이비서관은 품위 유지 의무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10월23일 ‘경고’ 조치를 받는 데 그쳤다. 당시 청와대 일각에서는 “이비서관이 이대통령과 같은 고향(경북 포항) 출신으로 대선 당시 핵심 조직이었던 선진연대에서 활동한 ‘MB 파워맨’이어서 가벼운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청와대 행정관들의 성 접대 의혹 사건도 징계 리스트에 올랐다. 방송통신비서관실 장 아무개·김 아무개 행정관 등은 케이블 방송 업체인 티브로드 관계자로부터 서울 신촌의 한 룸살롱에서 술 접대를 받았고, 여종업원의 성을 매수한 혐의를 받았다. 장행정관은 성 매수 사실 등을 바로 시인했고 사건이 터진 지 이틀 만인 3월27일 ‘성매매 알선 등의 사유’로 의원 면직되었다. 반면에 혐의 사실을 완강하게 부인했던 김행정관은 방통위로 전출되었다가, 지난해 9월14일 의원 면직되었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당시 사건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해임이나 직위 해제 등 중징계를 내리는 것이 적절한 조치였으나 의원 면직이라는 솜방망이 징계에 그쳤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다음으로 경호처의 징계 내역을 들여다보자. 모두 2건에서 3명이 징계 처분을 받았는데, 한 건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서거와 관련해 두 명이 징계 조치된 것이었다. 경호처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인 지난해 7월 징계위원회를 열어 봉하마을 경호팀의 총책임자였던 주 아무개 경호부장에게 ‘감봉 3월’, 신 아무개 경호관에게 ‘견책’ 조치를 내렸다. 두 사람 모두 ‘성실 의무 조항’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별건으로 홍 아무개 경호관이 ‘성실 의무 및 복종 의무 위반’으로 감봉 2월 조치를 받았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드러나지 않았다. 경호처 관계자는 “경호처 직원들의 징계 내역은 보안 사항이기 때문에 밝힐 수 없다”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의 추세대로라면 MB 정부의 청와대 징계 건수는 이전 노무현 정부를 능가할 것으로 보인다. <시사저널>은 참여정부 임기 말에 대통령 비서실에서 작성한 내부 감찰 결과 자료를 입수해 본지 947호(2007년 12월17일자)에서 보도한 바 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2007년 6월까지 모두 9건의 비위 사실이 적발되어 14명의 직원들이 징계 처분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경호실 징계 내역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이대통령 임기가 2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벌써’ 비서실에서 모두 6건으로 7명이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런 추세라면 현 정권 말기에는 건수뿐만 아니라 징계 대상자 숫자 역시 전 정권의 숫자를 너끈히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임기 3년차로 접어드는 청와대 수뇌부가 직원들의 기강을 다잡아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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