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항공 추락에 경고음은 없었다
  • 도쿄·임수택 | 편집위원 ()
  • 승인 2010.01.19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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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대 항공사, 안이하고 방만한 경영 이어오다 파산…회생 숨통은 텄지만 구조조정 과정 순탄치 않을 듯

▲ 지난 1월8일 일본 나리타 국제공항에 줄지어 서 있는 일본항공의 여객기들. ⓒ연합뉴스


부실 기업 일본항공(JAL)의 구원투수로 교세라 명예회장인 이와모리 가즈오 씨가 선발되었다. 이와모리 명예회장은 교세라와 KDDI를 창립해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주인공으로 젊은 기업인들로부터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항공업계 경험이 없는 그가 CEO로 결정된 이유이다. 하토야마 총리는 이와모리 명예회장에게 일본항공을 살리는 것은 곧 일본 경제를 살리는 것이라며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지난 1월12일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일본항공 주식은 하한가를 기록하며 37엔으로 곤두박질쳤다. 일본기업재생지원기구에서 일본항공의 주식을 100% 감자하고 상장을 폐지하기로 하자, 휴지 조각이 되기 전에 단 한 푼이라도 건지고자 하는 주주들이 필사적으로 매도했다. 2002년 일본에어시스템(JAS)과 경영을 통합한 이후 가장 낮은 가격을 기록했다. 지난 12일은 8천억 엔(9조6천억원)에 이르는 적자투성이 일본항공이 심판을 받는 날이었다. 55년 만에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듯이 그동안 방만하고 안이하게 경영해 온 일본항공도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일본항공의 상장을 폐지하는 방침은 좀처럼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일본 경제에 찬물을 끼얹었다.

세계 3위의 매출을 자랑하던 일본항공이 이처럼 추락한 원인은 무엇일까? 일본항공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연합군이 민간 항공의 수송 금지 정책을 펴면서 민관이 출자해 설립되었다. 1987년에 완전히 민영화되었다. 이 시기에 항공운수업계는 글로벌화하면서 기업 간에 합병·매수가 이루어져 항공운수산업은 일본항공과 전일본공수(ANA)의 양대 체제로 자리를 굳혔다. 이 과정에서 일본항공은 일본에어시스템을 합병·매수했다. 국내선에 강점을 가지고 있던 일본에어시스템과 합병해 세계 최대의 항공 기업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일본에어시스템의 강성 노조 탓에 원활하게 경영을 통합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일본에어시스템이 무리하게 국제선을 확장하면서 발생한 3천억 엔의 부채로 인해 경영만 악화되었다.

또, 정부 주도로 항공 산업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경영진이 일관성을 보이지 못하고 항공 연료의 선물 거래, 호텔 사업 확대 등 방만한 경영을 하면서 각각의 사업이 적자를 면치 못한 채 엄청난 손실을 발생시켰다. 여기에는 전문성이 결여된 경영자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또, 구태의연한 노조의 행태도 경영 악화를 부채질하는 원인이 되었다. 반(反)회사 성격인 노조가 7개나 존재하는 기형적인 구조는 일본항공을 서서히 추락시켰다. 만성 적자의 원인이 인건비 때문이 아니라며 이를 삭감하는 데 부정적이었던 노조의 태도가 문제를 더 키웠다. 일본 기업 중 최고인 급여 체계 또한 일찍이 만성 적자를 예고했다. 나아가 퇴직자들은 연금만으로 연간 6백만 엔(7천2백만원) 정도를 받아 젊은 샐러리맨들의 평균 근로 소득보다 많았다. 경영자와 노조의 문제 외에도 세계 최대의 항공 사고인 123 추락 사고 등 잦은 사고로 고객의 신뢰를 잃게 된 점도 일본항공의 몰락을 가속화시킨 요인이다. 지방 경제 활성화와 공공 투자라는 핑계로 채산성이 떨어지는 공항을 만들고 취항하게 한 것도 적자 행진을 부추겼다. 

7월 참의원 선거에도 적지 않은 영향 미칠 가능성

이제 일본항공의 재이륙 플랜의 큰 틀은 결정되었다. 일본기업재생지원기구의 지원을 받아들여 법적 정리에 들어갔다. 그동안 공적자금 투입에 장애가 되었던 퇴직자 기업연금을 삭감하는 것에 대해서도 동의를 얻었다. 기업재생지원기구는 주식을 100% 감자해서 상장을 폐지하고 전체 종업원 4만7천명 중 1만5천7백명을 감원하는 것 등을 통해 3년 이내에 흑자 기업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 8천9백억 엔에 이르는 기업연금 제도를 개선해서 악화된 재무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퇴직자의 경우는 30%, 현역의 경우는 50%가 줄어들 예정이다. 해외의 27개 지점을 폐쇄하고 그간 방만 경영의 상징이었던 자회사 1백10사를 55사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기업연금을 삭감하는 데는 동의를 얻었지만, 구조조정이 순탄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먼저 1만5천7백여 명에 달하는 감원 문제이다. ‘평생 고용’ 인식을 전환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  특히 CEO로 새로 임명된 이나모리 가즈오 씨는 고용 관계를 중시하는 기업인이다. 나아가 노조의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으로서는 정치적 기반을 흔드는 일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이유는 오는 7월에 실시될 참의원 선거이다. 민주당은 단독 과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방 노선 폐지는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기업연금 문제도 전·현 직원들이 제도를 개선하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결정 과정에 많은 이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2009년 3월 결산 시점에 퇴직금 채무가 8천9억 엔에 이르는데, 이 중 당장 3천3백14억 엔의 적립금이 부족하다. 어느 것 하나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일본항공의 문제는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더불어 민주당 정권의 가장 골칫거리 중 하나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일본항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 왔다. CEO가 새로 결정되었고 기업연금 제도를 개선할 명분도 만들었다. 55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루었듯이 일본항공도 대대적인 교체를 시작했다. 하토야마 총리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 구조조정의 성패는 오는 7월의 참의원 선거와 하토야마 정권의 향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구조조정의 성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일이다. 1조 엔 이상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데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간 5천만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다는 공익성, 해고로 인한 고용의 악영향 방지, 관광 입국 등 일본항공을 살려야 하는 나름의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직원들의 정신 상태와 조직 행태에 대해 일본 국민들은 크게 실망했다. 일본항공의 추락에는 경고음이 없었고, 위험 징후는 무시되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대마불사라는 안이한 생각이 화를 키웠다.

일본에서는 지금 이번 기회에 항공 정책에도 메스를 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대상에는 수요가 적은 지방 공항을 만들어 취항하게 한 항공 정책 당국도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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