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수신료 인상하려면 ‘중립성’ 먼저 인정받아라
  • 김창룡 | 인제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
  • 승인 2010.01.1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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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의 권력 도구화’ ‘정파적 보도’ 등 오해부터 빨리 불식시켜야

▲ 1월12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에서 김인규 KBS 사장(왼쪽)과 최시중 방통위원장(오른쪽)이 나란히 서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2010년 상반기, 공영방송 KBS는 수신료를 인상하든가, 수신료 인상을 거부당하든가 할 수밖에 없는 양자택일의 기로에 놓였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수신료 5천~6천원 인상’안을 직접 거론했다. 그러나 대표적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는 최근 수신료 인상은커녕 아예 수신료 거부 선언을 하며, 시청자들의 동참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일촉즉발의 충돌이 예상된다.

KBS가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억제되어온 수신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국내 언론학자들 가운데서도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편이다. 다만, 지금 수신료 인상에 반대하는 박변호사를 비롯한 방송 관련 학자들은 ‘방송의 권력 도구화’와 ‘정파적 보도’에 주목한다. 이들은 공익적 목적을 위해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토대 위에서 공정한 보도를 하는 것이 생명인 공영방송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고 권력을 위한 왜곡·홍보 방송에 앞장서고 있다고 본다. 이는 국민의 뜻에 반하는 처사이기 때문에 굳이 수신료를 인상할 필요도, 낼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보도의 가장 큰 혜택을 보는 대통령에게 수신료를 직접 받으라는 주장까지 제기할 정도이다.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대통령을 향해 직접 수혜자이니까 ‘수신료를 내라’라고 주장하는 이면에는, 그만큼 지금의 공영방송에 대한 불만이 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과 공영방송의 무조건적인 대립각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너무 가까워 유착하는 의혹이 있어도 시민들이 배척하게 되는 법이다. 일부 언론 및 시민단체가 지적하는 방송의 권력 도구화는 어느 정도 믿을 수 있을까. 공영방송의 정체성도 회복하고 수신료도 인상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 공영방송은 권력에 대한 비판·감시 기능이 존중되며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1986년 11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KBS 수신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에 참여를 호소하는 ‘목회 서신’을 발표했고, 이는 전국적인 국민운동으로 비화되었다. “공영방송 KBS가 ‘전두환 정권의 국민 지배 도구’로 전락했다”라는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공영방송의 정체성은 과거의 아픈 역사 속에서 확립되었다. 권력 홍보가 아닌 권력 감시라는 공영방송 본연의 정체성을 회복하지 못하게 되면 수신료 인상은 큰 장벽에 부딪칠 수 있다.

둘째, MBC와 KBS의 사장·이사장·이사 등 방송사 경영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의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일이다. 비록 과거 특정 선거 캠프에서 일을 했거나 특정 정당 출신이라 하더라도 공영방송사 사장·이사장·이사로 임명받는 그 순간, 권력과의 결별을 선언해야 한다. 영국의 대표적 공영방송사 BBC에서도 이런 일이 가끔 있지만, 그들은 BBC 경영위원회 이사로 임명되는 순간, 스스로 정치권과의 단절을 선언하는데, 이는 불문율이라고 한다.

‘공영방송’이 중심 잃으면 국민에게 큰 피해

그러나 한국의 방송사 사장·이사장·이사 등은 마치 임명권자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듯한 행태로 간혹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스스로 해치는 우를 범했다. 이런 불신은 방송 저널리즘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물론, 수신료 인상 반대뿐 아니라, 심할 경우 수신료 거부 운동까지 초래하게 된다.

셋째, 방송 제작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나 의혹의 소지를 줄여야 한다. 공영방송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다. 수신료를 지불하는 국민의 이익을 위해 국민의 눈치를 보며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된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 제작 현장에서는 그대로 실천되지 못해 문제를 키운다. 특히 확대·왜곡·축소·누락 등의 교묘한 방식으로 스스로 공영성과 공정성 논란에 빠졌다. 현 정부에서도 이런 예가 있었다. 2008년 8월31일 KBS <뉴스 9>는 스님들이 들고 있던 어청수 당시 경찰청장 퇴진 요구 팻말에서 ‘어청수 퇴진’이라는 글자를 지운 화면을 내보냈고, ‘제야의 종’ 타종 행사를 생중계했던 같은 해 12월31일에는 현장의 촛불 시위 함성을 박수 효과음으로 대체해 논란을 빚었다. ‘도곡동 땅 실소유주가 이대통령’이라는 안원구 전 국세청 국장의 주장(지난해 11월26일과 11월30일),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의 용산 참사 해결 촉구(11월24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의 국정원 민간 사찰 의혹 제기(9월17일) 등은 줄줄이 뉴스에서 빠지기도 했다.

권력과 방송이 가까워지면 반드시 부작용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진실’이 되고 그 다음 희생자는 국민이  된다. 공영방송이 중심을 잃을 때 국민은 등을 돌리게 될 것이고, 이는 수신료 거부 운동의 출발선이 될 수 있다. KBS가 수신료를 올리기 위해 그 당위성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다. 정치적 중립성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목격하게 되면, 시청자들이 나서서 수신료 인상 대열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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